*지금부터 사짜 심리상담사이자 사기꾼의 입털기가 시작됩니다.
*선동에는 선동, 날조에는 날조를.
카르나르 융터르의 상담실에 최근들어 뜬금없이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왔다.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한 번쯤은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이겠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선한 의도로서 도와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쁜 놈이면 어떻하느냐는 내용으로 자신의 불안감을, 미간의 주름을 제외하면 표정의 변화가 없는 상담사에게 지나치게 적극적인 태도로 어필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이, 저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좀 그만 보여줬으면 하는 신문기사나 SNS 반응 같은 것들을 연신 보여주고 있었다. 미디어를 통한 방식이라, 이쪽 업계(?)에선 과연 스테디셀러가 아닐 수 없군요. 그는 이 유서깊은 선동 방식에 존경심마저 들 뿐이었다. 자기가 세뇌 당한다고 생각도 못 한 채 조종자가 원하는대로 따라가는 꼴이란.
그렇다고 이런 쓸모없는 상담에 자신의 능력을 쓰는 것은 언급하는 것 자체로도 실례다. 누가 보더라도 귀가 얄팍한 내담자에게 질릴대로 질린 융터르는, 잠자코 그 어처구니 없는 불안증에 대해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혹시... 호드가 선생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에... 어... 으음.... 무단횡단 할 뻔했는데 저를 뒤로 밀쳐줬어요."
"뒤라고 하면 인도 쪽인가요?"
"차도였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잖아요!"
"그렇군요. 그럼 호드가 당신이 살기를 바라고 그랬다는 소리인데, 뭔가를 요구 받은 적은 있으십니까?"
뭔가 이상하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담자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상담사를 의심한다기보다는 '아 그러고보니?' 라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품어온 의심을 쉽사리 놓지는 못했는지, 내담자가 다시 애써서 반론하기 시작했다.
"나, 나중에 돈을 요구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죠."
"아하. 그럼 그 일이 있은 후로 호드가 다시 와서 계좌번호라던가를 남기고 갔던가요?"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선생님이 계신 곳까지 직접 날아와서는 당장 돈 안 내놓으면 도로 차도에 밀어버리겠다, 그런 말이라도 했나요?"
"그...으것도 아니지만... 아잇, 여차하면 제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게 중요하잖아요!"
"돈을 언젠간 받아야 할 거라면서요? 돈 받기도 전에 선생님을 죽인다는 말인가요?"
스스로의 말에 스스로가 발이 걸린다. 질릴정도로 말꼬리를 붙들고 또 붙들다보면 저런 식이었다. 애당초 엉망진창인 생각의 흐름을 가지런히 하다보면 저런 꼴이지만. 돈을 받기 전엔 죽이지 않는다는 히어로 호드가 되어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융터르 나름대로 나중에 사과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일단 그의 이미지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살인마 호드라고? 살다살다 그런 말도 다 듣고, 어이가 다 없군. 그 신념 때문에 내 스타일에도 한 번 큰 악영향을 끼쳤는데. 그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 융터르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있는 내담자를 바라보다가 툭 말했다.
"글쎄요, 저도 그 사람에게서 한번 목숨을 구원받은 적이 있다보니."
"선생님도요?"
"자세히는 저도 민망하니 넘어가고, 아무튼 그냥 사람 목숨 살려주는 게 그 사람 취미인 듯 싶었습니다."
내담자의 표정이 이제 확신에 찬 부정에서 긴가민가 하는 애매모호함으로 변했다.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여전히 떨떠름해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의 마음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면 가장 강력한 확신 없이는 지울 수 없으니까. 마치 히어로 호드에 대해 품었던 의심처럼.
그런 생각의 융터르는 자신의 시간을 헛되게 만들고, 친구의 명예도 면전에서 훼손시켜버렸던 이 같잖은 내담자에게 살짝 터무니 없는 상담료를 청구했다. 나름의 복수로.
"그래도 아주 쓸모없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쓸모가 없으면 없는거고 있으면 있는거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거.
"계륵이라는 말이지요."
-좌우당간에, 일단 현장 조사를 했을 때의 말인데, 호두가 아닌게 거의 확실해. 애당초 목격자 증언도 호두의 그거와는 완전히 다르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상담사는 드물게 바빴던 하루의 마무리를 형사와의 상담으로 끝을 내고 있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목소리는 제법 지쳐있다는 티가 역력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잠깐 짬을 내서 텔레비전을 봤을 때, 온갖 방송사며 신문사가 히어로 호드의 습격 현장을 취재한답시고 들쑤시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 캘리칼리가 단전부터 순식간에 한숨을 끌어올려 쉬는 소리를 잠시 들은 후, 융터르는 온종일 들어왔던 내담자의 징징대는 엄살 중 가장 기분이 이상하게 와닿았던 것을 한번 이 직감이 뛰어난 형사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면, 내담자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소리를 하더군요."
-아, 말하지말게. 말하지마. 나도 지금 일이 넘쳐서 아주 죽겠는데.
"어차피 안 죽으신다면서요? 일이 많아봐야 딱 하나만 더 확인해주시면 안됩니까?"
-과로사 모르나? 과로사? ... 하-아 이런 망할... 뭔데 그러나.
"내담자들이 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떤 공통된 정보를 입수한 듯 합니다."
캘리칼리가 결국 작게 '으아아악' 하는 억지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융터르가 뭘 원하는지 미리 알아차린 그는 "결국에는 루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확인해달라는 뜻이잖나!!" 하면서 억지로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저렇게 나와도 결국에는 필요한 일인 것을 알기에 해줄 사람이지만...
저 엄살에 질린 그가 결국에는 형사가 맘에 들어하던 카우치 소파를 하나 사주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형사는 은근슬쩍 넘어갔다.
전화마저도 끊어진 후, 융터르는 전에 없이 피곤함을 느끼다, 문득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의 휘영청하고 그 환하고 둥근 빛. 자신이 학위를 잃어버렸을 때도 저런 달빛이었다. 학위를 돌려받고자 시간을 무의미한 곳에 날리던 날에도 저런 달빛이 유독 눈에 들어왔었다. 그때, 모든 것에 증오를 품고 절망하던 자신이 그 그림자에 스며들어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지금은 노스페라투 호드가 그런 상황이다. 아주 같지는 않겠지. 일단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자신이라는,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을 아군이 있음을 그는 알아줄까. 어쨌든 아득바득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때 가장 의지가 되었던 노래를 틀었다. 엘튼 존의 I'm still standing.
-33. 좋은 놈 이야기 - Man in the mirror(2)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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