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ㄴ님께서 그려주신 주교 융터르를 보고 있을 때, 저는 때 마침 '검은 사제들'과 '콘스탄틴'을 한창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2. 그리고 다른 분들이 더 어썸한 연성을 해주시길 바라며 인용으로 제 의식을 담은 속마음을 올렸지요.
3. 근데 어림도 없지. 제가 바라던, '오라 쥰내게 달콤한 연성이여' 는 돌아오지 않는 러브레터의 답장과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반송되었다, 이거지요.
4. 참고 레퍼런스로 카톨릭 출판사에서 출판한, 구마 사제(체사레 트루퀴 저, 2019년)의 내용을 참고 하였습니다. 정가 13000원인데 현재 리디북스 기준 9100원이라는 알잘딱한 가격이니 한 번 쯤은 사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재밌네요 이거.
5. 좌우당간 ㄴ님께 이 자리도 빌려 감사드립니다.
인류 전 세기에 걸쳐 이성의 금자탑은 더 이상 신앙이 범접할 것이 아니되지만, 종종 그 이성을 배신당하는 순간이 오고는 한다. 아니면 이성이 배신하거나. 그런 의미에서 사제서품을 받기 직전 학교를 때려친 카르나르 융터르는 자신 앞에 읍소하는 한 부부를 차갑게 째려보았다. 정작 그 부부 사이에 끼어있는 딸은 멀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봄으로서, 황당함의 정점을 찍었다. 그가 표정에 어울리는 어조로 말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만."
"소문 다 듣고 왔습니다...! 엑소시스트라고...! 제발! 저희 딸내미에게 들린 악령을 퇴치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저 간만에 돌아온 탕아가 예수님 앞에서 기도나 올리고 물러서려고 했건만, 성당의 복도에서 하느님과 예수님 앞에 올려도 모자를 절을 자신한테 하고 있는 이 배덕한 행위라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융터르가 이제는 짜증난다는 티를 굳이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 따님 문제 해결은 일단 병원에서 해결하시고 오시죠. 저 같은 무자격자같은 사람말고."
"그, 병원이...! 아시잖아요! 정신과 같은 데 가면 그 빨간 줄 그어진다고..!" 아이 엄마가 눈물로 추해진 얼굴을 들어올렸다.
매달리는 부부와 뿌리치려는 남자로 인해 성당이 시끄러워질 때 쯤, 제단 근처의 문이 왈칵 열리며 신부복을 입은 나이 든 사제가 걸걸하고 큰 목소리로 주의를 환기 시켰다.
"왜 이르케 시끄러워?!"
"아, 덕수 요한 신부님. 저 좀 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라이." 그 뻔뻔한 말에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는 얼굴을 구기면서도 그 요청을 선뜻 받아들여줬다. 길쭉한 싸리나무 빗자루를 들고서 말이다.
'병원에서 마땅한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견서도 없이 성전에서 뭐하는 추태냐'며 휘두르는 덕수의 빗자루는 정말 교묘하게 아이한테는 전혀 닿지도 않고 한심한 두 남녀를 향해서만 휘둘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융터르는 왕년의 솜씨 안 죽었다며 뒤에서 다 들리는 감탄사를 늘어놓는 바람에 한 때의 추억을 다시 현실로 끌어왔다.
그렇게 병원이나 가라며 결국 부부를 내쫓은 이덕수 요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융터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썩을 놈이, 그러니까 구마 사제는 꿈도 꾸지 말고 기양 옆에서 보좌나 좀 해주면 을매나 좋아?"
"그러게요. 지금은 나이를 먹을대로 먹어서 사제 서품은 꿈도 못 꾸잖습니까?"
"이 놈은 곧 뒤져도 아가리가 물에 동동 뜰 놈이여."
융터르가 쓰게 웃는 얼굴에 이덕수 요한은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는 그의 곁에 앉았다. 더 이상 신학도도 아닌 그를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닌 이덕수 요한이었다. 그가 구형 스마트폰을 툭툭 건드리고는 누군가가 찍은 영상을 융터르에게 보여줬다.
얼핏 보기에 납치현장인가 싶을 정도로 등 뒤로 양 손목이 단단히 묶인 채 앉아있는 여성이 화면 한 가운데, 그리고 그 한 쪽에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남성과, 촬영자가 의사라도 되었는지 그 특유의 흰색 가운의 소맷자락이 화면 구석진 곳에 살짝 어른거렸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아마도 남편과 그 아들인 것이 분명해보이는 상황에서, 아이가 울며 엄마를 연거푸 불러댔다. 그러자 산발을 하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 이후의 장면을 보는 내내 전직 사제 지망생이 얼굴을 작게 찡그렸다. 앉아있던 여성이 아이를 보고는 입을 열었는데, 여성이 낼 수 없는 낮은 목소리와 정반대로 간드러지는 하이톤이 오가는가 하면 갑자기 외국어를 마구잡이로 지껄인다던가 하는 그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황이 순식간에 이어지는 장면이라니. 영상 마지막은 촬영자인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가 "안정제랑 포도당 링겔로 일단은 조치해볼게요."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덕수 요한은 굳은 얼굴로 간단히 요약해주었다.
"악마여. 저기 보이는 아이헌티 요전번에 세례 성사 받으러 왔던 부부인디, 급작스레 저리 되었댜."
"절 부른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습니까? 저 구마 의식 안 한다니까요?"
"악마한테는 뻥을 쳐도 나한테는 뻥을 치믄 안 되지, 욘석아. 이미 윗선에 허락 다 받아 놨으니께 까라면 까."
자신 같은 중도 포기자라도 구마 의식을 할 수 있게끔 상층부에도 말을 다 해놨다니, 도대체 이 주임 신부의 영향력은 얼마나 세길래 그런 것일까. 그런 표정을 감추며 카르나르 융터르가 한숨을 푹 쉬고는 주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덕수 요한 주임 신부님 소개로 왔습니다.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아, 아 예예..."
남편되는 사람이 초췌하면서도 당황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라던 신부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남편은 그 덕망 높은 주임 신부가 소개한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그를 어떤 방에 안내했다. 문 앞에 묵주가 걸려있는 방. 그 안에서 뭔가가 이리저리 부딪치고 자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여는 게 두려웠던 남편은 얼굴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융터르에게 애원했다.
"제발, 제발 좀 아내에게서 저 사악한 것 좀 떼어 주세요. 전 처음에 어떤 병인 줄 알았어요, 근데 MRI니 CT니 돌려봐도 문제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이미...." 남편은 결국 끝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지요. 대신 이 문을 제가 열게 하시고, 선생님께서는 가능하면 아이와 같이 바람이라도 쐬는 편이 좋겠군요."
"아, 알겠습니다."
남편이 황망한 얼굴이 되어 급히 아이를 껴안고 현관문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융터르는 한숨을 푹 쉬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뭔가가 그의 얼굴께로 휙 날아왔는데,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성모 마리아 상이었다. 육중한 상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버렸다.
어떻게 던진 것인지 신기해하는 눈초리로 카르나르 융터르는 비꼬는 어조로 말을 건넸다.
"손님 예절이 영 꽝이신데."
<이히히히!! 이거나 풀어!! 당장!!>
"아하, 그렇게 지랄을 하면 누가 잘도 풀어주겠군. 요새 우리나라는 '우리는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의 시대인데."
<네까짓 것 쯤이야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어, 그러니까 이걸 풀어!!>
왜 저렇게 악마가 발작을 하는지 자세히 보니, 여성의 왼손 검지에 은으로 된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신실함에 내심 감사를 표하는 융터르가 길길이 날뛰는 악마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질문을 툭 던졌다.
"이름은?"
<이히-이익 힉!! 알려 줄 것 같냐?> 악마가 숨넘어갈 듯 웃는데도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하, 번듯한 이름도 없는 찌질하고 나약한 악마. 오케이."
<뭐 임마?!>
여성의 몸에 깃든 악마가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는지 처음으로 당황했다. 반대로 태연한 얼굴의 융터르는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그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요새 이 쪽 업계의 트렌드가, 당신들이 어차피 이름을 안 알려주니까 굳이 물어볼 필요 없다로 결론이 났거든요. 뭐, 저는 그래도 오래된 전통을 존중해서 이름이나 여쭤볼까 했는데... 커뮤니케이션 형성 자체도 거부하는 걸 제가 이리저리 애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제가 붙여준 이름으로 하시죠. 속 편하게."
<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악마의 얼굴이 더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있으니까 있는 거겠죠. 더 골치 아파지기 전에 빨리 답해주시죠. 나올 겁니까? 말 겁니까?"
<내, 내가 나올 거 같아?! 내가 나가면 이 여자도 죽어!>
악마에게 깃든 여자의 머리카락이 메두사의 그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 혼자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부터 팔뚝의 혈관까지 울룩불룩하게 뭔가가 튀어나오려는 듯 위협적으로 굴었지만, 막상 그 위협을 받은 융터르가 하품을 했던지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눈을 살짝 감고 있다가 태연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참 저속하고 진부한 멘트네요. 그 불쌍한 분을 어떻게 할 참입니까?"
<방법이야 많지! 하지만 안 알려줄거지롱!!> 악마가 간만에 유리한 점을 잡아냈다는 양 낄낄거렸다.
"흠. 완전히 바보는 아닌걸로."
<날 끝까지 놀려?!>
"당신은 한 생명을 가지고 놀고 있잖습니까? 그러면 저도 당신을 놀려도 된다, 이 소리죠."
그의 끝도 없는 궤변에 질린 악마가 융터르의 등 뒤로 열린 문을 보고는 의자에 앉아 엉성한 채로 일어나서는 그에게 달려들려 했다. 어디까지나 시도에 그쳐버렸다. 그 기세가 발길질에 막혀 나자빠졌으므로. 전직 구마 사제 지망생이 나자빠진 악마의 머리 위로 다가가서는 차가운 액체를 쏟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악마가 온갖 외국어로 발악을 했다.
다 쓴 성수통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넣은 카르나르 융터르가 여성의 이마에 손을 얹어 안수를 하는 자세를 취한 뒤에 이번에는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그 기도문은 어떤 압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뜨거워!! 뜨겁다고!! 살려주세요! 이마가 불에 타는 것 같아요!! 아파!!>
악마가 이제는 멀쩡한 여자의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그가 이어서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라틴어였다.
"인간의 오랜 원수인 너를 쫓아 버리니, 하느님의 피조물인 그녀에게서 나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한다. 나와라."
오래된 구마 예식에서 사용되던 그 긴 기도문이 지속될수록 의식을 집행하는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악마는 그만큼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아멘"으로 끝나는 그 기도문이 끝나도 여전히 악마가 발악을 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성당의 권위를 담아 외쳤다.
"높으신 분의 권능으로 너는 이미 영원한 어둠으로 추락했다. 그러니까 나와라."
<제대로 된 신부도 아닌 놈한테 내가!! 내가아아아-!!!>
"우리 주임 신부님의 기도빨이 좀 센 성수라 그렇지요 뭐. 여차하면 한 병 더 드릴까 하는데. 더 드릴까요?"
<싫어!! 나 나가기도 싫어!! 성수도 싫어!!>
"그럼 이대로 계속 아프시던가. 근데 당신이 자꾸 악을 쓰는 바람에 이 여성 분 성대결절이라도 나면 치료비 청구해도 되겠습니까? 음, 더불어 제 고막이 울리는 것도 당신이 책임지시죠."
인간으로서도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을 말을 태연하게 하는 카르나르 융터르는 진심으로 치료비를 청구할 기세였다. 설령 지옥으로 내려가서도 그 태연자약한 얼굴로 '여기 왔으니까 당신이 책임지셔야지요' 라고 할 법했다. 여자의 몸에 깃든 악마는 여전히 그 매듭을 풀지도 못하고, 이마에는 성수를, 귓전에는 기도문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채로 몸부림을 쳐댔다. 끝끝내 버티는 그 꼴을 보던 융터르가 문 앞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악마의 가슴팍에 올려두고 다시 기도문 하나를 엄숙하게 외웠다.
"보라, 주님의 십자가! 원수들이여 도망쳐라! 유다 부족의 사자이자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 할렐루야!"
십자가 아래로 매캐한 냄새가 흐르기 시작했다. 짙은 회색빛 연기가 그 가슴의 위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살이 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타는 것이다. 어리석은 악마의 영혼이. 괴로워하는 사악한 영을 내리깔아보며 융터르가 조소했다.
"뭐 그 쪽에도 좀 아는 분들이 있으니, 전달해달라고 그 편에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여기 제대로 된 신부도 아닌 놈한테 잘못걸려서 온갖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는 이렇게 추하게 돌아가는 놈이 하나 있다더라, 라고요."
<하지마! 하지 말라고! 돌아 갈테니까! 제발!!>
그 말을 실제로 이행하는 것인지 악마에게 휘둘리던 여성의 몸이 바르르 떨기 시작했고, 그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자 온 몸이 팽팽했던 여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악마가 드디어 물러났다.
"그 쪽 수질 관리 좀 하시죠. 애먼 놈들이 자꾸 이쪽으로 오잖습니까?"
"아, 아니이... 내가 틀어막아도 지들이 자꾸 오는데, 예? 융터르 씨, 솔직히 까놓고 말하죠? 나 싫어하죠?"
카르나르 융터르는 인원이 제법 들어찬 것 치고는 조용한 술집에서 검고 긴 머리의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던 분홍빛이 선명한 머리카락의 청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상대방도 그 편으로는 할 말이 있었는지 잔뜩 투덜거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밝은 연록빛의 눈이 억울함을 잔뜩 호소했지만, 융터르는 전혀 표정의 미동도 없었다.
"대신 그쪽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은 당신이 장난감으로 갖고 노실 것 아닙니까? 장난감 하나 새로 받았다, 그런 셈 치시죠."
"진짜 말 한 마디도 안 지시네. 그 융터르 씨, 당신 입에도 악마 하나 정도는 사는 거 아니에요? 에?"
"사람들은 이걸 언변이라고 부르던데요? 악마가 아니고."
넌덜머리가 난다며 혀를 내두른 그 청년은 그 울분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바텐더에게 "내 술 값은 전부 이 인간한테 달아둡니다. 그럼 난 일하러 갑니다, 가요." 라며 술집을 메운 존재들 사이로 끼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곧 사라졌다. 바텐더가 웃으면서 카드리더기를 조작하더니 융터르에게 내밀었다. 금액이 제법 센 그 모습에 눈가를 찌푸린 그는 카드를 꺼내 그 금액을 결제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저 대악마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그 때는 더 큰일 나니까.
-끗-
'공개 썰입니다. > 멤고 단편 -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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