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원각 세우겠습니다! 이제 슬슬 놓아줄 때가 온 것같아요.
*아니 그렇다고 당장 끗 이러지는 않고 아주 약간의 여유공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이걸.
*아무튼 지금은 여기에 충실하게...
산산히 흩어지는 유리를 피하기 위해 상담실 안의 모든 이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나 입이 다치지 않은 카르나르 융터르는 결국 한 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창문 수리비, 청구하겠습니다."
"생명 값이라, 생각하십시오."
노스페라투 호드의 그 살기 등등함에 가면을 쓴 변태도, 그의 따까리도 한없이 긴장하는 태도였다. 아니다. 가면을 쓴 변태는 온 몸을 뒤틀고 있었다. 형사가 변태라 불렀던 것이 정확했다. 어떤 쾌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진범의 숨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굳이 좋게 말해주자면, 동경하던 우상을 눈 앞에 둔 극성팬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서로에게 친근한 태도라는 것을 느꼈는지, 가면변태는 곧 질투심을 감추지 않고 노려보았다. 치졸하긴, 그런 생각으로 카르나르 융터르가 그의 '살인자' 발언에 궁금증을 제기했고 호드는 간단하게 답해주었다. 아파트 단지 추락사가 실은 저 변태의 살인 흔적을 덧씌우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고.
어처구니도 없고 그저 본인의 만족을 위한 행동을 포장했다는 사실에 역겨움을 느낀 융터르의 미간이 좁아지며 진범을 향해 내뱉듯 말했다.
"아하... 그래서 오히려 그 끔찍한 걸 본인이 막아냈는데, 운운하셨군."
"막았다고, 했습니까?"
그 말에 호드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전화가 계속 생각난다. 물론 저 자가 죽여버린 피해자가 사실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에 관해서는 정당한 실력행사를 할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기회를 영원히 빼앗겼다. 더욱이 그걸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표현하는 저 가증스러움이라니.
융터르는 깨진 창문 유리조각을 밟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멋있는 히어로를 위해서, 여러 사람을 망가트리는 게 옳은건가?"
"..."
"다치고, 죽고, 이제는 일자리까지도 날리셨는데, 다음에는 호드가 어떤 행동을 하길 바라는거지? 말해!!"
이전에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분노의 대상이 정확히 진범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융터르의 고함 섞인 명령은 정확히 가면을 쓴 진범에게만 와닿았다. 순간 그 특유의 위압감을 느끼던 호드는 생각보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진범은 가면과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부터 붉어지고 있었다. 마치 저항하기라도 하는 듯.
"싫어... 말 안 해!"
가면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혀를 깨물든 코피가 터졌든 간에, 진범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붙들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대로 상담사가 진범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는 순간.
순식간이었다.
상담사의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가 닿은 것 처럼 보이면서.... 그대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 찰나의 순간, 호드의 시선은 상담사의 움직임을 거슬러 그 원인을 찾으려하였다. 간단했다. 방금까지 목석처럼 서있을 뿐이었던 따까리의 양 손이 앞을 향해 뻗어있었다. 놈에게 이미 홀린 저 눈빛. 이용당하는 주제에 걸맞게, 따까리의 충심은 배신당했다. 어떤 고마움의 표시라고는 전혀 없는 진범이 이미 저 멀리 내빼버림으로서.
호드의 주먹이 곧바로 따까리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열린 문으로 따까리의 덩치가 복도의 몸이 나자빠지듯 살짝 공중을 날다가 벽에 부딪치며 쓰러졌다. 저 멀리서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뒤쫓아 갈 수 없었다. 융터르가 있는 자리에서 점차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로 머리에서.
"왜, 그러셨습니까?"
"글쎄요... 무의식적으로 화가 치밀어올라서 그랬다고 하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상반신만 기대서 앉아있는 상담사는 쓰게 웃었다. 독특한 소독약 냄새가 감도는 것이 입원실에 있는 것을 깨달은 그는, 보호자를 자청하기라도 했는지 곁에 있는 기자의 두꺼운 안경 렌즈 너머로 복잡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을 지금의 상태로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주로 걱정과 염려, 그리고 그 무모함에 대한 타박까지. 뇌진탕이라는 말에 납득되어 어지러운 초점을 내버려 둔 채로, 융터르는 마치 혼잣말 하듯 입을 열었다.
"일전에 놈과 한 번 대화 했었을 적, 그 개자식이 당신을 진정한 히어로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이들을 다치게 하고, 죽이고 그런건가 했는데... 변태는 변태인가 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어떤 큰 그림이라고 하더군요."
"큰, 그림...?"
"뭐어... 자기 딴에는 당신이 고통받으면서도 끝끝내 정의를 관철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지는 말아주십시오. 그 소린 저도 도대체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으니깐. 하하."
공허한 웃음소리가 1인실 같은 6인실을 채웠다. 호드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따까리는, 체포되었습니다."
"그거 참 다행이군요. 혹시 캘리칼리 님께서?"
"그렇습니다."
호드는 잠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랴부랴 신고 했던 경찰들이 도착할 때 쯤에서야 정신을 차린 주제에 자신이 밀쳐놓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냐는 양 눈을 끔뻑거리며 어리벙벙해하던 따까리는 순순히 수갑에 손목을 내미는 광경이. 구급차가 의식을 잃은 융터르를 싣고, 따까리는 그 덩치와 안 어울리게 얌전히 경찰차에 몸을 구기며 타고 가는 그 장면이. 자신이 황망해하는 사이에 거의 비슷한 얼굴로 다가온 캘리칼리 데이비슨에게 상황설명을 하던 자신이.
초점이 아직은 또렷하지 않은 융터르가 묵묵히 듣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 했다.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호드가 앉아있는 방향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건만, 그 속마음을 읽어낸 상담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조금 더 강경하게 대처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묻는, 타이밍이 어색한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하시는 내내 어딘가 후회하시고 계신 티가 역력했으니까요. 티 다 납니다. 호드 님은. 거짓말 할 일은 앞으로도 없으셔야겠군요."
"오."
실제로 상담사가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도 모를 호드는 멋쩍은 마음에 그 두터운 손으로 뒤통수를 살짝 긁었다. 아직은 어지러워 아예 눈을 감은 융터르가 지금은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미처 못 잡은 그 변태의 다음 행보에 긴장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 이럴 줄 알았네. 융터르 그 친구 상태는 좀 어떤가?
"다행히, 금방 의식을, 찾으셨습니다."
-하... 제기랄. 저번에는 자네한테 무턱대고 세뇌를 걸더니 이젠 자기 목숨도 걸고 말이야. 진짜 나쁜 놈일세 거.
입원실에서 나온 호드는 캘리칼리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에도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달하자 겨우 안심되었다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러고보면 그의 팀은 지금 문제의 따까리를 심문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호드가 그 부분을 물어보았다.
캘리칼리는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은 한숨을 쉬고서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묵묵부답일세." 그 한 마디로 어떤 꼴일지 눈에 훤해 호드가 저도 모르게 안경을 벗고 눈가를 천천히 마사지했다. 그 놈에게서 받은 약 따위로 강한 힘을 얻었기에 끌어내는 우직한 충성심일지도 모른다. 그 보다는 오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의 상념을 깨는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확정이 아니네만, 놈의 근거지를 찾은 것 같네. 그 부분까지는 자네에게 말 할 수 없네만.
"놈을, 점차 위기로, 몰아넣을, 생각이십니까?"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 아닌가? 자네가 그 동안 피 말렸던 걸 생각하면 이쪽도 좀 해주는게 상호 간의 예의지.
형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혹여나 새로운 정보가 있다면 다시 알려주겠다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기자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형사에게 말을 할까 하고 망설였지만 끝끝내 말하지 못한 그것. 상담사가 '만약에' 라며 가정을 했지만 문득 자신도 생각했던 그런 가능성. 목구멍까지 치고 달려왔지만, 정작 흐지부지 되어버린 그 말. 놈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거는 상황이 오면, 자신은 그의 목숨을 구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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