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는 어디있나?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이 질문은 거의 유효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만들어 낸 사람을 책임자라고 하거나 혹은 진짜로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 그러나 이 경우는 어떨까. 책임자를 묻는다고 하면 하늘에 물어야 하는 것일까?
눈이 지독할 정도로 쌓인 탓에 한번 제설차량을 동원하고, 그걸로 부족해 염화칼슘을 뿌려 녹였더니 순식간에 기온이 낮아졌고 그래서 미처 하수도 따위로 흘러가지 못한 녹은 눈들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게다가 강가를 끼고 있는 탓에 이 지역이 유독 안개가 자주 끼는 날이 잦다면, 그래서 그 위를 달리던 자동차들이 미끄러지고 서로 부딪쳤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책임자는 어디에 있나?
소방차와 엠뷸런스들이 모일 수 있는 한 전부 한 도로에 모여서 부상자를 구출하고 차에 붙은 불을 끄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다중추돌사고의 특성상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까지도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불을 미처 끄지 못하고 저 멀리서 귀가 찢어지는 굉음을 내며 터지는 차량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튀어오르는 파편들 때문에 사고 현장 깊숙한 곳에서 '살려주세요!' 라는 소리가 들려도 섣불리 접근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현장 근처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한 시민이 하늘 위를 드리우는 그림자를 얼핏 보았다.
"어?"
그의 반응을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쏜살같이 지상으로 내려온 그 그림자가 폭발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현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뭔가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럴적마다 곧 품에 안은 사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소방대원들에게, 파란색 안전모를 쓴 사람이 "니들 뭐해! 불놀이 왔어?!"라고 외치고나서야 저마다 호스를 붙잡고 점차 불을 다시 끄기 시작했다. 구급대원들도 상태의 경중을 확인한 다음 위급한 환자부터 빠르게 이송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수 시간이 흐르고나서야 현장이 완전히 정리가 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당신 아니었으면,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뻔했으니깐."
"더 일찍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늘 댁은 미안하단 말 밖에 못 한답니까?"
파란색 안전모를 거칠게 벗은 대장 격의 인물이, 히어로 슈트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불타서 그 속까지 다친 채 미안해하는 노스페라투 호드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호드도 그 손을 맞잡았다. 그가 투덜거리면서도 호드에게 어깨 너머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저기, 원래 우리 먹으라고 둔 컵라면이랑 생수... 뭐 그런 거 밖에 없긴한데, 댁도 사람이니깐 힘들고 배고플 거 아니겠습니까. 좀 들고 가시죠."
"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동네 마트에서 공수한 놈이니까 부담가지지 마시고."
그 말에 호드는 멋쩍게 웃으면서 기꺼이 먹고 가겠다고 말했다. 막 나은 새살 위로 화상자국이 더 해진 그 꼴에 급히 연고니 뭐니를 찾아 발라주는 요란스러운 환영인사가 먼저 그를 반겼다. 곧 그 주위로 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의 몸부터 이런 저런 잡다한 질문까지, 어지간한 질문들은 스스럼없이 해주는 사이에 누군가가 물었다.
"혹시 친구 있어요?"
"야이!!"
"싸패 새끼 아니냐, 저거?"
"쳐내!"
질문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제법 잔혹하게 들리는 탓에 다른 사람들이 문제의 질문을 던진 대원에게 헬멧으로 머리를 때리는 둥의 사과를 대신 했고, 그 모습을 보던 호드가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절친한 사람이 둘 있다고 답해주었다. 누군지 궁금해하지는 않고 그저 신기해하는 사람들에게 컵라면 잘 먹었다며, 호드는 인사하고 다시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저 하늘 너머로 사라져버린 노스페라투 호드의 모습을 보며 뒷정리를 하기 시작한 소방관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가 현장을 작게나마 채우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는 종종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하늘 위에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칭해주는 것에 한 사람이 웃는 것도 모르는 채. 이제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좋은 놈'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한 것에 감사해하는 것도 아마 소방관들은 모를 것이다.
그는 언제까지고 좋은 놈으로 남을 것이다.
54. 에필로그 : 나쁜 놈 이야기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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