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앞에서 한 청년이 서성거리다가 새까만 코트와 목도리로 몸을 두른 사람을 보고 손을 높이 들어 휘적거렸다. 곧 그 사람이 다가왔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밤을 지새우기라도 했는지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한 상대방을 보고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넌지시 물었다.
"혹시라도 컨디션이 안되겠다 싶으면 다음 기회에 면회를 다시 잡아도 되는데요."
"아뇨, 이제서야 겨우 면회를 할 수 있다는게 오히려.... 그러니까...."
"너무 오래 기다렸다?"
눈 앞에서 괴인에게 교수를 잃어버렸던 대학생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담사와 만난 이후로 어쩐지 죄책감이 조금은 누그러들었지만, 꼭 그 면전에다 왜 그랬냐고 소리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그 날이 오늘로서 다가오자 괜한 긴장감에 잠을 설쳐 컨디션이 엉망이 되었긴 하지만.
상담사는 그런 학생에게 면회시간까지 20분 남았으니 커피라도 마시겠냐며 권했고, 바깥공기가 뼈까지 시리도록 추웠던 탓에 학생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리고 10분 뒤, 카페 내부의 온기 때문인지 어쩐지 몽롱해하면서도 긴장이 어느정도 풀린 학생은 면회 절차를 밟기 위해 먼저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담사도 곧 자신이 신청한 면회도 차례가 되었다는 말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제가 여기서 했던 말은 전부 잊으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에..."
"그리고 이걸 듣는 모든 사람들은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늘상 해오던 말이다. 교도소 특성상 한 쪽 구석에 있는 CCTV는 이 대화를 전부 녹음하겠지만, 그걸 돌려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봤다는 사실만 남고 그 내용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한 채 잊어버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서 사람을 때려죽이고도 고작 5년의 징역형만 받는 저 자 또한. 이제 상담을 할 시간이다.
이 남성은 조직 상부의 지시로 내부 정보원이었다가 들켜버린 경찰을 때려 죽였다. 조직에서 비싼 변호사를 붙여줬다더니만 겨우 형량이 5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놈이 돌아올 곳을 부숴버리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보며 입을 헤벌린 채로 아는 것을 다 털어놓은 놈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침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모든 정보를 확보한 뒤, 그는 별 일 없었다는 듯 면회장소를 나왔다.
"어떻게 잘 하셨습니까?" 라고 물어오는 교도관에게 상담사는 부드럽게 답했다.
"충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도소 앞까지 걸어나오니, 아까의 대학생이 먼저 면회 종료시간이 된 탓인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생각보다 밝지 못했다. 속시원히 해결했다고는 못할 얼굴이기에 상담사가 다가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냥 뭐랄까, 처음에는... 바로 본론부터 쏟아냈거든요. 그 괴상한 생각때문에 우리 교수님이 죽었다고."
"..."
"왜 죽였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냥이라지 뭐에요. 그걸 듣고 갑자기 허무해졌어요. 저 새끼한테 내가 받은 충격이든 뭐든 토해내고 싶었는데, 그걸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위로는 되지 않았겠지만, 이미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너무 마음에 쓰지 마시지요."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물어봤어요. 그렇게 빼앗은 우리 교수님 능력, 그거 잘 써먹었냐고. 그건 또 아니라네요. 그럴거면.... 그럴거면 죽이지나 말지.... 개새끼..."
학생은 눈물을 팔뚝으로 쓱 비비고는, 어쨌든 면회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먼저 택시를 탔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융터르는 더 이상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당장은 없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상담실로 다시 돌아갔다.
그 이후로 그에게 일상적인 나날이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 일상이란, 흉악 범죄자들이 그의 상담실로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스스로의 죄를 자백하러 경찰서로 가는, 그런 것이다. 그에게 일상이란, 낮부터 저녁까지 그런 자들의 정신을 지배했고, 밤이 되면 그들의 근거지로 숨어들어 잔당들을 소탕하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조직 폭력배의 두목과 그 바로 밑의 고위층이 입가에 침을 한 두방울씩 떨어트리고 멍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가라는 말에 놈들은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흐느적거리며 힘없이 움직이고,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상담사의 귓가에는 자신더러 나쁜 놈이라고 놀리듯 말하는 두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에 똑같이 속마음으로 카르나르 융터르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나쁜 놈은, 나쁜 방법을 쓰는게 아니겠습니까?
55. 에필로그 : 이상한 놈 이야기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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