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shotshatan 님의 만화를 바탕으로 썼던 고타토닉스 단편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단편이라기 보다는 느슨한 연관성을 지닌 옴니버스 정도가 되겠구먼유.
*주의 : 상세한 살인묘사, 험한 말
*이유요...? 액션씬이... 액션씬이 쓰고 싶었어요....
만약 당신이 작달막하더라도 다부진 몸의 프리터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분명 싸움을 잘 하는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누구나라도 인정하는 평화주의자였다. 그 말인 즉슨, 그는 싸움을 전혀 못 한다는 의미이며 더 나아가면 지금처럼 그가 쫓기고 있는 입장이라 하여도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칙쇼오오-!! 대, 대체 왜 저를!"
"잡아!! 저 새끼 잡아!!"
프리터의 등 뒤로 여러 명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곧 있으면 아지트인데! 무기를 만지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걸 쓰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라, 그는 품에 챙겨둔 스턴건을 쏘고 싶어도 빗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미처 뽑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기술자는 주머니에서 섬광 수류탄을 꺼내 핀을 뽑고 재빠르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던졌다. 곧이어 펑! 하고 수류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추격자들이 눈을 부여잡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것이 들렸기에 그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또 마침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모퉁이만 돌면 아지트가 근처이기도 하고.
-여보세요오? 프리터 님? 지금 어디신데 왜 이렇게 안 와요?
홀로콜 상대인 뢴트게늄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사서 오겠다던 프리터가 너무 늦은 나머지 참지 못하고 연락을 먼저 한 것이다. 프리터도 그것을 알기에 대답하려 했으나 장시간을 도주한 탓에 숨이 턱끝까지 차 올라서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헐떡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걸 본 뢴트게늄의 표정이 걱정에 불안함이 더해졌다.
-뭐, 뭐야. 프리터 님 지금 설마 쫓기고 있어요? 지금 어디, 어디신데? 마중 나갈게 어디야?
"후웃후후... 다, 다 와갑니다. 지금. 잘 도망쳐서. 지"
프리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방심한 그의 등 뒤로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하고 누군가가 윽박지르더니 목덜미를 바로 잡고 패대기 친 것이다. 팔을 강화했는지 그 힘이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고, 아무런 보호수단도 갖추지 못했던 프리터는 딱딱한 바닥에 얼굴을 제대로 부딪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미처 종료하지 못한 기술자의 홀로콜 너머로 뢴트게늄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서는 그의 이름을 대답하라며 연신 외쳤지만 곧 그 통화마저도 종료되었다.
뢴트게늄은 본래 감정기복이 격한 편이지만 당황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당황하는 모습에 비밀소녀와, 의무실에 있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무슨 일인가 싶어 거실로 나왔다. 뢴트게늄이 사색이 된 얼굴로 지금까지의 정황을 떠듬떠듬 설명했다.
"그... 프리터 님이 납치, 된 것 같은데요.... 어쩌죠?"
"납치?"
그의 예상보다 심각한 이야기에 융터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평소에도 자기 자신을 저평가하던 프리터지만 객관적으로 그의 기술자로서의 실력은 어지간한 이들보다 훌륭했기에 음험한 생각을 품은 자들이라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융터르는 생각했다. 즉, 그의 입장에서 이번 프리터 납치 사건은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중에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른데, 하며 리퍼닥은 낮게 중얼거렸다.
패닉에 빠진 뢴트게늄이 머리를 북북 긁어대며 자책하는 것을 가까스로 말린 비밀소녀는 두 사람과 함께 곧장 단답벌레의 방으로 향했다. 뢴트게늄이 상황 설명하기도 전에 그 소란을 이미 들었는지, 해커가 컴퓨터의 화면을 가게 주변으로 설치한 CCTV로 전환시켜 세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화면이 이리저리 바뀌더니 곧 아지트 근처에서 프리터가 소위 '떡대'라고 불릴만한 누군가에게 패대기쳐지고 기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상은 곧 축 늘어진 기술자를 졸개들이 들고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에서 끝났다.
겨우 눈이 뒤집힐 뻔한 마음을 참아내었던 뢴트게늄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마구잡이로 뛰쳐나왔다. 다른 이들도 그 너무한 상황에 한 마디씩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얼굴이었고, 뭔가 단서라도 없을까 싶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비밀소녀가 단답벌레에게 화면의 어떤 지점을 가리키면서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네, 거기. 여기서 저 개새끼(그녀의 흔치 않은 욕설에 다른 사람들이 놀랐다) 팔뚝 좀 확대해주세요."
비밀소녀가 말한 부분을 확대하자 런닝셔츠 차림의 조무래기가 어깻죽지에 새겨넣은 문신이 자세히 보였다. 호랑이 그림이었다. 그 특유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현장 일선에 나서는 뢴트게늄이었다.
"타이거 클로 이 새끼들 미쳤나?"
"자신들 기반이 제법 탄탄한 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납치를 한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요?"
"수리?"
남자 셋이서 저마다 한 마디씩 할때, 곰곰히 생각하던 비밀소녀가 짜증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로 "진짜 이 할망구한테 트집 잡히기 싫은데..."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그녀가 이토록 무너지는 것이 낯선 세 사람은 도대체 그 '할망구'가 누구이길래 그러는 것인지 걱정과 의문이 반 씩 섞인 표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비밀소녀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셋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어디 좀 같이 가요."
영문을 알 수 없던 남성 셋은 곧 그녀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국적을 알 수 없이 대충 동양계 문화면 죄다 때려박은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이곳은 다름이 아니라, 그 타이거 클로의 영역이었다. 비밀소녀는 안색이 굳어진 세 남자에게 눈치를 주면서 한 파칭코 가게로 들어갔다.
"아하, 이게 누구신가. 300년 전 망령들?"
"글쎄요, 살아있기로 따지자면 150살은 먹은 당신이 하실 말씀이 아닐텐데요."
파칭코 특유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요란한 사운드 사이를 뚫고 더 깊숙히 들어가자, 호롱불 하나만 켜서 그림자가 짙게 깔린 정갈한 일본풍 방이 나왔고 그 어둠 속에서 요괴같이 들리는 노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밀소녀는 상대가 누군지 익히 아는 듯 전혀 기죽지 않고 대꾸했고, 그 당차기까지 한 멘트에 노파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밀소녀는 그것마저도 짜증이 난다는 듯, 평소답지 않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개자식들이 제 친구를 납치했어요. 알고 계시겠죠?"
"오오 물론, 잘 알지. 그래,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정보를 원하나?"
"내놔요. 지금, 당장."
비밀소녀가 한 발자국 나아가며 단호하게 끊어 말했다. 그런다고 상대방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손이 연거푸 쥐었다 펴졌다 하는 모양새가 겨우 총을 꺼내고 싶은 것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살기에 가장 민감한 뢴트게늄도 자신의 카타나에 손을 살짝 얹으며 다른 두 사람에게 넌지시 속삭였다. "준비해. 호위하는 놈들이 있어."
그러나 늙은 요괴는 킬킬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고는 훈계하는 어조로 태연히 대꾸했다.
"아가씨, 이 바닥의 섭리를 아직도 모르시나? 동종업계에 있는 이 선배님이 한 수 알려드리리까?"
"거래를 하자고요?"
"그렇지, 거래지. 원하는 게 있나? 그럼 거래를 해야지. 친구를 되찾고 싶어? 그럼 더더욱 내 거래에 응해야만 할거야."
"그 입 닥치고 용건만 말해요."
"이히히히... 그래, 그래야지." 라고 말하는 노파는 느릿한 어조로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
"집을 뛰쳐나간 아들이 한 놈 있어. 그냥 나갔으면 또 모르겠는데, 중요한 살림살이를 들고 나갔거든. 그걸 되찾아주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게야."
"되찾기만 해달라는 건 당신 성미에 안 맞을텐데요?"
"그렇지, 그렇고 말고. 따끔하게 혼을 내주면 금상첨화라는게야 클클클... 그래, 가령... 삼도천 관광이라도 시켜준다던가?"
정말 자기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픽서의 의뢰를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비밀소녀가 하는 수 없이 응하려고 했다. 그런 그녀들의 대화를 갑자기 가로막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나르 융터르였다.
"정보를 얻는다는 말, 당신이 줄 것처럼 들리지가 않는군. 똑바로 말해."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아라사카의 원조 실험체 양반이 아닌가?"
"...섣부른 도발만큼 어리석은 전략도 없는 걸 잘 알텐데."
평소 누구에게나 존대를 써오던 그였기에 지금처럼 으르렁거리는 어투와 반말로 대응하는 모습은 일행들에게도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당황한 친구들의 시선을 모른 채하며, 융터르는 다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 똑바로 말해라. 그 정보를 당신이 주는건가? 아니면 우리가 죽여야 할 사람이 주는건가?"
"흐-응. 다 뒈져갔었던 놈이 머리 하나는 쌩쌩하게 돌아가는구먼. 그 말이 맞아. 네놈들 친구를 납치한 놈이 바로 내 아이의 따까리야. 정보도 자식 놈이 주겠지. 납치를 지시했으니까."
"모르는 채로 곧이 곧대로 따랐으면... 네 년이 하라는대로 기약없는 꼭두각시 놀음을 했어야 했겠군."
"이용해먹을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재밌는데. 이거 영 재미없는 실험체구먼. 쯧."
원하는대로 풀릴 뻔했던 것이 허투루 되어버린 것을 깨달은 노파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면서 의뢰에 필요한 정보를 건넸다. 도시 남동쪽에 있는 낡은 호텔에 프리터를 납치하도록 지시를 내린 자가 있고, 놈을 따르는 부하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점 따위를. 떨떠름하게 의뢰를 받은 일행들에게 늙은 픽서가 그 심란한 마음에 "빨리 하지 않으면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불을 질렀다. 그들은 단답벌레를 선두로, 기습을 염려한 뢴트게늄이 가장 뒤늦게 나오면서 파칭코 가게 입구에 있는 쓰레기통을 세차게 차는 것으로 그들 모두의 감정을 대변했다.
곧 일행이 탄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저기... 융터르 씨, 화 났어요?" 차 뒷자석에 탄 뢴트게늄이 전에 없던 태도를 보인 융터르에게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화났습니다." 앞좌석에서 열 손가락을 뚜둑 소리 내며 꺾어대던 리퍼닥이 답했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정말로 화가 났던 모양이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픽서의 의뢰는 저와 단답벌레 님만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아니 왜요? 위험할텐데?" 하고 뢴트게늄이 제일 먼저 반대했고,
무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카르나르 융터르의 눈에 불이 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염려하는 마음이 컸던 비밀소녀도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래요. 단답벌레 님도 전투와는 거리가 멀텐데 차라리 다 같이 가는게 낫지 않아요?" 라며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융터르에게 지목당한 단답벌레도 오히려 그것을 반겼는지 "융털, 동의"라며 짧게 답했고, 그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인 융터르는 이유를 설명했다.
"뢴트게늄 님은 우리 중 가장 무력이 뛰어나시지 않습니까? 저 픽서의 성격으로 봐서는 의뢰를 무사히 마친다고 한들 곱게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번에는 비밀소녀 님을 납치하도록 배후에서 지시한다던가. 만약 그렇게 되면 뢴트게늄 님 밖에 없습니다."
"에이, 에헤이 설마 픽서가 그런 짓을..." 뢴트게늄이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타이거 클로의 영역에서 조직원을 '아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아마 그 가운데 입지가 상당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휘하의 조직원을 청부살인하는 의뢰인데도 그 주위에 아무런 반발이 없었잖습니까."
그 말에 설득당해 할 말을 잃은 반대파 두 사람은 경계만전인 상태로 먼저 차에서 내려 아지트로 향하면서도 몸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운전하는 단답벌레와 어쩐지 손을 품에 찔러 넣은 융터르가 고개를 한번 끄덕한 뒤 차가 다시 출발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픽서가 말한 그 문제의 낡은 호텔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대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근처에서 사는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부분이 타이거 클로 특유의 상징을 몸에 새겨넣은 깡패들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큰 경계태세는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융터르가 단답벌레에게 나지막하게 "갑시다" 라고 말하며 안으로 움직였다.
호텔 로비에 들어선 두 사람은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노려보는 갱단원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갔다. 덩치는 제법 되지만 학자같은 인상의 카르나르 융터르와, 아예 체구 자체가 너무 작아 위협거리도 안 되어보이는 단답벌레는 새삼 이 사이에 뢴트게늄까지 끼어있었으면 정면돌파를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체크인을 맡은 종업원은 저들과는 전혀 무관한 관계인지, 긴장을 전혀 숨기지 못한채 덜덜 떨리는 몸과 목소리로 그들에게 의례적인 환영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현재 스위트룸이 위치한 15층은 이용하실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하며 작게 윙크를 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듯하였다. 감정의 동요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융터르가 물었다.
"그러면 14층 이하로는 방을 빌릴 수 있습니까?"
"네, 네네, 가능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체크인 과정이 끝난 뒤, 두 사람은 14층 객실로 들어선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가 본편이었기 때문이다. 전면전만큼은 자신이 없던 융터르가 테크웨어의 주머니 속 이곳 저곳에서 나이프 여러 개를 꺼내면서 단답벌레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진입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네."
놈들이 있는 15층은 아래에 있을 때에 비할 바 없이 경계가 살벌할 것이다. 단답벌레는 이미 로비에서 호텔에 설치되어있는 감시카메라를 전부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리퍼닥에게 위치와 적의 정보를 안내할 계획이다. 융터르는 양손에 가죽장갑이 벗겨지지 않도록 단단히 여맨 뒤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복도, 둘.
단답벌레의 말처럼 복도에는 두 단원이 서로 등을 지고 반대방향을 보면서 누가 오는지 감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상계단의 문 앞에서 대기하던 융터르가 혹시 주위에 더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없다는 답을 확인할 때,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한 놈이 걸어오고 있었다.
놈을 우악스럽게 낚아채 입을 강하게 틀어막은 융터르가 주저하지 않고 역수로 쥔 나이프로 경동맥을 빠르고 강하게 찔렀다. 피분수가 나기 직전에 던지듯 바닥에 적을 떨어트린 리퍼닥은 주저하지 않고 몸을 돌린 다음, 그 나이프를 강하게 던져 다른 보초의 머리에 정확히 맞췄다. 그 모양새가 두개골을 확실히 뚫은 것인지 확인하고 회수한 융터르가 조용히 말했다.
"처리했습니다."
-1508호, 셋.
두 명이라면 모를까 셋이라. 방금과 같은 암살은 힘들겠다 생각한 그는 예전 프리터가 만들어뒀던 섬광탄을 하나 꺼내 살짝 연 문 안으로 흘려보냈다. 곧이어 '펑!' 소리가 나고, 리퍼닥이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하고 발악하는 적들의 급소를 순차적으로 찔러 쓰러트렸다. 마지막 한 놈만 남기고. 융터르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그림자처럼 뒤를 밟아 남은 졸개의 목에 칼을 겨눈 채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사, 살려만 줘!"
"당신들의 보스, 어디에 있습니까?"
"아... 아으아.... 그건 말, 말 못해...! 살려줘 제발... 흐윽..."
추하게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자비를 구걸하는 졸개의 목에 리퍼닥이 칼날을 더 세게 눌러 피가 배어 나오게 하자, 졸개는 패닉에 빠져서 엄마야 같은 소리를 하며 울부짖으려고 했다. 소음은 원치 않았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이 그 위치만 말하면 당신은 살 수 있다며 타일렀다.
졸개가 연거푸 진짜냐고 묻고는 "페, 펜트, 펜트하우스에 있어..! 펜트하우스에 있다고오오--!!" 라고 오열을 했다. 그리고 느슨해진 손길에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희열을 느낀 것인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탈출하려는 때에. 융터르는 부드럽게 "정보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말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폐 두 곳을 찔러, 고통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인질을 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잔인해.
"시간이 없습니다. 펜트하우스까지는?"
-복도 끝, 엘리베이터.
단답벌레가 감시카메라로 확인하며 타박을 놓는 소리를 했지만 상대는 냉정하게 말했고, 그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암살하기에 체급차가 나는 경우에는 그 특유의 중저음으로 안심시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독이 발린 나이프를 수차례나 쑤셔 적의 사이버웨어를 전부 망가트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해커는 긴장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다 15층을 완전히 '청소'했다는, 비인간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리퍼닥의 말에 방에서 빠져나왔다.
조직원들의 생명이 다한 몸뚱이들을 조심스레 지나간 단답벌레의 눈에 보인, 펜트하우스로 올라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융터르의 모습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지 오래였다. 숨을 몰아쉬며 양 손을 잘게 떠는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단답벌레가 넌지시 물었다.
"화남?"
"그런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친구를 구해내기 위한 살인과 윤리의식 간의 괴리감에 괴로워하던 카르나르 융터르가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이내 곧 무릎을 바닥에 꿇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카드키를 확인하려던 단답벌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그 행동에 위안을 받은 리퍼닥은 "빨리 끝냅시다"라며 애써 일어났고, 해커 또한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펜트하우스는 조용했다. 사람은 제법 되었지만 전부 무기를 꼬나쥐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것만 노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딘가 탁하게 "띵!" 하는 소리가 울리며 엘리베이터가 펜트하우스 층에 도착했지만 막상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당황해서 수군거릴 때였다. 펜트하우스 내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들이 일제히 작동을 하는가 하면,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져 시야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갑자기 찬 바람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곳곳에서 '흐윽' 하는 소리가 들리거나 바닥에 무릎을 세차게 찍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리기를 반복했다. 당황한 조직원들이 보스가 "쏘지마! 쏘지 말라고 이 개새끼들아!!"라고 악을 쓰는 것조차 무시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는 곳이다 싶으면 총을 마구잡이로 갈겨댄 탓에 자기들끼리 맞춰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소란이 곧 혼란으로 바뀐지 고작 15분 정도가 지나자, 빛을 잃어버렸던 모든 조명들에 다시 불이 들어오고 보이는 광경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갱단원은 곧 보스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아, 그가 아래에 있던 놈들을 부르려 할 때였다. 공중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그를 덮치더니 응사하려고 했던 보스의 손을 나이프로 바닥까지 꿰뚫어버렸다.
"허튼 생각 마."
"너, 너 뭐야! 어-어디서 보내왔어! 으아악!! 아파! 빼.. 칼 좀 빼 줘!!"
"묻는 말에나 대답해. 네가 프리터라는 기술자를 납치하라 지시했나?"
보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연신 지르기만 할 뿐, 어떤 정보도 털어놓지 않으려 하지 않았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융터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무릎으로 보스의 목을 세게 짓눌렀다. 기도가 막힌 보스의 눈이 뒤집히기 직전 겨우 압박을 푼 그가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압박해왔다.
"했어!! 내가 했다고!! 제발... 제발 살려줘어... 제바아아알--!!!"
"어디에 있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고에! 거기에 있다! 부탁이야, 대답했으니까 이제 날 놔줘!!"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악을 쓰던 보스가 이내 곧 조용해졌다. 그의 경추에 깊이 찔린 나이프가 섬뜩한 빛을 내는 것을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보던 리퍼닥이 다시 그 흉기를 뽑아들었다. 그 동안 단답벌레는 방을 탐색하는가 하더니 그 새 다 마쳤는지 먼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급하게 수돗물로 얼굴에 묻은 피를 세수하고 나온 융터르가 "방금 뭘 찾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봤지만, 단답벌레는 그저 "비밀"이라는 말과 함께 입을 꾹 다물었다.
호텔 뒷문은 본래 직원용 출입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부로 접근 할 수 없었지만 단답벌레가 빠르게 해킹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빠져나와 처음 주차했던 곳까지 다다르었다.
"괜찮?"
"괜찮.... 아닙니다. 솔직히 죽을 것 같군요."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출발한 뒤, 단답벌레가 헬쓱한 얼굴이 되어버린 카르나르 융터르에게 걱정 어린 말을 했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행위를 오늘 처음으로, 그것도 여러 번 저지른 그이기에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그는 곧바로 비밀소녀와 뢴트게늄에게 연락했다. 두 사람도 걱정이 되었는지 신호가 걸리자 마자 곧장 전화를 받았다.
"프리터 님 위치를 알았습니다."
-어디에요 거기!?
-연장 챙길게! 어디야 거기!!
"아까 안내 받았던 호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고입니다."
-융터르 님, 목소리 많이 떨리고 있는데 괜찮아요?
"쉬면 좀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두 분 모시러 갈테니... 다시 연락드리면 바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연락을 끊고 난 뒤, 융터르는 눈에 띄게 지친 기색이 되었지만 아직은 아니다라며 연신 중얼거리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으려 애를 썼다.
-Unstoppable(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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