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 단답벌레 : 파괴된 일상
문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의 현장 속에서 단답벌레는 온 몸이 휘청거리는 자신의 몸을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차기 대권 주자로도 명성이 드높은 정치인이자 아버지가 연설을 하기 위해 나와있는 광장에서, 그는 그 굉음 이전에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외치던 것 까지만 기억이 날 뿐이었다.
귓가에 조율이라곤 전혀 안 된 것 같은 바이올린의 고음같은 이명이 가시지 않는다.
현기증으로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지탱하고자 허우적거리는 손에 닿은 것은 이미 싸늘하게 죽은 사람의 조각. 점차 이명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비명이 새치기를 하였다. 어떻게 된 일이였더라. 단답벌레는 여전히 중심이라곤 잡을 줄 모르는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도 무시하고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건 지독한 악몽이 아닐까.
“이거…, 꿈임.”
꿈일 것이다. 단답벌레는 그렇게 믿는다. 이 꿈에서 깨면, 자신은 분명 지루한 정치가의 연설을 듣고 환호성과 그의 이름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하늘에 손을 뻗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떨결에 자기도 덩달아 손을 대충 들어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순식간에 부정하는 현실이 뺨에 상처를 내어 말했다. “꿈 깨”
힘이 풀린 다리가 조각조각 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뺨에는 뜨뜻 미지근한 피가 흘렀다. 이게 꿈이 아니라니, 순식간에 그는 자신의 두 눈위로 아주 작은 구멍만 뚫어놓은 질 나쁜 장난감이 덧씌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숨을 몰아 쉬었다. 그것도 현실감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곧 그의 귓가로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몸을 부축하는 사람들이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라고 연거푸 묻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닐까, 그는 그 폭발의 현장에서 계속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의 수행비서와 같은 사람들은 과호흡하는 그를 차에 태워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차 안에서는 무미건조한 앵커의 목소리가 선거 유세 현장에서의 폭탄테러 사건을 낭독하고 있을 뿐.
2. 🐱🌃📖 / 융터르 : 고양이의 보은은 언젠가.
그 날 밤 따라 유독 잠이 오지 않았기에, 심리상담가는 충동적으로 서점에서 샀던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도통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말 그대로 충동적으로 산 책이었기에 평소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았고 두 번째 큰 이유는 그 충동심을 불러일으킨 과대광고에 혹한 탓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애옹!”
자신의 생활공간을 겸하는 상담실이 위치한, 이 건물의 공동현관에서 새끼 고양이가 계속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옹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애옭! 이라고 우는 그 소리는 듣기에 따라 꼭 제 어미를 부르는 느낌이다. 심리 상담사는 결국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활자를 덮어버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공동현관을 나서자 제법 밤공기가 서늘하게 그를 맞이했다.
“아, 이런.”
“애옹!!”
현관 근처에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의 고양이가 자기를 올려다보더니 곧장 그 다리에 몸을 비볐다. 물론 살기 위한 태도라지만 필사적으로 자기 머리를 부비는 그 행동에 차마 내칠 수도 없던 그는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고는 그 배를 보았다. 먹은 것이 없기는 한지 한참 홀쭉하다.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새끼 고양이가 먹어도 될 만한 것을 검색해, 편의점에서 산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 건네주자 그 홀쭉한 배가 마냥 거짓은 아닌지 요상한 소리를 연거푸 내며 새끼 고양이는 말끔하게 먹어치웠다.그러고는 다시 자신을 올려다보며 다시금. “야옹!”
“…꼭 잘 먹었습니다. 라고 들린 것 같은데.”
융터르는 고양이를 다시 안아들고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동물병원에 들려야겠다 생각하며, 마침 적당한 종이 상자 안에 낡은 담요와 물그릇을 넣고 그 안에 고양이를 담았다. 곧 쌔근쌔근 잠자는 그 빵빵한 배가 눈에 띄어 심리상담가는 자기도 모르게 실풋 웃고 말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이 고양이가 생각보다 말괄량이 아가씨였고, 밤에는 반드시 같이 자길 바라는 응석쟁이라는 것을.
3. 🍷😳💸 / 소피아 : 한 잔의 술과 동전 한 닢의 위로
복면을 쓰지 않은 소피아는 어쩐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대로라면 이 위로 그 익숙한 천의 감각이 느껴져야 하건만. 그러나 모든 장소에는 그에 걸맞는 복장이 필요했고, 그건 그의 본업인 선량한 시민이자 괴도의 일에도 어김없이 해당되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귀족의 파티장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복면을 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마찬가지로 비싼 티를 확실히 드러내는 옷차림들의 면면이가 이 이하의 천박함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지어내고 있고,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팻말이 하나씩 들려있다.이 긴장감과 엄숙함이 우아함의 탈을 쓰고 있는 공간은 다름 아닌 경매장. 출품된 물품은 오로지 단 하나. 소문만 무성한 환상의 보석이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것을 노릴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유독 몰려있는 곳에 은근슬쩍 다가간 그는 그 중심에 이번 경매의 출품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과연 파티의 주역인가? 당연하겠지만 저 자에게 다가가봐야 보석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피아는 그저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들으면서 제공되는 와인을 조금씩 홀짝였다. 일을 하는데 있어 음주는 영 그렇지만, 풍겨오는 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병당 수십만은 호가하는 그런 물건이겠지.
그때 사람들 사이를 뚫고 누군가가 이 경매장의 주연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하였다. 곧 희대의 보석을 볼 예정이라는 기대로 열띤 얼굴들은 그 광경을 그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별안간 보석의 주인이 외치는 비명이 모든 분위기를 바꿨다.
“그 보석이 가짜라고?! 거짓말이지?!”
고급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멀찍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예 경매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소피아는 바뀐 분위기에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가짜 보석이라니, 누군가가 미리 훔쳐 바꿔치기 한 것이 틀림 없었다. 예를 들면 자칭 정의의 도둑 아가씨라던가. 소피아는 이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경매장의 주인에게 동전 한 닢을 튕겨주었다.
뭐, 지금은 푼돈이라도 조심조심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아가버린 돈에는 미련 가지지 마시죠!
4. 🌲☕🏕 / 융터르 : 휴식이 필요해
엄선한 커피콩을 핸드그라인더에 정해진 계량대로 집어넣고 그 손잡이를 돌돌 돌린다. 걸리는 느낌이 없어지자 반대편에 난 틈을 쥐고 돌려 잘 갈려진 그 가루를 일회용 커피필터에 잘 담아내고, 모닥불 위로 물이 끓고 있는 양철 주전자에 시선을 돌렸다. 이 향이 날아가기 전에 재빨리 물을 조심스레 붓고 그 향을 가둬야 한다. 화상에 조심하며 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를 필터 속 커피가루를 향해 살살 붓기를 거듭하면, 그 밑에 깔린 잔에는 어느 덧 진한 갈색빛이 도는 커피가 자리한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렇게 애써 완성된 커피를 살짝 입 안에 넣고 굴렸다. 때마침 들려오는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일제히 합창하는 소리와 함께 내쉬는 숨에는 커피의 향이 만족스럽게 배어있었다.
“굳이 여기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을 텐데요.”
그는 혼잣말을 했다. 사실 누가 있으면 대놓고 들으라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을 여기에 일부러 끌고 온 두 덩치 큰 중년들이라던가. 편한 휴식을 취하게 해준다면서 캠핑장으로 끌고오더니 온갖 물건들이 타고 온 차에서 쏟아졌고, 정신을 차리자 텐트를 이루는 합금 뼈대를 맞추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끔 바닥에 못질도 하고 있었다.
이걸 과연 휴식이라 불러도 좋은 걸까?
심지어 두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다. 깜빡하고 저녁에 먹을 바비큐 재료를 사오지 않았다면서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상담사는 아직도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황급히 어디론가 간 둘을 생각하면 눈이 갸름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의 커피는. 그래 인정하자. 이 커피는 여기서 마시고 있기에 그 맛이 각별하니까.
모닥불 속 장작이 타닥타닥 작게 갈라지며 온기를 주위에 스리슬쩍 퍼트리고, 그는 그 온기에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정말로 휴식이 필요하긴 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자 다시 쏴아아 하는 시원한 소리가 들린다. 곧 있으면 일행들이 돌아오겠지만 지금은 혼자있는 이 여유를 즐기자.
5. 🍨💗🐏 / 도파민 박사 : 부드러움이라는 이름의 미끼
저 멀리서 하쿠가 양떼에게 풀을 주고, 그런 하쿠가 사랑스럽다는 듯 새우튀김은 그 곁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왁파고에게도 그 인상이 제법 무해했는지 양들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아예 곁에서 잠을 청하고 있으니 참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은.
“음, 이 아이스크림, 정말로 맛도 좋구만!”
목장 특제의 진한 우유향이 매력적인 아이스크림 위에, 국내에서 특산지로 알려진 지역에서 공수해온다는 딸기가 거칠게 갈린 시럽이 듬뿍 뿌려져 한 숟갈 한 숟갈이 정말 일품이었다. 느끼하지 않고도 부드럽기는 쉽지 않건만, 이 차가운 생크림 같은 놈은 그것이 가능하다며 자신의 입과 혓바닥 위에서 적극적으로 주장을 한다.
설탕을 정말 맛내기 정도로만 쓴 것이 분명한 이 딸기시럽도 오물오물 씹다보면 그 과육이 살짝 느껴지는 것이 달기만 해서는 단조로웠을 아이스크림에 살짝 새콤함이라는 생기를 불어줘, 도파민 박사는 무리해서라도 여기에 온 것을 이제는 감사하게 생각했다. 마음을 먹었다. 연구소로 돌아가더라도 이 맛난 놈은 꼭 더 먹어줘야겠으며,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두 할배들에게도 맛을 보여줘야한다.
“으이?”
분명 목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서 그 단맛을 즐기고 있는데, 뭔가가 그의 가운자락을 깨무는 것이 느껴졌다. 엉겁결에 보니 아직 뽀얀 털의 어린 양 한 마리가 무리를 이탈하고는 실험복 가운 끝을 잘근잘근 씹는 것이 아닌가.
“으이! 이놈아! 이건 네 먹이가 아니다! 저리 가라!”
“메에—!”
“이잉? 저리 가래두!”
“메, 메에에—!!”
티스푼을 들고 있는 채로 손짓을 하자, 양이 물고 있던 옷자락을 퉤 뱉었다. 그리고는 대뜸 제 머리를 박사에게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틈이 날 적마다 바라보는 것은 다름 아닌 테이블 위의 아이스크림. 박사는 당황하기도 하고 그런 양이 귀엽기도 해서 “아이고 이놈아! 이건 네가 먹는게 아니야!” 라고 외칠 뿐이다.
6. 🍂🦜🎻/ 비밀소녀 : Autumn Leaves
비밀소녀는 오늘도 정의의 도둑이 되기 위해 슬쩍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갔다. 산 초입에 위치해 있지만 정갈한 느낌이 드는 주택에서는 그 누군가, 즉 집주인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붉게 바랜 낙엽에 어울리는, 애절한 느낌이 가득한 곡이다. 이런 음악은 잘 모르겠지만 음 하나하나가 마음을 휘어잡는 것이, 연주자가 어떤 감정으로 바이올린을 켜는지는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은 말하자면, 슬픔과 분노다.
“안—녕!”
“어머나, 안녕?”
“아아안—녕!!”
열린 창문으로 슬쩍 들어왔더니 조금 요상한 소리가 들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멋쩍게 웃고 말았다. 이상하네요, 저번에 답사를 할 적에는 새 친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비밀소녀는 내심 당황하면서도 그 새 친구에게 인사해주었다.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앵무새 친구다. 그 소리에 연주자가 놀리던 활을 멈췄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
집주인이 연주하던 방에서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나무 냄새를 풍기는 복도를 탁탁 두드리며 나타난 그의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고 물기로 번들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새장 속에서 기분좋다는 듯 날개짓 하는 친구에게, 집주인이 누가 왔냐며 싱겁게 물을 때에도 그녀는 그 옆에서 조용히 있었다. 앵무새는 여전히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누가 왔었나보구나? 네가 인사를 할 정도니까 나쁜 사람은 아닌가보네.”
싱겁게 웃은 집주인은 아예 새장을 더듬더듬 집어 올려 자신이 나왔던 방으로 도로 들어갔다. 물론 비밀소녀도 그 뒤를 따라가, 조용히 녹음기의 전원을 올렸다. 그녀가 훔칠 것은, 시력을 잃어 실의에 빠져버린 연주자의 파괴된 일상이다. 이 사람의 연주가 다시 세상에 공개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요? 시력을 잃은 것으로 훌륭한 연주자인 당신이 주저앉을 이유는 없다는 걸.
다시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된다. 낙엽을 사박사박 밟는 느낌이 어울리는 그것은 이제 누군가와 같이 걷는 다정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7. 🌅🍾🎉 / 뢴트게늄 : 황혼부터 새벽까지
무려 왁굳님이 예약해 놓은 이 산 속 별장. 사람들이 저마다 피곤해서 방마다 흩어져 자는 동안, 뢴트게늄이 눈에 띄는 분홍색 머리를 긁었다. 즐기는 건 좋았는데 너무 즐긴거 아닙니까, 예?!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술을 마시고(물론 하쿠나 김치만두, 독고혜지는 아니지만) 서로 덕담을 하며 떠들다보니 시간이 정신없이 지났고 그 흔적이 좀 지저분했다. 실은 ‘좀’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고, 가감없이 묘사하자면 상당히.
물론 뢴트게늄도 하품이 쩍쩍 나오는 것이 온 몸에서 휴식이 필요하다 아우성을 치는 것이 느껴지고 있지만,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이 워낙 눈에 밟혀서 이걸 치우지 않으면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우 졸려, 뭐야 벌써 3시가 지났어?”
여념없이 청소에 매진하다보니 벌써 3시가 넘어갔다. 새해맞이 해돋이로 예정시간이 6시를 조금 넘긴다고 했으니, 지금 얼른 눈을 붙이면 충분히 개운한 정신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뢴트게늄은 그렇게 쌀쌀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쓰레기봉투 몇 개분이 나오는 그 흔적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적당히 들어갈 수 있을법한 방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아니 붙였다고 생각했다. 귓전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억지로 눈을 살짝 뜨자 아직 새벽 5시가 아닌가! 저 멀리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캘리칼리 님이 또 술병 하나를 뜯은 모양이다.
“이게 뭐야…!”
왁자지껄한 소리.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뢴트게늄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몇 시간 전의 광경과 똑같다. 마치 그의 헌신적인 행동이 어떤 허무한 꿈이나, 아예 없었던 일 취급을 당하는 것 같지만 곧 있으면 일출이 올 것이라 생각되니, 이상하게도 그 또한 즐거워졌다.
“아니! 나 빼고 먼저 즐기면 어떻게 해요?!”
뢴트게늄도 그 난장판에 기꺼이 끼어들었다. 샴페인 한 병을 들어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뜯고는 벌써부터 신난 사람들에게 뿌린다. 그래 파티는 이런 재미지!
8. 🎃🎡🎞️ / 뢴트게늄 : 혼자가 아니야?
영화관 티켓 발권 전용 키오스크에서 예매한 티켓이 톡 떨어졌다. 무서운 건 그리 좋아 하지 않지만 워낙 너도나도 다 본 영화라서 그런가, 요새 이야기의 주제는 거의 이 무서운 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해 뢴트게늄도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마음같아서는 모 위키에서 줄거리를 읽고 영화 본 척을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3번으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재밌는 관람 되십시오.”
발권을 확인하는 알바생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영하는 것들이 끝나고 나면 폐관을 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심야에 공포영화라니, 평소라면 이런 깡도 없었겠지만 워낙 인기가 좋은 탓인지, 그보다 이른 시간에 상영하는 방향으로는 티켓을 구할래야 구할 수 없었다.
팸플릿과 미리 들어본 이야기에 따르면, 지극히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할로윈에 폐놀이공원에서, 살인마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기 위한 하이틴 슬래셔 무비다. 얼빠진 주인공들이 괜히 담력체험인지 뭔지를 하겠다고 멋모르고 들어가놓고는 괴상한 광대 따위의 할로윈 분장을 한 살인마들의 심기를 거슬러 쫓고 쫓기는 추격전. 물론 그 사이사이마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심약한 뢴트게늄의 입장에서 비록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이 여기저기 있더라도 당장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었기에 연거푸 비명을 지르기 일쑤였다. 입을 틀어막아도 꽥 나오는 소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그럴적마다 등 뒤로 그의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놀리기라도 하듯 킥킥거리는 것이 영 신경에 거슬렸지만 어쩌겠는가.
“아, 아니이—!! 누가 이런 걸! 어?! 나 진짜아—!!”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주황빛 조명이 환하게 들어오자마자, 그는 공포심에 글썽였던 눈물을 닦아내며 벌떡 일어났다. 뭔가 이상하다. 일찌감치 들어와서 몰랐는데, 이 상영관에 왜 아무도 없는걸까? 등 뒤로 들렸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는? 뢴트게늄의 등 뒤가 축축해졌다. 역시 심야에 공포영화를 보는게 아니었어!
9. 🏰🌙🎉 / 루비늄 : 어설픈 환대
초승달이 환하게 숲 속을 비추는 밤을 헤메는 세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해루석과 비즈니스 킴, 그리고 뢴트게늄이다. 그 얼굴들을 자세히 보면 한 사람은 난처해하는 것이 역력했고, 다른 두 사람은 불만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전자는 비즈니스 킴이고, 후자는 나머지 둘이다. 이미 인내심의 끈이 끊어진지 오래라는 듯, 뢴트게늄이 투덜거렸다.
“아니, 자기 성도 모르는 성주가 다 있어요?”
“조금, 조금만 더 가면 곧, 내, 내 성이 나오네!”
“이거, 술 자꾸 흔들려서 쓴맛 나오는 거 아닙니까?”
“그, 그런 술, 술보다 내 성에, 더, 더 좋은, 술들이 가득하네! 걱정말게!”
두 말하면 무엇하랴, 명백히 이 셋은 여러모로 어설픈 집주인의 어설픈 길안내라는 황당한 이유로 숲 속을 이 야밤에 헤매고 있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저 주소만 알려줬을 다른 멤버들은 진작에 도착해서 계속 비즈니스 킴은 언제 오느냐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어느 집주인이 자기 집이 어딘지 헤맨단 말인가.
“아 여깄지.”
뢴트게늄이 차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앞서가던 비즈니스 킴의 귓가에도 들렸는지, 그가 뜨끔해하는 것이 다 티가 났다. 해루석은 연거푸 루석바에서 들고 온 와인의 밸런스가 깨졌을까 노심초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래도 성주를 변호해주고 싶었는데, 누구라도 이런 한밤중의 숲 속이면 길을 잃기 쉽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저기! 저기 보이는 것이 내 성일세!”
과연 밝다기 보다는 안도했다는 쪽에 더 가까운 성주의 목소리가 들리고 고색창연한 유럽식 성의 모습이 나머지 둘에게도 보였다. 셋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비즈니스킴은 이럴 때를 위한 가장 완벽한 변명도 준비해두었으니. 무릇 파티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인내심을 가지게 천민들!
10. 👻👹🥱 / 프리터 : 망령들이 나온다
일일알바로 다져진 프리터의 관록은 여느 정규직을 우습게 볼 정도지만, 육체적인 문제는 때때로 그 경험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심야시간의 편의점, 손님도 없고 위치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낡은 가로등 불빛이 없으면 주위에 뭐가 보이지도 않는 이런 곳. 편의점 사장은 프리터에게 제법 친절해서, 폐기가 나온 것이 있다면 먹어도 좋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할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청소며 비품관리며, 재고마저도 완벽하게 수행해 놓은 상태! 이런 완벽한 일처리를 당장 사장님이 보고 감동을 받아 정식으로 채용해준다면 좋겠건만. 내심 뿌듯한 마음에 그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유리문에 달아놓은 차임벨이 딸랑 하고 울렸다.
“어서! 오십시오!”
“응, 어서 왔네.”
어쩐지 얼굴이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덩치가 너무나도 큰 남자와 파란색 줄무늬 유카타를 입고 동행인과 정반대로 굉장히 작은 남성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둘은 편의점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생필품은 하나도 없고 그저 먹을 것, 그리고 술을 비롯한 마실 것들이다.
차례차례 바코드를 찍고 봉투에 담아서 보니 그 금액이 상당해, 프리터는 내심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래놓고 먹튀를 해버리면 어떻게 되버리는거지?
“이런, 이거 금액이 꽤 상당하구만?”
“비쌈.”
작은 사내가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이 고른 냉동피자는 절대로 뺄 생각을 하지 않고, 덩치 큰 남자는 술이 없으면 안된다며 강짜를 부렸다. 그리고 프리터는 돈을 받아야 한다. 다시 모니터를 압박하는 금액을 보고 절대로 펑크나면 안된다는 필사의 각오를 한 알바생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손님! 혹시 단순히 술 마시는 것만 목적이면! 제가 조금 봐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럼 좋지!”
손님들의 동의를 구해 편의점 곳곳을 누비며 조금 더 저렴하면서도 맛은 크게 차이가 없을만한 것들로 장바구니를 다시 채우니 금액이 조금은 더 줄어들었다. 호탕한 남성이 그 결과에 만족스러웠는지, 계산을 하겠다고 던진 것은.
“아닛! 손님! 금, 금을 주시면!?”
카운터에서 황급히 뛰쳐나온 알바생은 두 손님을 불러세우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카운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손님의 하반신이 보였다. 그 하늘하늘하게 일렁거리는 그것. 당황한 프리터가 손에 든 묵직한 금덩어리를 보다 하늘을 향해 외쳤다.
“큿소—! 이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겁니깟!!”
11. 🌃🎟🍿 / 새우튀김 : 가장 합리적인 덕질
몇 년만의 공백기를 깨고 그토록 바라왔던 신작 애니메이션이 극장판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새우튀김은 한시바삐 논문을 쓰라며 쪼아대는 교수님의 잔소리도 뒷전으로 한 채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웃음소리가 독특한 아르바이트의 도움을 받아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포토티켓의 감격이란. 최애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은 하쿠보다 아주 조금 못할 뿐이다. 행여나 귀하신 티켓이 훼손될까 조심스럽게 스마트폰 케이스의 지갑에 보관해 놓은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영화가 상영하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있어 그는 묘하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눈 앞에 포장된 선물상자를 뜯지 못해 안달난 어린이의 마음을 지금 이 나이대에 느끼다니. 새우튀김은 나이에 걸맞게 그저 초조해하지 않고 가장 현명하게 시간을 죽일 방법을 떠올렸다.
“카라멜 팝콘 레귤러 사이즈랑 콜라 레귤러 사이즈요.”
주문을 받은 아르바이트가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대뜸 더 훌륭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 돈에 몇 천원만 추가를 하면 사이즈 업은 기본이고 그가 이제 볼 예정인 그 극장판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의 피규어와 브로마이드까지 주는 상품을 권한 것이다. 진열대에 전시된 그 모습을 본 새우튀김은 결심했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이 정도면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가? 어차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한데 좀 더 많이 씹고, 그러다보면 목이 막히니 콜라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데. 게다가 피규어에 브로마이드를 얻을 수 있는 일도 흔치 않은 것이다. 그리 생각하던 그의 눈에 누군가가 띄었다. 저 핑크색 머리는 설마?
“아잇, 뢴트게늄 님도 이거 보러 왔어요?”
“역시! 새우튀김 님도 이거 볼 줄 알았지!”
조금 한적한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영화가 시작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실컷, 간만에 ‘개방’을 한 상태로 노가리를 깠다. 밤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12. 🐦🛌📻 / 하쿠 : 만났다면 더 좋은 친구
하쿠0089가 눈을 떴을 때, 푹신한 침대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판정을 받고 난 이후, 그녀의 시각 센서에 먼저 잡히는 것은 대낮인데도 침대에 얼굴을 모로 돌린 채 자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아하, 그녀의 메모리가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갑니다. 여기는 연구소가 아니라 다른 분들과 함께 자리한 별장이었습니다!
“아부디?”
“으, 으응— 하쿠야. 나 쪼끔만. 응.”
평소 이리저리 밤을 새는 일이 잦은 아버지는 그녀가 살짝 깨워보려 해도 피곤한지 살짝 꿈틀거리며 웅얼거리더니 도로 잠들었습니다. 피곤하다면 차라리 침대를 아버지가 쓰시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하쿠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거 큰일났습니다. 하필 다리 쪽을 움직이면 높은 확률로 아버지가 깹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도로 침대 위로 누웠습니다. 시계도 없는 방에, 적당히 늦은 오후임을 알려준 것은 그녀의 머리 맡에 둔 은은한 정도로 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가 시간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아버지가 그녀의 취향을 알기에 맞춰둔 채널일까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후에 나오는 곡들은 명백히 그녀의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흘러나오는 소리 사이로 주파수가 맞지 않아 비집고 나오는 깨지는 음이 아무래도 그나마 이 채널이 소리가 잘 나오니까 틀어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싫증이 난 그녀가 손을 뻗어 라디오를 끄고 도로 누웠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누워서 눈을 감으면 잠이라고 하는 절전모드에 들어간다는데, 하쿠는 그 방법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을 따름입니다.
그 때 창문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새일까요? 애석하게도 그에 관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그저 맑고 명랑하게 지저귀는 그 소리는 어쩐지 하쿠 자신의 목소리와 닮은 감이 있습니다. 아하! 새의 울음소리가 어쩐지 새로운 노래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꼭 불러야겠습니다!
13. 🐥🔪🎁 / 호드 : 이게 아닌데…?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의 머리 위로 종이 고깔모자가, 그 앞에는 선물상자들이 있는 탁자. 덩치를 생각하면 정말로 비좁은 자리지만, 노스페라투 호드는 이 자리를 떨쳐내고 일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앞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한가득이니까. 시장의 간곡한 애원으로, 평소 어떤 축제나 기념일 등의 참석요청에 한사코 거부한 그였지만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 참석해달라는 요청에는 거절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오, 감사, 합니다.”
아이들이 건네준 선물들은 오히려 돈을 썼다는 느낌보다 편지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이나 인형들을 건네주었기에 그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히어로로서 명성을 얻은지 얼마 안되었을 때, 멋모르고 참여한 자선행사에서 후원을 빙자한 알력행사에 얼마나 이골이 났던가. 이 순수함, 이 때 묻지 않은 순진함이라니.
그래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내놓은 아쉬움이 은근히 녹아있는 얼굴들을 보니 역시 잘 관리했다가 나중에 슬쩍 돌려주는 것이 예의겠다 싶은 그는, 그저 당장 좋아해주는 아이들에게 계속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때때로 내미는 종이에 사인도 해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통솔해야 할 선생님들도 이런 분위기에 한시름을 놓은 듯 보였고.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에서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으아아—앙!!”
“자르지 마요! 자르지마—!!”
케이크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주로 먹을 목적이다보니 귀여운 쪽으로 가능한 고르려다 보니 내리게 된 선택. 노란색 퐁당으로 겉을 감싼 병아리 모양 케이크다. 케이크의 정중앙, 병아리로 치자면 정수리에 가까운 곳에 칼을 대자 아이들이 병아리를 죽이지 말아달라며 비명이란 비명을 지르는 상황.
“아이고, 이런. 이걸,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들이 달려들어 이건 그저 케이크라고 이야기 해줘도 아이들 눈에는 어쩔 수 없이 병아리로 보이는가. 호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14. 🧜♂️🌊🤿 / 융터르 : 진청색 환상
거대한 파도가 일었었다. 급하게 피하고 싶었어도, 이미 깊은 바다 속까지 파도가 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부디 등 뒤로 맨 산소통에 공기가 희박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그는 정신을 잃었었고, 이제서야 눈을 떴다. 다행스럽게도 잠수용 장비에 파손된 것도 없고, 산소통에 남은 공기도 제법 넉넉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긴 도대체 얼마나 깊은 곳인가? 카르나르 융터르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햇빛이라고는 닿지도 않는 이 곳에 뭐가 보일리 없었다.
일단은, 올라가보자.
망가진 수심계를 믿을 수 없어, 그는 무작정 위로 천천히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까마득한 곳까지 왔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렇다면 숨을 천천히 쉬면서 공기를 아껴야 하니까. 그러나 그것이 계획대로 되리라는 법은 없었다.
“…!!”
저 멀리서 흉측한 치열을 드러내며 거대한 덩치의 상어가 다가오는 것이 전등 너머로 보인다. 저 속도를 뿌리치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융터르가 작살을 겨누고 마음을 애써 침착하게 하려하였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되겠는가.
상어는 이빨로 자신을 물어뜯지 않고 그 거대한 몸집으로 몸통박치기를 했다. 마치 5톤트럭에 부딪치기라도 한 것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그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대로는 틀림없이 죽는다는 절망감과 함께.
‘누구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누군가에게 손목을 붙잡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때였다. 혹시 자신을 구하러 와 준 사람들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가공할 속도는 도대체. 융터르가 겨우 눈을 떠서 옆을 보니 맹렬하게 물 속을 채찍질하는 꼬리가 보였다. 설마! 그 말도 안되는 결론에 미치기 무섭게, 강렬한 태양빛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융터르 씨? 융터르 씨? 제 말 들려요?”
“예, 예. 일단 어떻게든….”
“세상에,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제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그가 그렇게 물었지만 일행들은 그저 해변에 떠밀려온 그를 급히 부축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아하. 융터르는 자신이 겪은 일을 이들에게 설명해봐야 납득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저 다시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부드러운 비늘이 돋보이는 뭔가가 햇빛에 반짝인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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