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왁토피아의 교황융에 사이비 속성 융이 첨가되어 있다는, 일러스트레이터 분의 오피셜 발언에 제 씹덕이 또 울부짖었습니다.
2. 그렇고 그런 쪽으로 또 생각이 났다고요. 흐흐흐…
3. 모티프를 유니톨로지 쪽으로 잡았기 때문에 욕설 및 징그러운 묘사가 들어있읍니다. 주의 부탁드립니다!!
기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도로 찔러 넣었다. 그가 어깨에 맨 크로스백에는 보조 배터리가 연결되어 있는 캠코더가 지금도 녹화 중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 한없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맞는 말일지 모른다. 지금 이 잠입취재를 하려는 곳은 요새 여러 가지로 말이 많은 신흥 종교집단의 본산이니까.
신흥 종교라면 필수요소나 다름없는 지나친 헌금 강요도 없이 순식간에 번듯한 건물이 되어 우뚝 선 교회. 그 안으로 저마다 가지각색의 얼굴을 한 채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수를 감당할 만큼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이런 젠장, 저런 양반들도 다 참석했다 이거야?'
기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헛바람을 겨우 집어삼켰다. 굳이 누구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름을 대면 바로 알아차릴만큼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들이 한쪽에 마련된 별도의 출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최근 SNS에 올리는 글들이 어쩐지 그렇고 그런 느낌이다 했더니, 그 실체가 여기서 드러날 줄이야. 그리 생각한 기자는 자기도 모르게 스마트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니 이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자가 녹음기의 전원을 올린 채 신실한 교도인 척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예배가 시작되기 전이다. 잠시 숨을 돌리며 주위를 살짝 살펴보다 적당한 뒷자리에 앉은 기자가 자연스럽게 크로스백을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살짝 올려두었다. 곁눈질로 살펴보며 렌즈가 보이도록 뚫어둔 구멍이 정확히 단상을 가리키는지 확인한 후, 미리 준비한 경전을 펴서 무슨 내용인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묘하게 과학적이다. 이과 관련으로는 지식이 없는 기자마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절마다 보이는 내용들은 흔히 신흥 종교가 보여주는 무지성한 신 찬양하기나 지구 종말론과 같은 내용과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인류라는 종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의 끝을 보는 것이 목적이며 그 방법이 집단 지성으로 지목하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어딘가 불교의 그것과 맞닿은 것 같기도 하면서 인류가 아닌 외부 존재와의 접촉을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계의 성격도 닮아있는 이 괴상함이라니.
기자는 경전을 유심히 읽는 자신에게 향한 시선들을 느꼈다. 아직 예배가 시작한다는 어떤 안내도 없어서 의아한 그가 책에서 시선을 떼자 보이는 것은 키가 제법 훤칠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자와 눈이 마주치자, 남성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기자의 등 뒤로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 자가 누구인지 안다. 아직 제의를 입고 있지 않지만, 한 올의 머리카락도 용납하지 않은 채 말끔하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과 깊고 어둡지만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 그 자가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백한 악수의 의미. 그 눈웃음만큼이나 부드럽고도 낮은 목소리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분이신데, 교리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교주 카르나르 융터르. 기자는 질시와 부러움이 뒤섞인, 교회 안의 모든 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1시간 30분의 예배시간이 끝나자 흔히 있을 법도 한 크고 작은 소모임도 하나 없는 광경에 오히려 기자가 당황했다. 그저 저들은 교회를 빠져나오는 동안 안면에 익건 그렇지 않건,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 그 특유의 인사 합일을 빕니다. 라며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쿨하게 헤어지는 광경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기자가 얼타서 눈을 끔뻑거리는 사이, 예배를 볼 동안 새하얀 제의를 입고 있던 교주가 다시 검은색 목폴라티에 검은색 코트차림으로 그의 곁에 앉아있는 것을 알아차리기 무섭게, 그는 앉은자리에서 작게 뛰어올라 엉덩방아를 찧을 만큼 놀랐다.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예배 후의 소모임이라면, 교인들 간의 친목을 나누는 것이면 충분할 뿐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강제할 이유가 하등 없지요."
"아, 아하. 네." 소모임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건만 그의 생각을 읽은 그 발언에 기자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느라 급급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이유랄 것도 없습니다. 우린 궁극적으로 합일을 추구하기에."
기자가 새삼스럽지도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한 종교의 특징이다. 합일. 집단 지성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교주의 답이었다. 어떻게 합일을 이룩할 것인가? 그런 질문에는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답했을 뿐, 정확한 답은 아직도 대중들에게 밝히지 않았고, 그나마 겨우 알려진 사실은 일종의 경지 정도라는 것이다. 이 합일을 위해 남녀노소, 빈자와 부자, 현명한 이부터 어리석은 자들까지 도저히 이 종교라는 공통점이 없이는 만나지도 않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다니.
실례했다며 자신의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기자를 앉은자리에서 유심히 바라보던 교주가 미처 교회 바깥으로 못 빠져나온 다른 사람들 사이로 도망치듯 나가려던 그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했다. 처음과 같은 그 부드러운 어조.
"괜찮으시다면 교리 공부라도 도와드릴까요?"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를 터였지만, 기자와 한데 뒤엉켜 나가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저마다 한 두 발자국 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곧 그 무리에서 기자만이 고도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꼴이 되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기 시작했다. 예배 시작 전에 느꼈던 그 질투심 어린 눈빛들이 다시금 자신을 날카롭게 쏘아보기 시작했다.
기자가 곧 당황해서 거듭 괜찮다며 연거푸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그 퇴로가 신도라는 이름의 단단한 벽에 가로막혔다. 한사코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의, 연거푸 어깨로 그 틈을 비집고 나가려던 그 움직임이 점차 멎기 시작했다. 분명 대리석 복도 위를 뒤덮은 붉은색 융단으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하건만, 긴장한 기자의 귀에는 교주의 규칙적인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보내주시지요. 무릇 모든 일은 원하실 때 해야 하는 법이니."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았다는 듯, 아까와 전혀 차이가 없는 교주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더니, 그 하나로 기자가 교회를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분명 교주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교회 앞의 작은 마당까지도 기자가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길이, 신도들이 좌우로 도열해서 높으신 분의 행차를 맞이하는 인파처럼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 사실에 몸서리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꾸역꾸역 눌러 담은 채로 교회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떨어졌다한들, 그는 자신의 뒤통수에 들러붙은 그 교주의 시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에 그날 남은 하루를 두려워하다, 평소라면 감히 시도하지도 않았을 어마어마한 폭음의 힘을 빌리고서야 겨우 잠이라는 이름의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그렇게 편법으로 이겨낸 기자는 다음 날 아침을 지독한 두통, 과할 정도의 속쓰림과 밤새 먹은 것들을 도로 확인하다 못해 아예 희멀건 침까지 보고 나서야 안정된 위장과 함께 보냈다. 그의 출근까지 마주쳤던 동료들은 거의 기어가다시피 한 그 모습에 경악하면서도 숙취해소제 따위를 입에 물려주며 평소와 다르게 답지 않은 꼬락서니에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몰라, 아오 씨…."
"모른다고? 니가?"
"아니 그 교회 이상하다면서 다 털고 나올 것처럼 굴더니 왜?"
동료들은 숙취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더 말을 걸진 못 하고 그저 빨리 술이나 깨라며 곧 자리를 떴지만, 기자는 어수선한 머리를 거의 쥐어뜯듯이 벅벅 긁어대다가 알코올 냄새가 훅 끼치는 한숨을 내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책상에 팔꿈치를 기댔다. 세상에 꿈에서 그 교주가 나와서는 뭐라 뭐라 지껄이는 것이 뭐가 무서웠기에 이러는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한들, 기자는 정말 지독하게 무서운 악몽을 꿨다는 것이다.
손에서 올라오는 뜨뜻한 체온이 슬슬 부담스러워져, 그는 동료들이 책상 위에 두고 간 숙취 드링크 따위를 대번에 꼴꼴 소리가 나도록 단숨에 들이켜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이를테면 관자놀이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두통이 가라앉을 정도의 시간이 될 정도로. 그가 어제의 취재를 위해 준비했던 캠코더를 컴퓨터에 연결해 녹화된 내용이 어떻게 잘 찍혔는지 확인하려 마우스를 여러 번 움직였다.
"뭐야 이건?"
그는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부스스한 머리가 더 부스스해지건 말건 다시 격하게 머리를 긁어대고 이미 숙취로 핏발 선 눈이 더 붉어지든 말든 북북 비벼대며 기자는 자신이 정확히 본 것인지 다시 확인하려고 화면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단상에 명확한 상이 잡히도록 잔뜩 당겨놓은 줌이기에 캠코더의 존재를 몰라야 마땅할 교주는, 이상하게도 필요할 때만을 제외하면 한쪽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촬영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것처럼, 지금도 모니터를 보고 입을 틀어막는 기자를 향해 웃었다. 질 나쁜 장난질처럼, 누군가가 그의 입만 죽 늘려놓은 것처럼 분명 입꼬리는 웃는 그것인데 전혀 유쾌함과 거리가 먼 섬짓한 웃음이.
"이런 씨발―!!"
기자가 가린 입 사이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 몰래카메라를 정확히 알아차린 것일까? 계속 '어떻게?'라는 생각만 맴돌던 그가 불현듯 들고 온 짐에서 다른 기계의 존재를 깨닫고 덜덜 떠는 손과 함께 그것을 끄집어냈다. 녹음기다. 그것도 급하게 컴퓨터에 연결해서 어제 날짜로 기록된 파일 하나를 바로 재생시키고는 황급히 귀에 이어폰을 찔러 넣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왜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앉았던 탓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외느라 작게 웅얼거리는 것만 들려오던 탓이다. 이건 영 꽝이다 싶지만 아쉬운 탓에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못하던 그의 정신에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충격이 들이닥쳤다.
-하, 캠코더에 녹음기라. 더 놀라울 것도 없군요.
-열심히 따라 외우면서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저 것들을 왜 보는 걸까…?
-날 봐야지…. 멍청한 놈.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아. 당신 같은 족속들이란. 참으로 진절머리가 나.
-난 네까짓 것을 잘 알아. 조만간 넌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언제부터? 분명 이 경멸조로 속삭이는 특유의 저음은 교주의 것이다. 동료들이 올려둔 음료수들 중 아무거나 대충 붙잡고 입에 밀어 넣어가며 정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어째서 단상 위에 있는 그 목소리가 자신의 옆에 앉은 사람처럼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란 말인가! 기자는 달달 떨리는 손 때문에 옷에 음료수가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게다가 점차 짐승새끼처럼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 내용들이 자신을 한없이 깔보고 무시하는 것들이라 불현듯 기자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취재한답시고 몰래 캠코더 숨기고 녹음기 숨기고 그랬다! 그게 잘못되었다면 잘못된 거라 하겠지만 그걸 가지고 어쩌고 저째?!'
기자는 문득 이토록 길길이 날뛰는 자신이 퍽 우스워서 실소를 입에 머금었다. 어떤 수작을 부려서 자신의 녹음기에 이런 개 같은 말을 남겼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지막 말만큼은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다시 보자 이거지? 좋아. 그는 찬물로 대충 세수를 하고 나서는 다시 취재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신도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만큼, 극소수의 정도지만 미약하게나마 탈퇴자도 있는 법이다. 기자는 그런 사람들을 어렵사리 찾아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교주와 교단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만나려고 한 사람들은 전부 그의 접근을 거부한 채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막아두고 외출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의 인터뷰 시도도 번번이 무산되고야 말았다.
허탕을 쳤다는 생각에 혀를 찬 기자는 그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시간이 제법 늦은 탓이었다. 그날 하루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기에는 이르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는 예배에 참석하기에는 제법 늦은, 그런 애매한 시간에 맞춰 그는 예배당이 아닌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렇게 30분이 지나자, 곧 사람들이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슬그머니 나온 그는 한산하게 된 그 공간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일반적인 교회와 비슷하다면 비슷한데 말이지.'
어딘가 말로 설명하자니 그건 또 어려운 위화감. 건축 양식은 전형적인 기독교 교회면서 그 흔한 십자가도 하나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기자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도로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 선택이 너무 안일했던 것이었다고 그는 후회했어야 했다. 어째서인가 하면, 기자가 들어있던 칸의 걸쇠가 갑작스럽게 덜컥 올라가고 그 문이 열리더니 누가 보더라도 신도로 추정되는 사람 여럿이 넋 나간 얼굴을 한 채로 자신을 붙잡고 이상한 냄새가 훅 끼치며 올라오는 천을 얼굴에 갖다 대었다.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맡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지만 그걸 불가능하게끔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꽉 붙잡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곧 시야가 어지러워지면서 기자는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고――
'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린 기자는 목구멍이 심하게 텁텁하고 입술이 메마른 탓에 꽤나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온몸이 쑤시고 멍이라도 든 것 마냥 욱신거리는 것이 매타작이라도 당한 것인가 싶어,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있겠거니 생각한 그가 황급히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광경이었다. 소름이 돋은 기자는 튀어 오르듯 제자리에서 일어나 혼잣말을 했다.
"이런 씨발…, 여긴 대체, 어디, 뭐야?!"
지나칠 정도로 정갈한 교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차라리 지하감옥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래된 구정물에서나 날 법한 비린내가 코 끝을 찔렀다. 실은 그보다는 더 역했다. 언젠가 딱 한 번, 불법 도축장에서 났던 역한 냄새. 오감의 기억 사이로 그것이 곧 정답을 속삭였다. 피비린내다. 자신의 볼을 까끌하게 긁어대던, 그저 최소한도의 건축물로서 구실을 하기 위함인지 마감조차 안된 거친 콘크리트의 사이사이로 메스꺼운 갈빛의 뭔가가 이리저리 튀어있는 공간.
아니다. 지하감옥이라고 하기에도 어설프다. 최소한 감옥이라면 쇠창살 정도는 구비해야 하건만 여긴 그런 것 하나도 없었으니. 기자는 긴장한 손으로 외투 안주머니를 쑤시듯 찔러 넣어보았다. 본래 인터뷰를 위해 준비했던 녹음기가 손 끝에 걸려 나왔다. 몸이 쓰러지면서 모서리 부분이 깨졌지만 그것 빼고는 멀쩡히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후 전원을 올린 다음 도로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한 가지 애석한 점은, 이 광신도들에게 납치 혹은 감금을 당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도 없었다는 정도다. 사진까지 찍어 확실히 전송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건만.
"그래, 이 개 같은 종교. 어딘가 수상하다 했지, 내가!"
그는 신발 밑창 아래로 꺼끌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바닥에 피 섞인 가래침을 되알지게 내뱉고는 득의양양 한 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는 이 기괴한 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기사를 곧바로 쓸 수 있을 것이고 그 의미는 곧. 이어지는 즐거운 상상을 애써 멈춘 그가 숨죽인 채로 이 괴상한 공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로 철골이 보이는, 투박하다 못해 엉성한 이 공간은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는지 드문드문 횃불 따위가 걸려 가까스로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한 가지 위안이 된다면, 어딘가 바깥공기라도 흘러오는지 횃불이 이따금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폐쇄적인 공간에서 그 의미는 출구와 거의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기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찬 발걸음도 등골이 오싹해지며 곧바로 멈춰버렸다. 비명이다. 순수한 공포에 질려 뱃속 깊은 곳부터 끌어올리기에 절대로 꾸며낼 수 없는 그 감정의 표출. 그런 비명이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난반사를 거듭해 아득한 메아리가 되어 어디서부터 울려대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리는, 순수한 기쁨에 가득 찬 환호소리와, 사실 들려서는 안 될 우걱우걱 거리는 소리가.
어떤 생각이 들렸음에도, 기자는 그 가설을 끝끝내 부정해야 했다. 그건 상식적인 선에서 불가능하니까. 자신의 양 뺨이 붉게 달아오르도록 힘껏 때린 그는 연거푸 메아리가 치는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익숙해진 것을 과연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회의감이 든 채로, 조심스레 소리의 원천을 찾아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횃불이 일렁이는 그림자 사이로 조금씩 움직이던 그의 발걸음은 다시 멈췄다.
피투성이.
그 장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다. 아무리 그쪽 관련으로 식견이 없다 한들, 한 사람의 분량으로는 저만한 참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기자도 알고 있다. 그러니 저 시뻘건 웅덩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못 해도. 더 끔찍한 생각을 멈추려 했지만, 뒤이은 광경은 그 생각을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냈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곳에는 기자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홀린 듯이 구덩이로 다가가는 사람들. 정말로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형태의 웃음을 지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장소가 구덩이만 아니라면.
이미 몇 안 남은 채, 헐벗은 사람들은 만면에 행복해하는 얼굴로 천천히 그 구덩이에 다가가는가 싶더니 곧 몸을 던졌고 그 뒤로는 이곳까지 오게 만든 문제의 비명소리가 뒤를 이었다.
'씨발, 이걸 말려야 하는데…!'
그는 정확히 남들과 엇비슷한 정의관을 가지고 있기에, 저 상황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저 움찔거리기만 할 뿐. 이유는 간단했다. 황홀해하며 웃는 사람들과 달리 이 광경을 기자처럼 무서워해, 살려달라며 울부짖거나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머리채 따위를 붙잡은 채 구덩이까지 질질 끌어 던졌으니까.
다른 평범하게(?) 세뇌된 신도들보다 더 듣기 괴롭고 더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들릴 적마다, 실은 그 누구나라도 저 끔찍한 꼴을 겪을 적마다, 광신도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기뻐하며 합일에 이르렀다고 축하해 주었다. 기자는 숨어서 그 얼빠진 소리를 듣고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망할 종교가 이야기하는 합일이란 곧 구덩이 속에 있는 뭔가에게 자신을 산제물로 바치는 행위다 이건가?!
'이런 미친 새끼들이 다 있나?!'
자신이 경악하는 사이에도 이미 또 한 명의,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가 다시 허공을 날고 또 자기들끼리 축하하는 역겨운 일이 또 일어났기에 기자는 품에서 녹음기가 다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제 여기서 탈출할 시간이다! 그는 자기 치아를 뿌득 뿌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이 개새끼들,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나가면?"
그 광란의 개짓거리 현장에서 제법 떨어졌는지, 기자의 귓가에 닿는 그 비명들은 이제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등 뒤로 너무나 선명하게 와닿은 목소리가. 온화하고, 나긋나긋해서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기자의 발은 바닥에 들러붙은 듯 꿈쩍하지도 않았다. 본인의 의지였는지, 아니었는지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공황에 빠진 기자가 천천히 어깨너머를 돌아보았다.
교주다. 기자와 그의 입가에는 더 이상 교회에서 보여준 그 부드러운 미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흠. 몰래 들고 온 캠코더에 이런 웃음이었던가요?" 그리 말하며 누군가가 그의 볼을 죽 잡아당겨 만든 것 같은 웃음이.
"여, 역시 알고 있, 있었어?"
"알고 있었냐고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교주가 반문을 하고 나서는 파하하 하고 바람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그것이 정말 웃기기라도 하는 듯.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렸는지 눈가에 손을 올리는 시늉까지 하고는 빙글거리며 기자를 한껏 조롱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의 존댓말이 전부 거짓이라는 양.
"물론, 알고 있었지. 당신 같은 족속이 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오, 그렇게 생각했다면 좀 유감인데."
"이런 개좆 같은 새끼가…. 그래 씨발, 저 망할 합일, 그거만 털어도 당신은 그냥 좆된 거야. 그거 알아?"
카르나르 융터르는 아예 배를 잡고는 아까와 같은 바람소리가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기자가 그 소리를 도발로서 이해하며 중얼거리는 듯하다가 고함을 질러댔다. 세뇌, 인신공양 그런 것들. 내가 다 봤거든! 네 잘난 신도들이 그 씨발 염병할 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것도 내가 다 봤다고!!
"그리고 그 가슴팍에는 알량한 녹음기가 녹음을 했을테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교주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대체, 어,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걸. 그때, 그 화장실에선"
"그래, 나는 없었지. 하지만…."
기자의 중얼거림을 가차 없이 끊은 교주는 서있기만 해서는 제법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던 기자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도 잠시,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교주가 그 눈앞에 있었다. 그가 한 발자국 기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아까와 변함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곳은 내 위장과도 같거든."
"개소리하고 있네…!! 그 구덩이! 그게 도대체 뭔데!!"
"합일을 위한 것이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함으로써 거대한 지성을 꿈꾼다는…."
그 이상한 말에 기자가 점차 발길질을 하듯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연거푸 뒤로 물러나려 했다. 만약 저 자가 하는 말이 맞다고 하면.
"당신…, 대체 뭐야?!"
기자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내뱉은 질문을 곧바로 후회했다. "그 빌어먹을 입을 닥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라고 흡사 짐승새끼가 그르렁거리듯 말하는 카르나르 융터르의 몸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서서히 뭔가로 변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기자가 순수하게 공포에 질려버렸으니. 그의 다리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기자가 주저앉아있던 몸을 허우적대다 일으켜 괴성을 지르고 도망치는 그 광경을 섬뜩한 얼굴로 보는 교주는 다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마구 달렸다.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는 교주의 웃음소리를 떨쳐내고 싶었다. 횃불이 일렁이는 그림자가 시야를 어지럽히고 출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철근 콘크리트 속 공간이 방향감각을 어지럽혀도 기자는 당장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어떤 꼴을 겪을까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교주가 보인 그 본모습. 솔직히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머리가 그 형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눈이 그걸 분명히 보긴 했지만,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그저 끔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신, 두 번 다시는 여기 오고 싶지 않아!!"
기자가 가쁜 숨을 토해내며 발악하듯 외쳤다.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인터뷰를 청했을 때, 가까스로 교회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한없이 두려워했는가? 그들도 본 것이다. 이곳을. 그리고 교주의 본모습마저도! 그러니 나갈 수 있게만 해준다면 뭐든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제법 늦으셨군요."
"여, 여기는… 이―이런 씨―!!"
결국 도망치고 도망쳐서 도착한 곳은 피비린내가 지독한 구덩이였다. 줄지어 구덩이로 몸을 던지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채, 시뻘건 흔적만이 가득한 이곳에. 교주는 아까 전과 달리 존댓말로 그를 환영했고, 기자의 눈동자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발악하듯 외쳐댔다.
"왜 이러는 거야?! 왜 이 지랄을 하는 거냐고!!"
"왜긴요? 전 분명히 온 세상에 공표했습니다.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고."
"사람들을 먹는 게?!" 기자의 새된 소리에 융터르가 고개를 부드럽게 젓고는 말했다.
"아니지요. 사람을 먹는다니. 그들은 저와 한 몸이 되어, 제 뜻을 함께하는 것뿐입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교주는 역겹고 끔찍하게 증명해 주었다. 구덩이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것은 살덩어리들이었다. 뒷걸음질 치는 기자에게 살덩어리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마구 높여대며 말을 거는 듯했고, 그것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그에겐 애석하게도 도망칠 곳은 더 없었다. 결국 눈을 감은 채 그저 "그만!!" 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이성을 겨우 되찾기까지는, 본인도 얼마나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만 흘렀다.
"세상의… 끝이 대체 뭐야…?"
"이거, 글도 모르는 어린이도 아니고…. 끝은 끝이지요. 이를테면, 종말이라던가."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그 끝이―"
"끝. 솔직히 이제는 당신의 그 지긋지긋한 질문에 답해주는 것도 질린 참이라. 단계는 여럿 건너뛰었지만, 뭐… 오래간만에 즐거웠으니."
질렸다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게 킬킬대며 웃은 교주의 손에는 곧 작은 살덩어리가 들려있었다. 저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것과 똑같다는 것을 눈치챈 기자는 더 이상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등에 닿은 기둥에 자신의 온몸이 들러붙어 있었던 것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이 공간은 위장이라는 저 자의 말이 기자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살덩어리를 들고 천천히 걸어온 교주는 기자의 입을 믿기지 않는 힘으로 벌리고는 쥐고 있던 그것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기자가 다시 회사로 복귀한 것은 취재하러 나가겠다며 떠난 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사람들은 그를 생각 외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은근히 질리도록 지독한 면이 강했던 그였기에, 물어보는 것이 귀찮았다던가 혹은 또 어딘가에 콕 틀어박혀 취재를 했다던가. 거의 둘 중 한 가지였기 때문에. 그래서 동료들 앞에 나섰을 때의 겨우 꾀죄죄한 꼴만큼은 가까스로 면한 모습도 딱히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야 임마. 너 또 어디 처박혀 있다 왔어?"
"아하하. 부장. 제가 그 종교 집단 취재한다고 이리저리 구르다보니."
"실없는 새끼. 그래서, 뭐 건진 건 있냐?"
부장의 질문에 기자가 그 사이에 덥수룩해진 머리를 머쓱하다는 듯 벅벅 긁고는 눈빛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부장, 혹시 합일에 관해서 관심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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