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어쩌다가 왜 (2)를 쓰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2. 그래도 역시 써보고 싶었어! 쓰고 싶었다고!!!
3. 이런걸 역시 커미션으로 안(사실 요새 안 들어온 지 꽤 됨)들어와서 다행입니다.
사실 순환열차를 탑승할 일이 거의 없는 프리터로서 1등석이란 사실상 그런 것이 있다더라, 라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불과 오늘 첫 업무로 검표를 하기 전까지는. 긴장한 얼굴로 정중하게 노크를 하고, 최대 오르트 구름 환승지대까지 가는 이 열차를 보다 쾌적하고 안락하게 가려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검표를 함으로서 그 도시괴담과도 같았던 실체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불과 어제만 해도 손님으로서 탑승한 2등석 또한 제법 훌륭한데도, 지금와서 비교하라고 하면 거의 헛간이나 비유할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표는. 프리터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손님들이 말했다.
“이런, 들켰군요?”
“이런?! 들켰습니다?”
명백히 위조된 표를 당당히 내미는 두 사람의 태도부터가 이미 문제를 삼아야겠지만, 그것보다도 이 가짜티켓으로 점유하고 있는 객실은 무려 1등석이다. 그것도 열차 한 칸에 객실이 단 네 개 밖에 없을 정도로, 온갖 프리미엄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달리 말해, 가장 비싼 자리를 이토록 황당한 방법으로 차지한 두 날강도는 서로를 보며 어떻게 하느냐고만 말하고 있었다. 이건 숫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말을 하는 앵무새나 다를 바 없다.
겨우 눈만 보이게 얼굴을 검은 복면으로 가렸으면서, 그 눈은 눈에 띄게 붉은색 하트 모양 파티용 선글라스를 쓴 남성. 그리고 양쪽 볼에 이상한 액세서리가 달린 채, 온몸으로 두른 거적데기 사이로 쨍할 정도로 파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아이. 한 쪽은 너무나도 수상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어쩐지 가련하다지만 프리터가 할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어—서 썩! 나가십시오!”
“어…. 여기서 말입니까? 이 레일 위에서요?”
그제서야 발 밑으로 엔진의 진동이 느껴지던 프리터가 골머리를 감쌌다. 지금 막 트리톤 역을 떠났으니, 그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린다 한들 카론 역까지는 지구의 기준으로 거의 3개월이 걸린다. 그러니 조속히 하차처리를 한다고 한들 잘해봐야 3개월 조금 안 되는 뒤에나 가능하다는 소리. 위조티켓 두 장을 압류한 프리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아주 그냥 게이트는 뭘 한겁니까 대체….”
“실례합니다.”
세 사람이 있는 객실 문이 다시 열리고 갈빛이 도는 금발의 남성이 새롭게 들어왔다. 파란빛이 도는 눈이 익숙한 직원을 먼저, 그리고 낯선 두 사람을 순차적으로 향했다. 승무원이 당황해서 어버버하며 남성에게 아는 체를 먼저하였다.
“아, 아이고 차장님 오셨습니까.”
“네트워크로 확인했습니다. 무임승차자라고요.”
차장, 카르나르 융터르가 승무원의 손에 들린 조잡한 티켓 두 장을 보았다. 다른 것들은 전부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게이트에 있는 스캐너가 읽는 코드 부분은 무척이나 정교하였다. 차장의 몸에서 스위치라도 찰칵하고 눌린 것 같은 환청이 프리터의 귓가에 들리며, 그 낮은 목소리가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하나, 지구까지. 성함, 소피아. 프레스티지 프리미엄 객실 예약. 하나, 지구까지. 성함, 하쿠 0089, 프레스티지 프리미엄 객실 예약. 각각 본인이 맞습니까?“
지구와 비슷한 중력이 작용되도록 설정된 객실에서도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붉은 넥타이를 집어넣느라 정신없던, 소피아라 불린 남성이 여자아이의 몫까지 대신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라고 이어서 묻는 그를, 차장은 객실을 슥 둘러보다 두 무임승차자의 얼마 안 되는 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뻔뻔하게 나오던 그가 이 행동에 크게 당황하며 안된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을 뒤늦게 뻗었지만 너무 늦었다.
카르나르 융터르가 짐가방에 손을 거침없이 쑥 집어 넣었다가 도로 빼내자 그 끝에 객실 조명을 받아 눈을 찌를 정도로 빛을 발하는 뭔가가 걸려나왔다. 진짜로 그 반사광에 눈이 부셔 잠시 이상한 비명을 지른 프리터가 그 물건의 정체를 보고 다시 이상한 소리를 냈다. 차장의 길쭉한 손가락 끝에는 누가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할 것이 분명한 보석이 들려있었다.
“아, 안돼! 내가 저걸 훔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훔쳐요? 장물입니까?”
“으악?!”
자신의 말실수에 놀란 소피아가 황급히 괴성을 지르면서 들은 것을 잊으라고 외쳐댔지만 이미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벌써 둘이다. 카르나르 융터르의 무뚝뚝한 시선이 손 위에서 여전히 영롱한 빛을 내뿜는 보석에서 떠난 다음, 곧 부드러운 재질의 검은색 롱코트 안으로 그것이 들어갔다. 대신 늘 들고 다니는 케이스를 열어 곧바로 발권처리를 순식간에 진행해 제대로 된 티켓 2장을 건네주는 그 태도는 그래서 뭐 어쨌다고라는 말과 잘 어울렸고, 그 때문에 프리터는 당황해서 이제 문을 닫고 객실을 나서는 차장의 이 행동에 뒤따라가며 만류하는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거… 장물! 장물입니다!"
"문제 없습니다."
"으—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큼 걷는 걸음으로 어느 새 도로 차장실 앞까지 돌아와서 이보다 더 덤덤할 수 없는 차장은 태연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행성 간 표준 통화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지만 항상 지켜질 수는 없는 법이라 이런 물건으로도 종종 대금을 치루는 것이 허락 되어있다는 것. 선천적인 체질(?) 덕분인지 이 뻔뻔한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가 듣기로는 더 뻔뻔하기 그지 없는 내용을 태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더불어, 이런 보석과 귀금속들이 물론 장물일 가능성은 본래부터 상당히 높지만 일일이 하나 하나 따져가며 대금으로 받고 안 받고를 따지면 회사는 망합니다."
"그—런데서 현실적인 부분이…."
"크게 보면 묵인해주는 것이지요."
그 파란빛이 나는 눈이 깜빡이던 안드로이드 차장이 뒤이어 방금 전까지 일을 회사에 보고하고는 여전히 이래도 되는건가 웅얼거리던 프리터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말했다.
"이러한 관습은 프리터 님의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물건을 계속 들고 있음으로서 야기될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카론 역에서 사람이 파견될 예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 카론 역이… 거의 3개월은 걸리지 않습니깟?"
그 질문에는 차장도 답을 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건사고가 연달아 일어날 줄은, 프리터는 물론 차장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쇄 도난 사건이 불과 1주일 사이에 일어나기를 세는 것을 차라리 포기할 정도다. 그렇다고 귀중품만 훔치는 것도 아니었다. 쓰던 칫솔이나 치약, 세탁하지 않으면 입지 못할 냄새나는 속옷들부터, 간단한 주전부리나 그리 비싸지 않은 옷도 훔치기 일쑤였다. 1등석부터 3등석까지, 그리고 때때로는 직원들의 공간들이나 열차 내 상점들도. 처음에는 범인을 찾느라 객실 이곳 저곳을 이잡듯 뒤지고 다니던 프리터도 이제는 또 도둑이 발생했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곧장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 벌써 2개월은 충분하고 질리도록 드나든 1등석의 광경은, 더 이상 프리터에게 어떤 감흥을 주지도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짜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소피아 님! 벌써 이게 몇 번째입니까—앗!!"
"어, 아니! 그러니까 이게! 그—"
이제는 객실에 사람이 있어도 벌컥벌컥 그 문을 열고 그 안에 있을 소피아를 부르짖으면 열에서 열의 확률로 그의 손이나 그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열차 내 식당칸에서 쓰는 카놀라유가 없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설마설마 하던 프리터가 다시 소피아와 하쿠라는 여자아이가 쓰는 객실에 거의 쳐들어가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잘 먹었습니다!"
인상이 깊어도 좀 과하게 깊은 소피아때문에 기껏해야 객실에 걸맞지 않게 거적데기를 두른 여자아이 정도로 알고 있던 프리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일단 거적데기 대신 제법 멀쩡한 옷을 입고 있다. 게다가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요리에 사용할 그 기름이 하쿠의 입으로 쭉쭉 들어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란. 그러고보니 저 양 볼에 달린 요상한 장식부터 진작에 의문을 제기했어야 했다고, 승무원은 한탄을 하였다. 하지만 동력원이 카놀라유라니? 이 황당한 모습에, 막상 당사자인 소피아도 머쓱한 얼굴(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말투는 그랬다)으로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어— 안 믿기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아, 아니 그걸 당신이! 말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게다가 지금 이게 도대체 몇 통입니깟!?"
바닥에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은 1L짜리 기름통이 벌써 세 통이고, 지금 네 통째가 막 입에 들어가는 중이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프리터는 곧 정신을 차리고, 이번에는 하쿠를 향해 질문을 하기로 하였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완전히 비우지는 않았다. 어림잡아 반절이 남은 통을 내려놓은 하쿠가 그 시선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지금 배터리? 가 얼마나 충전된 겁니까?”
“어어, 완전히 충전되었습니다! 앞으로 4개월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 말에 프리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카놀라유 외에도 주방에서 쓸 수 있는 기름은 충분히 남아있었고, 물론 그 전에는 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기름은 적어도 더 훔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 하나는 긍정적이지만 그게 전부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소피아의 이러한 절도행각이지 않는가? 안드로이드와 같이 여행을 하든 말든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충전 같은 부분을 이런 식으로 충당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 프리터가 결국 질린 나머지 투덜거렸다.
"앞으로는! 기름을 챙겨서 오십시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애당초 하쿠 님은 제 소유가 아니거든요!"
소피아도 할 말이 많았는지, 혹은 프리터의 지속된 타박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지 곧장 서럽다는 듯, 쏘아붙이는 어투로 답했다. 잠시 얼이 빠져있던 프리터가 다시 설명해달라 이야기 하자, 한숨을 푹 쉬는 소피아 대신 하쿠가 끼어들었다. 여전히 기계음이 섞여있는 그 목소리는 승무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느낌을 잔뜩 주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라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의 어깨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잔뜩 실려있었다.
"소피아 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엥? 설마, 일행… 아니셨습니까?" 그 말과 동시에 바싹 치켜올라갔던 프리터의 어깨가 얼빠진 소리와 함께 축 쳐졌다.
"어— 저는! 아마도 납치를 당했던 것 같습니다! 빨리 아버지를 보고 싶습니다!"
이 애매모호한 말에 프리터가 다시 얼빠진 외마디 소리를 냈다. 납치면 납치이지, 그걸 당한 것 같다라는 이 한없이 애매모호한 표현이라니. 설명같지 않은 설명에 소피아가 손을 들어 보충 설명을 해줬다. 자신이 어떤 우주해적 집단에 뭔가를 훔치려고 살펴보던 와중, 하쿠가 정신을 잃기 직전의 상태로 거의 쓰러져 있다시피했다라는 그 말은 승무원에게 그나마 납득이 가는 설명이 되었다. 아주 약간 뿐이지만. 그래서 그 내용을 곰곰히 되새김질하던 프리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발 자신의 불길한 예상이 맞아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설마, 무임승차하신 이유가…."
"당연히 도망치기 위해서, 아닙니까! 하쿠 님이 빠르게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게 코드를 그려줬으니 망정이지—"
가볍게 말하는 소피아의 말에 프리터의 머리가 이리저리 팽팽 돌아가다가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아주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설마 열차에 납치범들이 하쿠를 되찾(?)으려고 해적들이 오겠느냐고, 승객들은 방심하겠지만 이전에 비슷한 일을 한 번 이상은 충분히 겪은 프리터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래서 프리터가 드디어 이성이 돌아왔을 적에는 이미 차장에게 혹시 당장 광파 통신이 가능하냐고 따지고 있었다.
"하쿠 님이 안드로이드? 납치? 상세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운전실에서 나와 식당칸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던 차장이 드물게 눈가를 찌푸리며 말하자, 프리터는 그를 찾느라 반대로 여기저기 쉬지 않고 뛰어다녀 턱 밑까지 가쁜 숨을 채 고르지도 못하고 다시 설명하기에 이르었다. 애당초 그 두 사람이 이 터무니없는 가격의 객실을 고른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고, 하쿠를 납치했던 우주해적들이 마침 트리톤에서 물자를 보급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던 것도 우연이었다. 소피아는 그들에게서 값비싸보이는 보석을 발견해 훔쳤고, 그 와중에 에너지가 거의 없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하쿠를 만나 우연히 든 동정심으로 그녀를 구출했다. 그리고 보석과 하쿠의 행방을 찾던 우주 해적들이 이 두 사람의 뒤를 쫓고 있더라는 이야기까지.
"그, 그러니까! 경찰에 아—주 가급적이면 빨리! 신고를 해야겠습니다…. 근데 전 이런 장거리용 단말기는 없는지라…."
"일리 있는 말이군요. 지난번 프리터 님께서도 비슷한 이유로 다른 놈들에게 당할 뻔 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겠습니다."
커피잔을 내려놓은 차장은 그 눈동자를 다시 불규칙하게 파란빛을 깜빡 거리며 침착하게 말했다. 아마도 회사 소속으로 되어있는 만큼 방금의 대화 내용도 먼저 회사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프리터는 무심결에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 제법 정없는 생각을 하고 만 프리터는 곧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 했다. 융터르는 그 내용과 달리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신장애가 발생했습니다. 태양풍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우주경찰에 신고를 하려면 서둘러 카론 역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승객! 분들께는… 제가 아주 그냥! 말씀을 잘 드리겠습니다—."
차장은 끄덕이며 다시 열차 운전을 위해 도로 차장실로 들어가버렸다.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이라면 이제 역까지 불과 2주가 안되어서 도착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열차 내에 마련된 시계를 기준으로, 잠에 빠졌던 승객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객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승객들의 컴플레인(물론, 요즘에는 주로 소피아의 절도행각에 관련된 것이었다)을 확인한 프리터는, 객실 하나에 3층 규모의 캡슐형 침대가 마련되어있는 3등석까지의 체크를 겨우 마치고 나서 진땀을 닦아내고 잠시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런 세—상에!"
정말 다른 건 몰라도 눈이 밝고, 입이 제법 무거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프리터였다. 다른 위성들이나 태양계 너머로 있는,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별들 너머로 아주 작게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집중해서 바라보자 해골모양의 홀로그램이 저 멀리서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괜한 실언을 해서 승객들에게 혼란을 끼치느니, 얼른 차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승무원의 달음박질은 전에 없이 아주 재빨랐다.
복도를 울리는 뜀박질 소리가 곧 흩어지고, 객실마다 차장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역까지의 예상 도착시간과 차이가 발생하여 속도를 올리므로, 가급적이면 객실 내부에 있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승객들은 그 속사정도 모르고 속도를 올린다는 말에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지상에 내리면 최소 1주일은 지긋지긋한 열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승무원 전용 객실에서 단단히 긴장하고 있는 프리터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자신을 대신해서 연락할 수단으로 준, 태양계 전역으로 연결된다는 그 무선 단말기에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못했다.
"크—! 아직도… 아직도 통신 두절입니깟—!"
발 밑으로 조금 전 보다 덜컹거리는 열차의 움직임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속도를 올린 탓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긴장한 나머지 감각이 더 예민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애타는 속은 알지도 못하고 여전히 통신 복구는 요원해 보이고, 객실 한 쪽에 마련되어 안에서도 볼 수 있는 외부 CCTV 너머로는 여전히 해적 홀로그램이 번쩍이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열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덜덜 떠는 손으로 화면을 이리저리 전환해보니 소행성 군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도 차장이 그것을 피하느라 다소 거칠게 조종하는 것이 분명했다. 단말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프리터는 갑작스럽게 든 어떤 생각에 곧장, 이제는 익숙해진 1등석의 객실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아, 아—니 뭡니까!? 저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훔쳤습니다!"
"제가! 감시 똑바로 했습니다!"
억울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는 소피아, 그리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하쿠에게 이미 긴장할대로 긴장해 창백해진 프리터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 두 사람에게는 지금 갑작스럽게 속력을 올리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저 멀리서 우주 해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과 경찰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까지. 당연히 그들에게서 물건을 훔친 소피아가 그 파티용 선글라스 너머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크게 당황하는 티를 감추지 못했다.
"하쿠 님께서는! 그… 가족! 가족 분들과 연락이 안 되십니까?"
"어— 안 됩니다!"
"이럴수가…."
망연자실한 프리터의 손에서 이상한 소리가 갑자기 울려대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움켜쥔 손을 들어올리자 차장이 준 단말기에서 기지국과 연결이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잡다한 메시지들이 일순간 몰려오느라 알람이 그 멜로디를 전부 흘리기도 전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탓이다. 긴장감에 땀이 찬 손이 연거푸 허우적거리며 단말기를 붙든 프리터는 이제 자신처럼 긴장한 티를 역력하게 드러낸 두 사람에게 문 단단히 잠그고, 별도의 방송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열지 말라며 당부 한 다음 자신이 아는 경찰 직통 번호를 급히 누르며 객실을 빠져나왔다.
-해적이 쫓아온다고요?
"아—주 그냥! 지금도 쫓아오고 있습니다…."
급하게 CCTV 화면으로 뒤쫓아오는 우주선과 열차 후미의 거리감, 그리고 속도를 올린 덕분에 급격하게 가까워진 역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프리터는 어딘가 앳된 느낌이 가시지 않는 무뚝뚝한 목소리의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물론 소피아의 절도 사실은 제외하고. 단말기 너머로 뭔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카론 역에도 경찰을 배치하는 것과 동시에 출발하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
"신고했습니까?"
차장은 살짝 문을 열고 들어와 저 멀리에서 역이, 그리고 경찰들이 출동하느라 붉고 푸른 빛이 보이는 모습에 안도한 프리터에게 어깨 너머로 질문했다. 승무원은 겨우 혈색이 돌아온 얼굴로 더듬거리며 그렇다고 말을 하였고, 차장의 목 뒤로 연결된 신경망 네트워크를 통해 객실 곳곳으로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마다 울리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카론 역에 도착할 예정이며 정비와 보급을 위해 1주일을 정차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곧 네트워크에서 연결을 해제한 차장은 열차의 속도를 천천히 줄여나가며 중력장 궤도를 점차 역에 가까이 접근시키기 시작했다. 플랫폼 근처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에 승객들이 저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차장실까지 시끄러웠지만, 자신들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아는 사람들은 그저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아니! 아니!! 지금 저 경찰들! 저 잡으러 오는 겁니까!?"
"소피아 님! 진정하십시오!"
언제 또 훔쳤는지 저번과 다른 옷차림의 하쿠가 당황한 얼굴로 프리터에게 따지려드는 소피아를 말렸다. 그런 소피아에게 붙들려 이리저리 휘둘리던 프리터는 지금 당신 도와주려고 부른 경찰이라는 말을 겨우 해내고서야 어지러운 몸을 휘청거리며 차장과 함께 플랫폼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 그에게 은은하게 분홍빛이 띄는 긴 머리의 우주경찰이 자신의 배지를 보여주며 자신을 시리안이라 소개하고는 신고자가 누구냐는 질문과 함께 다가왔다.
"에구, 접니다!" 아직도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은 프리터가 겨우 손을 들고 말했다.
"혹시 뒤에 쫓아온다는 해적이 저 인간, 맞습니까?"
시리안이 마뜩찮아하는 얼굴로 뒤를 보지도 않고 어깨너머로 손을 들어 가리키며 묻자, 그 자리에는 그야말로 이야기 속 해적의 전형적인 인물상이 경찰들에게 붙들려 한사코 자기는 아니라고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정비소로 향한 기차의 뒤로 제법 거대한, 범선을 닮은 우주선에는 프리터의 눈에 익은 해골 모양 홀로그램이 있었다.
"아, 아이고 맞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 인간은 일단 해적이라고 극구 주장하고 있긴 한데… 뭐."
"아니, 나! 아니라니까! …으엉? 아니, 저기요들! 그만 퍼뜩 나와봐 좀!"
떨떠름해하는 시리안의 뒤로, 해적 선장이 걸걸한 목소리를 내지르자 경찰들에게 연행되다시피하며 끌려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일행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두 사람이 있었다. 흰 가운과 흰 바지 차림은 누가보더라도 해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아부지!! 박사님!!"
"어휴, 우린 그 뭐시냐 택시 비슷한 역할만 했을 뿐이라니까!"
"그—럼! 왜 해적기를 올리셨습니까!"
하쿠가 두 사람에게 호다닥 달려가는 사이, 선장이 겨우 억울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듯 한탄하였다. 그러나 놀란 마음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프리터가 당황해하자, 상대방은 멋쩍은 목소리로 아니 저거 올리고 다가가면 다들 쫄아서 세워주더라고라며 주절거렸을 뿐이다. 그런 선장에게 시리안은 한심하다는 얼굴을 한 채로 주요 관계자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잠시 청취를 해야하니 시간을 내달라며 말을 하였다.
"아니 하쿠야,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꼬질꼬질해졌어?"
"으이…. 돈 벌이한다고 무턱대구 나가니 이렇지. 이잉…."
하쿠가 '아버지'라 부른 창조자, 새우튀김은 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닦는 등 부산을 떨고 조금 떨어진 도파민 박사는 언짢은 듯 안타까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뒤를 이어서 나온 해적선장, 설리반이 그런 두 사람에게 학이라도 떼는 듯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만나서 안 반가웠고 다시는 보지말자며 딸내미 간수 잘하라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선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프리터는 그 모습에 맥빠진 얼굴을 한 채로 모든 사건의 정황을 다시 떠올렸다.
발단은 도파민 박사 연구소 소속 안드로이드이자 새우튀김의 딸인 하쿠가, 재정난을 확인하고 무턱 돈을 벌어보겠다고 가출 비슷한 것을 해버린 데에서 시작했다. 그녀의 가출 소식에 뒤집어진 두 사람은 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토성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그녀와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심지어 충전할 기름도 아깝다며 아끼는 통에 하쿠의 남은 배터리가 거의 없었던 것에서 일이 커진 것이다.
"어…. 그럼 제가 하쿠 님을 들고 도망치지 않았으면 전부 해결 될 문제였겠군요?"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이 하쿠를 찾는 사람에게 보상을 하겠다며 내건 광고를 본 설리반이 먼저 그녀를 주웠으나, 충전 방법을 몰라 거의 방치해두다시피 했고, 소피아는 그런 그녀가 납치 당한 줄 착각해서 부랴부랴 열차에 탔다는 전개로 진행되었을 때는 그 차장마저도 황당해하는 얼굴이 되어있었다. 설리반은 당황해하다가 급하게 그가 있던 곳까지 달려온 두 사람을 자신의 배에 태워 이 열차까지 쫓아온 것이라는 실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소피아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차장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하쿠를 집에 돌려보내고 막대한 보상금을 타낼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 아예 안드로메다 쪽으로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는 말. 문제는 그가 당장 지닌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는 점이다.
"바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표를 제게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얼떨결에 티켓을 돌려준 소피아는 눈을 끔뻑거렸지만, 문자 그대로 곧장 돌아온 차장이 제법 큰 가방을 그에게 건냈다. 그 안에 가득찬 돈다발을. 액수가 상당해서 아무리 뻔뻔한 소피아라고 하더라도 그 복면 안에 있을 입이 떡 벌어진 것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당황한 그가 말을 더듬거리느라 아예 뻐끔거리기까지 하자, 차장은 그저 티켓을 환불처리 했다는 말로 일축시켰다.
"그, 그나저나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이라니…. 역시 1등석은 정—말이지…."
"참고로 저 돈은 열차에 탑승하여 소피아 님께서 행하신 모든 절도에 대한 배상을 치르고 남은 금액입니다."
절대 손해를 허락하지 않는 차장의 그 작은 목소리에 현장에서 그가 저지른 절도의 결과가 어마무시했던 것을 떠올린 프리터는 그래도 저렇게 돈이 남을 수가 있냐며 혀를 내둘렀고, 그걸 듣지 못한 소피아는 이미 저만치 달려나가고 있었다. 곧 티켓을 새롭게 결제하려던 도둑은 몸을 급히 돌려 하쿠와 다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살짝 다가가서는 주머니 간수 잘하십쇼! 라는 외침만 남기고 다시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이잉…. 헌데 우리 여기까지 온 건 좋은디 으뜨케 돌아간다냐, 제자야."
"어, 어? 박사님 혹시…. 없어요?"
갑작스럽게 난처해진 두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 하쿠가, 아직 회사에서 마련한 비즈니스 호텔에 들어가지 못한 차장과 승무원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품에서 1등석 티켓을 내밀었다. 차장이 살며시 받아들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뭡니까?"
"이거! 환불하고 2등석으로 세 사람이 잘 수 있는 방으로 바꿔주십시오! 목적지는 지구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딱 잘라서 말하는 차장의 말에, 감정이 풍부한 안드로이드가 당황해서 "어떡하지?" 라는 말만을 되풀이하였다. 하쿠의 뒤를 쫓아온 두 과학자는 열차의 운임료가 거리에 따라 그 값이 터무니없이 상승한다는 것을 알고 3등석으로 바꾸자며 그녀의 울상지은 얼굴을 달래주고,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승무원은 이 냉정한 태도에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작은 목소리로 끼어들었지만, 차장의 새파란 눈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외투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장이 다시 말했다.
"주머니에 대금으로 치룰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앗!?"
그 말을 들은 하쿠는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자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던 것을, 그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바싹 붙어있던 새우튀김이 급히 막았다. 아직은 보는 눈이 많은 터라 약간의 소동만으로도 무슨 안 좋은 꼴을 당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녀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보석을 손으로 감싸듯 움켜쥔 차장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다시 어딘가를 갔다 오고는 익숙한 티켓을 두 장 더 발권하며 덧붙였다.
"잔금은 열차에 탑승하시면 그 때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척 만척하던 두 사람은 받아든 티켓을 확인하고는 하쿠가 아직 환불하지 못한 똑같은 등급인 것을 알고 저마다 자신의 입을 막았다. 어쩐지 붉은색 넥타이가 너울거리는 환상을 잠깐 본 프리터가 졸지에 묵직한 짐가방을 들고서는 숙소가 따로 없을 테니 따라오라며 세 사람의 등을 가볍게 떠밀고서야 모든 일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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