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들을 돌이켜보는데 제가 좀 뇌절을 많이하다보니 중복되는 그런것들이 있더구먼유.
*그래서 쓰까보기로 하였습니다.
*자세한 것은 퇴마융 시리즈와 Tell Me What You Want라는 글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천악 au를 참고 바랍니다.
*더불어 드디어 루비를 본격(?)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은 언제나 그렇듯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이게?" 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성당의, 존재를 막론한 모든 이들의 기준으로는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의 별채 곳곳을 청소하는 뢴트게늄과, 그를 도와주는 프리터가 있었고 여전히 안쪽으로 보면 주임신부에게 다시 효자손에 머리를 맞고야 마는 소피아도 있었다. 본당에서는 어린이 미사를 집전 중인 캘리칼리 데이비슨 아가토 보좌신부가 오늘도 아이들에게 재밌는 농담을 해주는지 강론 시간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오는 사이, 카르나르 융터르와 단답벌레가 그 부탁을 받고 피자를 지하의 식당까지 배달해주는 평범한 하루다.
"그나저나 단답벌레 님께서는 피자를 정말로 좋아하시는군요. 다만…."
말을 하다가 마는 융터르는 아이들에게 줄 것들을 제하고도 세 판이나 되는, 아직도 따끈한 냄새를 풍기는 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분명 치즈피자만을 찾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은근슬쩍 소위 고급라인이라 불리는 그런 프리미엄 피자도 가차없이 주문하고 그걸 거의 전부 먹어치우는 천사의 위장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모양새일까. 어쨌든 1판은 그의 몫이고, 나머지 2판은 다른 이들과 나눠먹을 것이니 큰 불만은 없다.
간만에 돌아온 성당 별채는 과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분명 뢴트게늄이 계약자인 융터르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며 힘들어서 죽겠다느니 뭐라느니 말을 한 것은 기억나는데, 설마 신부님이 이렇게나 가혹(?)하게 청소를 시킬 이유가 있던가 의구심이 들 무렵 엉뚱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서 썩! 일어나십시오! 여기에 지금 먼지가 가득가득! 하지 않습니깟!"
"…좀 쉬자. 응? 새벽부터 계속 쉬지않고 계속 청소했잖아아—!!"
분홍색 머리의 빛이 확실히 바래 생기없이 희끄무레하기까지 하는 뢴트게늄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바락바락 외쳐댔다.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을 살짝 넘겼고, 그 말은 곧 어린이 미사가 끝나 아이들이 우르르 나올 차례라는 소리다. 가뜩이나 잡혀사는 분홍머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어 체면을 다 구긴 대악마는 명백히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프리터에게 잔소리를 들어 이래저래 골머리가 잔뜩 난 나머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다시 은 촛대를 진품으로 훔쳐온 소피아에게 퍼뜩 돌려놓으라며 그 머리를 다시 효자손으로 때린 이덕수 요한 주임신부가 그 소란에 칼칼한 목소리를 내며 안쪽 방에서 나왔다. 신성력이 가득한 그 흉기(오롯이 악마들의 입장에서)에 정수리가 볼록하게 솟아 오른 소피아가 두 손님을 보고 언제 얻어맞았냐는 듯 해맑게 인사하였다.
"어! 두 분 언제 오셨습니까? 와— 그나저나 프리터님 보십시오! 어디서 청소를 배웠다고 구해주신 은혜를 갚는다며 청소하는데! 전 장판이 이렇게 번쩍거릴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아— 훗훗훗!"
"나쁜 놈… 이 나쁜 놈…."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불만족스러워하는 뢴트게늄만 죽어가는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피자."
적어도 성당에서 봐오는 악마들만큼은 적대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던 단답벌레가 융터르의 손에 들고 있던 피자박스를 식탁에 올려두었다. 자신의 권능을 슬쩍 이용해, 시간이 조금 지났어도 여전히 따뜻한 훈김이 박스를 열자 훅 끼쳐나오는 그것은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킬 정도여서 구석에서 하치키타치 라며 울먹거리던 뢴트게늄조차 식탁에 앉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아니, 나 빼고 먹던 건 아니겠지? 응?"
"으응…. 자네는 아이들하고 먹지 않았는가?"
"잘 먹고 잘 자라는 이 시대의 아저씨는 늘 배가 고픈 법이라 말입니다."
별채 문이 왈칵 열리고 닫히면서 그 누구보다도 월등한 덩치의 신부복이 그만큼이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까지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걸고 (져주는) 내기를 하고 온 캘리칼리가 손을 삭삭 비비며 이 조촐한 피자파티에 참여하였다.
그들 간에 딱히 안부를 묻고 어떻게 지냈는가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어제도 만났고, 오늘은 만나는 중이며 내일도 만날 그런 사이가 되었기에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캐묻지도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피자를 사온 카르나르 융터르가 불과 사흘 전에 구마활동을 벌이고 쏠쏠하게 챙겼다던가 하는 그런 것 정도는.
더 올 사람도 없는 별채가 그래서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을 때는 긴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게다가 의외로 철두철미한 성격의 캘리칼리는 별채를 들어올 적이면 자신이 거의 마지막임을 알아 그 문을 반드시 잠그기에 더욱 그랬다. 방금 전까지도 서로 농담이나 주고 받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냉랭해지고, 그 현관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아니 이거, 해루석 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신지… 지금은 한창 바 운영 하실 시간 아닙니까?"
"아, 안녕하세요."
검은 긴 생머리와 전형적으로 바텐더라는 인상이 강한 대악마이자 술집 오너 해루석이 멋쩍다는 듯 한 손을 들어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융터르의 지적처럼 바 운영에 정신이 없어야 할 그가 시간을 내서 이 곳에 왔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리고 그 징조가 맞아 떨어졌다.
"혹시, 천사님을 한 분 찾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루석이 입에 올린 천사는 비밀소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주황빛의 긴 생머리와 푸른 눈이 특징이라고 말하면서도 단호하게 덧붙였다.
"저는 그 분을 꼭 찾아야 합니다."
"악마놈으 샤끼가 천사는 왜 찾는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해결해야 할 질문을, 주임신부가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그 분이… 제 소중한 것을 가져가셨기 때문입니다."
비장한 듯 침울함을 감춘 목소리는 어쩐지 떨려오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살짝 숙인 고개는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에게 한 가지의 생각만을 떠올리게 하였다. 섣부르게 "사"까지만 입 밖으로 내밀었던 뢴트게늄은, 차라리 그 얼굴을 거의 가리기에 충분한 두텁고 큼직한 보좌신부의 손에 입을 막혀 뒤에 이어져야 할 단어를 이상한 소리로 갈음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미심쩍다는 눈으로 바텐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정도 되는 친구면 그냥 어디든 꺼내올 수 있지 않나?"
"그게 어렵습니다. 비밀소녀 님께서 납치된 곳은 제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는 해루석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딱딱하게 굳어지면서도, 다른 이들의 궁금증을 곧바로 해결해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이단 교회에 납치 되었습니다."
그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말이 주는 무거움을 일시에 날려버리는 것은, '쿡' 하고 웃음을 애써 참으려다가 결국 못 참은, 뢴트게늄의 목소리였다. 살면서 이렇게 웃긴 말은 또 처음 듣는다는 듯, 이 분홍머리 대악마는 목이며 얼굴이며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끅끅거리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식탁을 주먹으로 통통 내리치면서 꺼이꺼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에 초를 쳐도 왕창 쳐버리는 그 태도에 언짢아진 이덕수 요한이 결국 제법 세차게 효자손을 그 정수리 위로 내리쳤지만 뢴트게늄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아예 너무 과하게 웃어버린 탓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아내며 그가 말했다.
"아니, 생각해봐요! 어지간한 교회는 성큼성큼 잘 들어오는 해루석인데 지금 자기는 바에서 일해야 하니까 우리더러 도우라는거 아니에요!"
"아." 단답벌레가 그 말 뜻을 이해하고 눈을 끔뻑거리며 외마디 소리를 냈다.
지금도 해루석은 이덕수 요한이 20년 넘게 자리하며 기도해 온 이 성당 안을 거리낌없이 들어오는 악마인데, 이런 성당은 잘만 들어오면서 고작 이단 교회에 쩔쩔맨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느냐는 의미. 긴장감을 품고 있던 이들이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분위기가 삽시간에 다시 뒤집혀버렸다. 그의 하얀색 와이셔츠 소맷자락을 걷어부치고 보이는 그 살결은 손바닥부터 팔꿈치까지 누가 보더라도 끔찍하리만치 벌겋게 문드러져 있었다.
그 상처를 목도한 뢴트게늄마저 웃음소리가 뚝 그쳐버렸다.
"뢴트게늄 님의 말대로, 제가 안 해본 줄 아십니까? 그 교회는 뭔가 달랐습니다. 천사가 직접 가호를 내린 교회였다고요."
가호라고 하면 이제 카르나르 융터르도 얼핏 알고 있었다. 자신이 구마의식에 사용하는 묵주에 단답벌레가 은근슬쩍 힘을 불어넣어 의식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그 조건으로 자신이 피자를 이렇게 공물로서 바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물건에 힘을 담아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사람에게 가호를 직접 내리는 일은 옛 성인들의 일 이후로 이제 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해루석은 지금 선명한 흔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상처를 옷자락으로 가리는 바텐더는 이제 더 설명이 필요하냐는 얼굴을 지어보였고, 천사니 악마니 하는 그런 것보다 자신이 더욱 중요한 소피아마저도 그 상처가 잊혀지지 않는지 눈을 끔뻑거리다가 말했다.
"그거… 무지 아프겠군요?"
"네, 아픕니다. 솔직히 다시 그곳에 들어가라고 해도… 못 하겠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최초로 지상에 올라오기를 허락받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 있는 전부와도 상대가 능히 가능할 텐데도 허리를 푹 숙여 부탁하는 모습에 별채 안은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이덕수 요한이 제 몫의 피자를 꿀꺽 삼키면서 정적을 깨고 말하기 시작했다.
"와서 들어. 아플 수록 잘 먹구 잘 자구 혀야지 얼른 낫지. 자네가 그만치루다가 다쳤응게, 요 있는 놈들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겠구먼." 그 시선이 뢴트게늄, 소피아, 프리터에게 각각 닿았다가 다시 캘리칼리, 융터르, 단답벌레로 옮겨갔다. "느이들이 좀 혀봐."
"뭐 하기야. 천사님이 잡혀계시면 그만큼 골치가 아파지긴 하지!"
"그보다도 저는 그 가호를 직접 내려줬다는 천사가 누구인지 궁금하군요."
"응."
그 말에 해루석의 얼굴이 드물게 순수하도록 감사함에 가득 차 다시 허리 숙여 인사를 하였다. 워낙 격하게 한 탓에 식탁 모서리에 이마를 쿵 찍어, 한 줄기 붉은 선이 그 이마를 가로질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연거푸 감사하다고 할 뿐이었다.
"되었어. 난중에 성찬식 헐 때 쓸만한 거루다가 포도주 좀 좋은거나 추천혀봐. 자네가 빠—아텐더라고 혔잖어. 술은 잘 알 것구먼."
"추천 뿐이겠습니까, 저렴하게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루석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카르나르 융터르와 단답벌레는 성당 앞마당에서 보좌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단차림은 여러가지로 눈에 띄니 갈아입고 가라는 주임신부의 조언 때문이다. 간만에 사복으로 갈아입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드디어 살 것 같다는 듯 찌뿌둥한 어깨를 몇 차례고 앞 뒤로 돌려가며 풀어댔다. 아무래도 그의 덩치에 가까스로 맞춘 수단이라고 해도 은근 움직이기 불편하게 끼는 부분이 있던 탓이라며 그는 설명했다. 더불어 그의 체구가 바로 옆에 있기에, 유독 작은 키가 더 두드러지는 단답벌레는 그 거구에 어쩐지 심기가 불편한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을 계속 봐온 그가 갑작스럽게 불편해 하는 이유가 달리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검은 코트와 정장 차림을 한 덩치 큰 신부는 해루석의 단정하고 가느다란 글씨로 적힌 주소를 유심히 보았다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천사교? 뭔 이름이 이렇게도 센스가 없어?"
"지금 찾아보니 의외로 교세 확장이 무서운 곳이군요. 흠. 과연 이단이라고 지칭할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카르나르 융터르가 X튜브의 교단 홍보영상을 실행해 한 신부와 한 천사가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흰 옷을 입은 교주를 찬양하는 검은 옷의 신도들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치는 것은 차라리 원숭이 떼 같다며,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툴툴거렸고 곧 이들이 왜 무서울 정도로 불어나고 있다는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영상 속의 교주가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갑자기였다. 본래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은 항상 뭔가 뜸을 많이 들인 다음 하기 마련인데, 신도들이 열성적으로 부르짖는 것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 교주가 곧바로 둥실 몸을 띄우는 장면을 보란듯이 홍보영상으로 올려놨다. 마치 우리는 이런 걸 굳이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듯. 영상에 붙여놓은 자막도 심히 도발적이었다.
"흠. 목도하고 깨우쳐라, 라. 숨기지도, 속이지도 않았다는 듯 적어 놓은 이 문구는… 어지간한 자신감으로 치부할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가능성이 정확히 둘로 나뉘어지지. 정말로 공들여서 준비를 했다, 아니면… 저건 진짜다. 하지만 우리 바텐더 양반께서 이미 먼저 몸소 보여주신 바가 있으니 정교한 뻥쟁이라는 썰은 이미 물 건너 갔구만."
"…천사."
단답벌레가 갑작스럽게 교단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다른 두 사람이 새삼스러운 단어를 왜 입에 올리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과연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그가 사이비 성직자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스크롤바를 아주 천천히 뒤로 당기기 시작했다. 단상 위에 올라서있는 교주를 조금은 사이드에서 찍은 모습에서 영상을 다시 틀기 무섭게 어느 순간 곧바로 정지한 천사가 한 구석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천사."
"…하, 이래서 천사교 라는건가?"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적시—라고 하는 것이 좋겠군요."
아주 희미하지만 두 사람도 그 찰나를 포착할 수 있는 현대문명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을 품었다. 교주의 등 뒤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 6장의 날개와 전혀 인간형으로 보이지는 않는 뭔가 비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보좌신부의 등허리 건강이 염려될 사이즈의 택시를 타고, 세 사람은 문제의 '천사교' 라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저마다 얼굴이 펴질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택시기사는 뒷좌석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앞에 탄 캘리칼리의 그 얼굴이 험상궂게 구겨지는 것을 보며, 긴장감을 숨기지도 못하고 결국 질문했다.
"혹시 불편…하시겠네." 기사의 눈은 이제 구겨서 타듯 웅크린 그 몸을 보고 납득을 했다. "헌데 천사교는 왜 가시는…지는 제가 알 이유가 없죠 네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이 이단 종교의 신도들임이 분명한 검은색 옷 일색의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대인원이 인도 곳곳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종교 홍보를 위한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운 나쁘게도 그들이 탄 택시가 그 인도와 접한 탓에, 답답함을 좀 줄이겠답시고 열어둔 창문의 좁은 틈으로 코팅된 종이가 한 장 슥 들어왔다. 아니다. 안의 인원수에 맞춰 아주 친절하게 세 장이었다.
"천사 운운만 하는 걸 빼면 흔한 종말론자인데 말이지—. 돈도… 밝히고. 좀 많이."
과연 캘리칼리의 말처럼 억지로 떠넘기듯 받아든 전단지는 딱히 볼 것이라고는 없었다. 아무리 봐도 돈의 힘으로 멋들어지게 세운 건물을 배경으로 하여 그 놈의 요한계시록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결국 모월 모일 종말이 오니, 교주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내용은 거의 훌륭할 정도로 완벽한 복사와 붙여넣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었다. 교주가 신이 아니라 천사의 대행자라고 자청한다는 부분이다.
"대부분 종말 운운하는 종교는 자기가 신의 대리인이라던가… 아니면 재림예수라던가 하는데 스케일이 이걸 작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묘하게 디테일하다고 해야할 지— 아."
마찬가지로 전단지를 보던 융터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곧 마뜩찮아하는 단답벌레가 찡그린 얼굴과 함게 그의 옆구리를 쿡 찔러 말을 끊어버렸다. 마치 모든 천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큰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편, 융터르가 단답벌레에게 옆구리를 찔린 장면을 택시기사의 눈으로 보면 혼잣말을 하다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에, 다시 실례를 무릅 쓰고 그가 뒷좌석에 앉은 유일한 손님에게 질문을 건넸다.
"어디 아프신가봐?"
"아, 그게…. 예 좀. 밥 먹고 금방 움직여서 그런가."
"밥 때 지난지는 꽤 되었는데…."
떨떠름해하는 얼굴로 기사는 이제, 옆으로는 인상이 무서운 손님과 뒤로는 뭔가 좀 무서운 손님을 태우고 조용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그의 세계에서, 어쩐지 이 이상한 두 손님과 엮여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든 이유다.
그런 이유를 모르는 채로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과 한 천사는 그저 택시기사가 귀찮게 굴지 않고 친절했다며, 저마다 이야기를 했지만 이 현장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도 못한 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면 너머로도 잔쯕 짜증났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소피아와 조금은 피곤해하는 눈치의 해루석이었다. 이게 무슨 정황인지 대충 알아차린 캘리칼리가 대표격으로 은근슬쩍 흘리듯 말했다.
"안 보이는데서 토하고 와도 되는데 말이지."
"아, 아닙니다. 실은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해서 부득이하게 실례를 좀 했습니다."
안경을 추켜올리느라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그의 평소 점잖고 다감한 인상이 삽시간에 그림자가 지는 바람에, 삽시간에 음침하게 변해버린 바텐더의 모습에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박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세는 오롯이 그를 천사교의 본당 앞으로 이동시켜준 소피아에게 쏟아졌는지, 방금 택시에서 내린 셋은 전혀 영문도 모르고 복면을 쓴 사내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 것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 괜찮습니다!"
"감기라도 걸렸나? 식은 땀이 엄청난데."
"지금 엄청 창백해지신 것은 압니까?"
한 진짜 신부와 한 가짜 신부가 저마다 소피아의 이 이상한 반응에 대해 의문을 표했지만, 막상 그는 괜찮다는 말만 연거푸 하고는 새까만 그림자 구덩이를 다급하게 만들어 그 위로 뛰어들었고 그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멀뚱한 눈으로 그 흔적만을 바라보는 사이에 단답벌레는 명백히 해루석의 위압감이 고스란히 소피아에게 짓누르듯 다가간 것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해루석도 이런 곳에서 더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는 태도가 역력히 드러난 채로 교회 건물을 바라보았고, 바글바글한 인파는 그야말로 문전성시라는 표현에 걸맞았다. 최근 확장공사를 한 것이 분명해보이는 마당은 이미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과 예배를 보러 온 사람들로 혼잡해, 원체 사람들이 많은 곳을 꺼려하는 단답벌레가 혼절하기 직전까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길 이제 들어가봐야 한다… 라는건데."
"보아하니 저희처럼 오늘 처음 와본다는 눈치의 사람들도 더러 보이는군요. 눈치 안 보고 들어가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단답벌레는 고즈넉한 성당분위기가 더욱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단발머리가 낭창낭창하게 저어질 정도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신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단연 이 중에서 가장 큰 전력이 되어줄 그가 갑자기 이탈하려는 분위기에 나머지 셋은 크게 당황했지만 그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 감."
무슨 소리라도 하기 전에, 그의 몸에 금이 순식간에 갈래갈래 갈라지는가 싶더니 햇빛 사이로 바스라지듯 천사가 사라져버렸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이 이탈에 당황해하는 티를 냈지만, 그렇다고 너무 목소리를 높이면 그것도 주변의 이목을 끈다는 것을 알아 잇새로 끙끙 앓는 소리만을 내며 다른 둘에게 말했다.
"안에서 뭐가 어떻게 되든 간에 한 번 가보자고."
"그나저나 해루석 님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목소리를 작게 낮춰 융터르가 교회 마당 안으로 들어선 해루석에게 말했다. 과연 그는 일전에 무작정 침입했다가 화상을 입은 팔뚝을 다시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자극이 다시 느껴지는 듯, 안경 너머로 보이는 찡그린 눈은 어떤 결의마저도 깃들어 있어 정말 괜찮지 않아보였지만.
"괜찮습니다. 전 꼭 그걸 되찾아야 하니까요."
"대체 그게 뭔데 그런가?"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궁금증에 짜증이 살짝 섞인 채 물어보았으나, 해루석은 답하지 않았고 그저 성큼성큼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해서 다른 두 사람도 그를 놓칠세라 그 뒤를 쫓았다. 곧 예배가 시작될 것이라고 직원 비슷한 사람이 나와서 메가폰 따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 마당과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 비해 입구가 너무 좁아터지도록 몰려들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고 하면 앞자리에 앉으려 했건만, 보좌신부의 가혹할 정도로 큰 앉은 키가 문제가 되었다. 가까이에서 실제로 천사가 이 교주에게 힘을 빌려주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성직자들과 악마는 뒷자리에 앉은 다른 신도들의 눈칫밥을 먹기를 거듭한 끝에 결국 맨 뒷자리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불만스러운 얼굴의 보좌신부는 이미 훌륭한 뒷세계의 중진과 같은 인상이 되어있어, 그들의 근처에라도 자리를 잡으려던 다른 신도들이 겁을 먹고 다가가지도 않았다.
"신학대학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예전에도 이걸로 덕을 좀 톡톡히 보았는데."
"하, 내 옆자리에 앉은 게 그런 이유였나?"
"그럼요. 눈 먼 자리를 앉지 않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해루석에게는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가 그에게도 제법 즐겁게 느껴질 때 쯤, 흰 제의의 등 부분에 황금색 수실로 교단의 상징인 세 쌍의 날개를 수놓은 교주가 시끄럽고 요란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배당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그를 노려보는 해루석이 말했다.
"저 자가 천사에게서 직접 가호를 받은 자입니다."
"그렇찮아도 단답벌레 님께서 말씀해주시더군요. 저 사람 등 뒤로 날개가 있다고."
"지금에 와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그런데 말이지, 이미 가호까지 받은 양반이 뭣하러 천사를 또 납치한단 말인가? 그것도 악마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훔친 천사를."
캘리칼리가 성당 안에서부터 진작에 제기했어야 했다며 의문을 털어놓았다. 카르나르 융터르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뭔가 답을 내어줄 것 같았던 해루석은 입을 달싹거리다가도 도로 다물어버렸다. 그들이 이렇게 떠드는데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이미 교주의 등장 이후로 교회 안은 차라리 도축 중인 짐승들이 더 조용하겠다 싶을 정도의 악다구니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단상 위로 올라가 설법을 시작하려고 마이크를 톡톡 건들고나서야 자길 한 번만 만져달라느니, 이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달라느니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예배가 시작된 이후로 대략 1시간 가까이 흐를 쯤, 두 성직자들의 표정은 점차 해루석이 봐도 가관이 아니게 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실제로 지상을 혼잡하게 만드는 악마들을 일선에서 때려잡느라 신학이 깊을 수 밖에 없으며, 다른 한 사람은 실제로 신부이지 않은가. 그런 그들 앞에 아주 흔하디 흔한, 나를 믿지 않으면 이 세상이 조만간 멸망할 때 구원 못 받는다라는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강론도 무엇도 아닌 억지소리를 들어주는 그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고 있는 중이었다.
"개소리 그만 좀 하지? 이거 듣자하니 내 귀가 댁을 고소하면서 전해달라던데. 뻥치지마라 이 구라쟁이야, 라고."
"아, 이런."
예전부터 성정이 불같기로 소문난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확실히 객관적으로 개소리와 헛소리로 대잔치를 열고 있던 교주에게 손을 번쩍 치켜들어 시비를 걸어버렸다. 덩치만큼이나 걸걸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그 안의 모든 이들의 이목을 빼앗아버리자, 융터르는 신학대학 시절의 익숙함에 골머리를 싸맸고 그것은 해루석도 별반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떤 의도가 있겠거니하는 일종의 희망을 품고, 대악마가 사이비 성직자에게 질문을 하였다.
"어, 어떻게 할 생각이나 방법이 있으니까— 그러시는 거죠?"
"없습니다. 저 양반은."
그 침통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해루석이 당황한 얼굴로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보좌신부를 올려다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진짜로 뒷일은 생각도 않고 바로 들이 받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얼굴이다. 그저 주변을 둘러도 보지 않은 채 단상 위의 교주를, 캘리칼리는 노려보았고 교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그가 곧장 날아올라 이 쪽을 내려다 보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이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입니까? 지금도 보십시오! 천사님이 저를 당신의 대행자로 삼으셨음을 이렇게! 이 날개로! 증명하고 있잖습니까!"
교주의 분노, 그리고 자신감이 좀 과하게 넘치는 말에 주위에서는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마치 말벌집을 건드린 것 같은 분노로 웅웅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카르나르 융터르가 슬쩍 그의 이마를 보니 혈관이 이마에 삐죽 올라온 것이 이성을 차리기엔 이미 틀려도 너무 틀렸고, 맞는 말을 했지만 아직 마땅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한없이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여러분!! 저기 저 시꺼먼 놈 보이십니까! 저 비열한 자들이 이제는 악마와 손을 잡고 이 성전을!! 저와 여러분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이 성전을 침략하고자!! 모—략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의 격렬한 손가락질에 맞춰 핀스트라이트 조명이 정확히 해루석의 머리 위를 내리 쬐는 모습은 차라리 연극대본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믿을 정도다. 당황한 해루석이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조명에 눈부셔서 당황하는 사이, 웅웅거리는 목소리는 이제 확실히 분노를 띄고 있었다. 굳이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아도 그 내용은 교주가 말한 그대로를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기들끼리 확대하고 재생산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캘리칼리 님, 조금만 참으시지 그러셨습니까?"
"가만 있어보게,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거든." 그가 아직도 공중을 날고 있는 교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쪽이 그렇게 파닥거리게 해주는게 과연 천사님이 도와주시는건가?"
해루석의 얼굴이 창백해질 수 있는 한도까지 핏기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이 맞다면 어째서 자신이 크게 다쳐서 돌아왔겠는가. 아직 영문을 알 수 없다는 그 표정과 달리, 옆자리의 카르나르 융터르가 어쩐지 나른한 느낌마저 드는 코웃음을 치며 덩치 큰 신부의 말에 동참했다.
"맞다고 해도 돈을 다 밝히는 천사님도 다 계시는군요. 근데 그런 천사님이 다 계시기는 한답니까?"
두 성직자는 지금 사실관계를 규명하려고 일부러 이 자리에 행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단 하나, 교주가 가지고 있는 실제 천사의 대행자라는 직위와 명예에 지대한 엿을 날리러 왔다는 사실을 해루석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사이비 성직자의 대놓고 비꼬는 질문을 넙죽 받아 문 진짜 성직자의 멋들어진 콧수염이 기울어지며 호탕하지만 명백히 비웃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글쎄— 타락천사 님이면 또 속세친화적 아니신가. 돈냄새가 좋을 법도 하시겠지."
"아하, 뭐 제가 아는 천사님은 기껏해야 피자 한 판이면 충분히 만족하시던데…."
"뭐 그러니까, 사람들한테서 돈 맛보고, 숭배도 받아보고, 그리고 다른 천사도 납치해보고 그러는거 아니겠나?"
일부러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하자, 영문을 모르는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여전히 낮게 둥실 떠오른 교주는 볼살이 파들파들 흔들릴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숫제 비아냥거리는 두 사람과 달리 해루석만이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뻥긋거리기만 하다가, 교주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그저 보는대로 순수하게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근데 왜 반박 안하시지?"
"왜긴 왜겠나? 적어도 찔리는 구석이 계시니까 저런 것이겠지. 아니었으면 대번에 입냄새 폴폴 풍기면서 아니라고 했을 위인 같으신데—."
캘리칼리의 마지막 말이 결정타가 되었는지, 교주가 숨을 좀 과하게 씨근덕거리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저 새끼들 잡아!!"
"아, 이런."
"이거야 원, 손해보는 도박이었는데요. 캘리칼리 님."
신도들에게 의혹을 심어주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금방 될 일은 아닌 것이 당연했고 신도들이 저마다 일어나 이 세 사람을 꽁꽁 에워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에 위기감을 느낀 해루석이 길을 뚫으려고 기세를 피워올리자, 교주의 입에서 놀랍도록 위압감이 넘치는 목소리가 그것을 삽시간에 가라앉혀버렸다.
"천사께서 가라사대, 불신자들은 뜨거운 지옥불에서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 하셨다!"
"뭐야, 진퉁 천사가 진짜로 저 양반의 뒤를 봐준다고?!"
캘리칼리는 뒤에 있던 해루석의 몸이 뜨겁다 못해 연기가 이는 것을 보고 당황하였다. 실제로 자신도 느끼기에 지금 날씨를 생각하면, 덥다는 수준을 과하게 넘겼으니 분명 이 이상기온 현상은 저 교주의 말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조금은 신중하게 덤벼볼 것을 그랬나, 캘리칼리가 속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 그러래? 이쪽도 나름대로 수질은 가려!" 어째서인지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가 전혀 엉뚱한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급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두 구둣발소리가 두 사람과 한 악마의 귀에 똑똑히 닿았다. 세상에 둘도 없을 능글맞은 목소리가 어째서 입구 근처에도 나는 것인지, 하물며 교주의 머리도 그 쪽을 바라보자 전혀 믿을 수 없을 광경이 확실히 보였다. 한 쪽은 검은색 일색이지만 고급진 태가 확 나는 정장을, 또 다른 한 쪽은 일행과 비교되게 보란듯이 새하얀 정장차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흠. 자기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역시 익숙치 않겠지요." 하얀 옷을 입은, 누가 보더라도 카르나르 융터르가 말했다.
"아— 난 저기 해루석, 저 친구와는 구면이야. 술집에서 봤다고. 그렇지? 술집 오너 양반." 검은 옷을 입은, 캘리칼리 데이비슨도 말했다.
"다, 당신이 어떻게." 똑같은 얼굴, 체형, 목소리까지. 해루석은 적어도 캘리칼리를 닮은 남자는 아는 눈치였다.
"내가." 당황한 해루석의 질문에 그 뒤에서 체구가 유독 더 작게 느껴지는 단답벌레가 튀어나오듯 말했다.
설명이 부족할 것이라며 흰 옷의 융터르가 부드럽게 말했다. 운 나쁘게도 이 곳은 진짜 천사가 한 인간에게 가호를 내려주는 것이 맞아, 동급인 자신이 가봐야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 말에 조금은 황당해하면서 투덜거렸다.
"나 참, 그럼 그걸 그렇게 설명해주면 좀 어디가 덧나나?"
"설명, 함."
사이비 성직자가 그 말에 그걸 설명이라고 해도 저희는 못 알아듣습니다. 라며 살짝 핀잔을 놨고, 그 목소리에 두 사람과 완전히 똑같은 정체 불명의 난입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자신들만의 버릇대로 웃었다. 마치 교주가 길길이 날뛰는 것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양.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버버한 얼굴로 둥실 떠있는 교주만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난입한 캘리칼리가 어쩐지 눈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주며 능글능글한 목소리로 교주에게 질문을 하였다.
"말해보게. 뭘 원하나?"
"나, 난— 저 머저리들한테서 왕창 뜯어낸 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어?"
"핫! 아주 정직하게 추악하구만?"
자신의 욕망을 아주 가감없이 토해낸 교주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할 것이라 상상도 못했는지 순순히 답해버리고는 저도 놀라서 입을 뒤늦게 틀어막았지만 늦었다. 감히 자기 신도들을 머저리라고 표현한 것도 모자라 돈을 노린 행각임을 솔직하게 토해버린 것은, 그 어떤 광신도라고 할지라도 신앙을 잃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너무 조용했다.
융터르와 꼭 닮은 하얀 옷의 남자가 마뜩찮다는 얼굴로 교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였다. 마치 '이리 와라'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그 손짓에 놀랍게도 교주의 몸이 보이지 않는 실로 잡아 끌리기라도 하는 듯, 그 앞에 철퍼덕하고 매우 추하게 엎어지더라도 신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 난입자가 자신을 구하라 빽빽 소리지르는 교주를 내려다 보기 시작했다.
"궁금하냐?" 계속 눈 속에 불을 담아둔, 캘리칼리와 닮은 남자가 씩 웃으면서 물었지만 전혀 유쾌함을 담지는 않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이제 이 인간 몸에서 좀 나오시지요. 얼굴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흰 옷의 남자가 단답벌레가 악마들을 상대할 적과 비슷한 칼을 어디선가 꺼내 교주의 등을 거침없이 찔렀다가 쑥 빼냈지만 피는 없었다.
대신 찌른 흔적을 타고 올라오는 것은 약간 거뭇한 것이 때라도 탄 느낌이 드는 하얀색 연기였다. 그러나 곧 일반적인 연기가 아님은 금방 그 정체를 드러냈는데, 그것이 곧장 여섯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모양으로 확실히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개가 아주 하얗지는 않았다. 군데군데 먹물이라도 튄 듯 점점이가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그것은, 과연 하느님의 밑에서 일하는 존재가 맞는지 조차 의심이 갈 정도로 교활한 얼굴을 띄고 있었다.
"이미 늦었군."
"조금만 더 빨랐으면 되었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대천사 나리."
"당신! 비밀소녀 님을 어떻게 한거야!"
이제 기절한 교주의 몸은 다른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얼어붙듯 멈춰버렸고, 그의 몸에서 나온 새로운 존재를 해루석이 알아차리고 다시 흉악하기까지 한 기세를 잔뜩 피워올리며 곧장 그를 상대하기 위해 뛰쳐나갔지만. 캘리칼리와 닮은 것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어허, 자네 순서 아직 아닌데."
"하지만!"
"아니라니까? 아니면 자네가 날 대신해서 이 친구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점차 영문을 알 수 없어지는 것은 이제 두 사람이다. 카르나르 융터르와 지나칠 정도로 닮은 남자가 대천사라니, 반대로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너무나 닮은 남자는 해루석의 술집을 드나든다고 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악마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많은 기이한 것들을 체험해왔다고 자부해 온 두 사람은 오늘 만큼은 그 자부심이 전혀 무색하게도 자신이 아예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애매모호하게 붕 뜬 분위기에 대천사가 다시 손에 쥔 칼을 가차없이 휘둘러, 타락해가는 천사의 날개를 썩둑 베어냈다. 먹물같은 흠이 있다고 한들, 탐스럽기 그지없던 여섯 장 모두가 볼품없이 불타며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한때는 천사였던 자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안돼! 내 날개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조금만!!"
"저 분이 그토록이나 부르짖던 비밀소녀 님을 삼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거란 말입니까? 저 악마가 가진 귀중한 것을 이용해 힘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요?"
대천사가 신랄하게 비꼬면서 말하자 그것이 의도를 낱낱이 들켰는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괴성을 빽빽 지르고 시끄러웠는지 캘리칼리를 닮은 악마가 바닥을 한 번 쿵하고 세차게 발로 내리 찍었다. 이제는 두 사람도 눈에 익은, 뢴트게늄이 쓰는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한때의 천사 바로 발 밑에 열리며 가차없이 그 몸을 끌어내렸다. 분명히 뢴트게늄의 그것보다 더 능숙하게 다루는 티를 드러낸 그가, 해루석을 보면서 씩 웃고는 말했다.
"저 친구는 술집 블랙리스트야. 알겠나?"
"물, 물론이죠. 저런 손님은 오셔봐야 민폐입니다."
"아직 두 분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실 터이니, 최종 목적지로 가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군요."
대천사의 말대로 아직도 카르나르 융터르와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이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교회의 지하 깊숙한 곳, 해루석은 주위를 둘러보다 곧 어떤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 두 사람이 그의 뒤를 쫓아가보니 차라리 거대한 스노우볼이 연상되는 물건 속에, 주황색의 긴 생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천사가 잠든 채로 그 안에 있었고 스노우볼의 끝에는 굵직한 케이블이 과학용 실험대의 끝에 연결되어있었다. 그리고 실험대 위에는, 투명하고 선명한 보석같은 결정체가 점차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어 보는 누구라도 저것이 도대체 무엇에 쓰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는 인내할 시간이 없던 해루석이 새카맣게 흉흉한 기세를 피워, 두 성직자가 봤다 한들 인지할 수 없던 어떤 공격으로 스노우볼이 산산조각 나고 그 안에서 비밀소녀가 힘없이 빠져나왔다. 그러자 단답벌레가 조심스럽게 실험 테이블 위의 결정체를 들어 그녀의 몸 위로 올려주자 곧 그것이 몸 속으로 스며들고는, 납치되었던 천사가 천천히 기운을 차리는지 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하얀 옷의 카르나르 융터르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 쪽 구석으로 와달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좋습니다. 무엇부터 말씀드릴까요…. 일단 저와 이 악마는 두 분의 형상을 빌려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름을 굳이 밝히라면 카르나르 융터르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라면서도, 헷갈린다면 이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말하고는 다시 변명조로 말했다. 비밀소녀를 납치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방금 지옥으로 보내버린 타락천사가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는 것. 그래서 본래대로라면 자신들이 나서야 했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바쁘거든! 그래서 뒤늦게 와보니까는— 뭐. 그렇게 된거다 라는거지." 라며 악마가 끼어들듯 말했다.
막상 와보니 정작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두 사람은 허탈한 것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악몽을 꾼다고 밖에 생각도 못하겠군요."
"그러게 말이야. 난 아까 그 망할 놈이 제법 타락한 천사일 줄 알았는데."
"제법 타락한 건 맞아! 그걸 이제 다른 걸로 충당을 하려 했을 뿐이라는게 문제지만." 캘리칼리를 닮은 악마가 비밀소녀 쪽을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근데 뭘 믿고 나선 거지? 지금까지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 해내겠다?"
"그닥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번 만큼은 부정하기 어렵군요."
어째서 혼나야 하는 걸까. 그것도 거울을 마주보고 선 것처럼 똑 닮은 존재들에게. 두 사람이 삽시간에 조용해지면서 짐짓 혼내던 쌍둥이와 같은 존재들이 각자의 닮은 꼴 앞에 서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향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의 행동은 저희도 좋게 보고 있으므로."
"요컨대 혼내려던게 아니라 상을 주려고 한다 이거지. 나중에 필요하면 잘 써먹으리라 믿겠네."
각자에게 그렇게 어떤 가호를 내렸는지까지 알려주고 나서 사라진 두 닮은 꼴의 빈 자리를, 갑작스러울 정도로 큰 소리가 순식간에 대체해버렸다. 방금까지 그렇게나 애타게 찾고 구해주려는 태도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니 비밀소녀 님—!! 제게서 가져가신 제 보석! 그거 얼른 돌려주셔야죠!"
"아유…. 그치만 당장 불쌍하신 분을 도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걸요오—. 잠시 빌렸다고 생각하심 안될까요?"
"그, 그렇다고 제 물건을 도둑질하는 건 아니잖아요! 비밀소녀 님! 제가 지상으로 올라와서 처음으로 산 제 물건이라고요!"
"…수고."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결말에 두 성직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모아 정말 힘들었다고 말하고는 지상으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단답벌레도 이제 용건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명백히 한숨을 쉬고는 다시 태양빛에 고운 조각이 된 것처럼 잠시 빛을 내다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비밀소녀에게 자신의 물건을 돌려달라며 애원하는 해루석의 목소리는 지하를 계속 메아리 치고 있었다.
'공개 썰입니다. > 멤고 단편 -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의 입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 Hell Divers (0) | 2023.04.26 |
---|---|
밤산책 : What if...? (0) | 2023.04.13 |
이방인 (0) | 2023.03.26 |
어떤 단막극 (0) | 2023.03.24 |
그의 입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 순수하게, 지독하게 (0) | 2023.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