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없이 쿨타임이 돌아와씁니다 라기보다도 Boy 신곡 들으니까 괜히 뽕이 차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쓰기로 했습니다.
*일부 요소는 호그와트 레거시에서 조금 빌렸습니다.
단답벌레가 '그 사람'의 추종자로부터 납치가 되었다가 돌아온 소동으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어느 덧 호그와트에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왔다. 탐스럽게 쌓인 눈이 살갗에 닿아도 그 포근함이, 눈이 가진 그 차가움보다도 먼저 느껴지는 함박눈이 교내 곳곳에 가득 쌓인 자리에는 학생들이 드러누워 저마다 눈의 천사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학생들이 곧 있을 특별 휴가에 들떠있어도 저마다 강의를 들으러 뿔뿔히 흩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이상할 정도로 과하게 큰 눈의 천사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즐거운 의심의 눈초리가 유독 거대한, 어둠의 마법 방어법 교수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한사코 부정하곤 하였다.
"뒷머리와 등 젖은 것부터 말리고 나서 말씀하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며칠 간의 강의 일정이 전부 종료된 후,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마법약 교수 카르나르 융터르가 뚱한 눈으로 직접 내린 커피를 늘 찾아오는 이 덩치 큰 친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간만에 소년시절로 돌아간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들뜬 얼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은 채로 싱글거리며 그 뜨거운 음료에 설탕을 왕창 타고서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글쎄, 이런 건 언제 해도 질리지가 않거든."
"…당신, 나이가 도대체, 몇 살 입니까?"
마찬가지로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신 변환마법 교수, 노스페라투 호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낄낄거리는 동료의 얼굴을 조금은 한심하게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이 세 교수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호그와트의 1년짜리 교수직을 떠나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다시는 이런 여유도 누리지 못할 것임을 한탄하고 있을 때 왈칵 나무문이 세차게 제껴지는 소리와 함께 숨넘어가는 소리를 애써 삼키려는,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창백한 얼굴과 뛰어오느라 상기된 양 볼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두 학생이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들이닥쳤다.
후플푸프의 권민과 래번클로의 단답벌레다. 권민이 손에 쥔 공책 비슷한 것을 교수들에게 내밀면서 말을 하려 했다.
"겨, 겨두님들…, 데동한데여—"
"권민 군? 조금은 진정하고 말하는게 어떻겠습니까."
가슴이 격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와중에 말하려는 그 성급함이, 발음과 맞물려 더 듣기가 난해해지는 권민의 발음에 융터르 교수가 민망하다는 듯 말했고 그 뒤의 비슷한 얼굴인 단답벌레가 그래도 조금은 사정이 나은지 그 권유를 들은 체 만 체하고 이어 말했다.
"춘식, 사라짐."
"이거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구만." 데이비슨 교수의 미간이 보기 좋게 구겨지며, 연구실의 어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시간을 돌려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의 늦가을, 후플푸프가 아깝게 퀴디치컵에서 준우승을 하고 말았다.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몰이꾼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던 곽춘식이 결승전에서 결국 무리하다 블러저에 팔이 박살나는 중상을 입고 만 것이다.
"죄송함다…."
아무리 권민을 비롯해서 팀 동료들, 선배들, 하물며 사감 선생님인 풍신 교수까지도 그의 자책을 달래려고 해도 춘식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좀처럼 사라지지 못했던 이유는 그 부상으로 인해 자신이 블러저의 그 힘에 나가떨어지면서 스니치를 잡을 수 있었던 수색꾼의 진로를 방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춘식은 머피의 법칙이라는 고리타분하면서도 지겨운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훌륭한 간호 교사의 치료 아래에 그의 입원은 불과 사흘 안으로 끝나 팔도 완벽히 붙어, 다시 퀴디치 연습에 투입이 가능해질 정도였지만 날아오는 블러저가 두려워져 몸을 피하기 일쑤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야, 춘식아! 팔뚝 얻어맞아서 아프고 무섭고 그러는건 아는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죄송함다…."
"잘 하자, 임마. 응?"
파수꾼인 주장이 추격꾼을 맡은 팀 동료의 몰골을 보고 결국 지적을 하고야 말았다. 그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에는 블러저에 코를 정통으로 맞아 줄줄 피를 쏟아내는 동료가 부축을 받는 채로 양호실까지 가고 있었다. 마른 낙엽 위로는 그 코피가 점점이 떨어져 징검다리를 만드는 채로. 그 모습을 본 춘식은 어쩐지 자기 팔이 더 아려오는 느낌이 든 나머지, 다쳤던 그 부분을 반대 손으로 꼭 쥐었다.
이후로는 퀴디치가 아니더라도 수업에서도 실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깜빡한다던가는 예삿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법약 수업 때의 일이 있었다. 카르나르 융터르 교수가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눈을 찌푸리며 춘식이 만든 실패한 마법약을 말끔하게 치워버리고는 한마디를 했다.
"곽춘식 군, 방금의 실수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
"오늘의 마법약은 특히 재료 손질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 함을 누차 말씀 드렸는데도, 사전에 미리 경고한 그 실수를 하시고야 말았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까만 망토의 교수가 차라리 동화 속 사신처럼 음울한 어조로 묻는 것에, 빡빡머리 후플푸프 학생의 얼굴은 시체처럼 핏기가 없어진 채로 그저 입에 이제는 가혹하리만치 익숙해진 '죄송하다'는 말을 또 입에 올리고 말았다. 융터르 교수는 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결국 "후플푸프에 벌점 10점"이라는 제법 가혹한 벌을 내려버렸다. 그것이 곽춘식의 자괴감이라는 탑에 아예 불을 붙인 행위가 되어버렸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휴가라는 이유로, 권민과 단답벌레와 함께 일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그 날도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곽춘식은 이들이 자신을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두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새삼 놀라웠지만, 조금만 더 이성을 놓고 있을 때에는 아예 두 친구들과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잇, 튠식님 디금 컨디뎐 디게 나빠보이는데여."
"못 잠?"
"아, 아님다. 그냥… 생각이 좀 많아져서 말임다."
얼버무리듯 답한 그는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말을 하고 먼저 자리를 떴고, 그날 밤이 되도록 유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주변 침대에서는 한창 잠에 빠져 크고 작은 코고는 소리나 잠꼬대가 들리건만. 여러가지로 심란한 마음의 곽춘식이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하였다. 슬그머니 기숙사 바깥을 빠져나온 그가 한 일은 정신없이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햐, 진짜. 이런 짓을 하는데도 진짜 아무도 저 안 잡는 거 실화임까?"
이상할 정도로 반장이고 교수님들이고 순찰을 안하는 것이 춘식에게는 오히려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차라리 잡혀서 어떤 관심이라도 받는다면. 그래서 자기가 지금 품고 있는 속마음을 모조리 토해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고, 하물며 7층까지 올라왔을 때도 자기에게 벌점을 먹여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점차 설명하기 어려운 불만을 품은 그는 아예 한 기둥을 세바퀴는 거듭 돌며 흡사 나 잡아 봐라라는 의도를 몸으로 표현했지만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응? 여기 문이 원래 있었슴까?"
누군가가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 바퀴를 돌고 나서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그는 체념한 체 다시 기숙사에 돌아가려 했지만, 그렇기에 세 바퀴나 돌고난 그는 기둥에 갑작스럽게 문이 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그 문이 자신을 부른다는 느낌을 받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슬그머니 그 손잡이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제법 좁은 공간이다. 마치 여기에 앉으라는 듯, 푹신한 의자가 있었고 그 너머로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제법 거대한 거울이 좀처럼 알 수 없는 글자로 써있는 채로 얌전히 놓여있었다. 마치 자신더러 이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면 된다는 것 같아, 춘식이 이상할 정도로 먼지 한 올도 없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뚱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자신만 보일 뿐이었던 거울 주변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어?!" 외마디 소리를 내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 곳은 아무도 없었다.
흐릿하게만 보였던 거울 속 사람들이 이제 선명하게 상을 띄기 시작했다. 가장 근처로는 권민과 단답벌레, 조금 더 시선을 돌리면 교수님들과 같은 기숙사 친구들, 퀴디치 팀원들이 전부 자신을 장하다는 눈으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마치 넌 대단해!라고 속삭여주는 느낌이라, 처음으로 춘식은 자신이 원하면서도 설명하지 못했던 마음 속의 응어리가 드디어 풀리는 기분이었고 방 안의 제법 찬 공기 탓에 그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저 변함없이 자신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한없이 위안을 얻은 그는, 거울 속의 환상과도 같은 사람들이기에 드디어 자신의 속마음을 꺽꺽거리는 울음과 함께 거침없이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눈에서 읽어버린, 다른 이들의 책망이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다시 잘하려고 해도 거듭 실수가 일어나는 것을 자신이 어떻게 다시 해결해보려고 해도 그것이 영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분은 물론 처한 상황이 연거푸 수렁으로 빠져든다는 느낌을 받아 탈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소연하듯 늘어놓은 그가 목이 쉬도록 울며 말하자, 거울 속의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하여, 춘식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편안함을 느꼈고 그제서야 만족한 마음으로 그가 의자에서 훌쩍 내려 기숙사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반장이나 교수님들에게 걸리는 일은 없었고, 잠들기에는 차라리 깨어있는 것이 나을 정도로 시간이 늦었지만 그마저도 충분하다는 듯 곽춘식은 마음이 후련해졌다. 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그는 침대 밑의 짐가방에서 안 쓰는 노트를 즉흥적으로 일기장처럼 삼아 몇 글자 정도를 휘날리듯 적고나서야 오래간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아잇, 튠식님. 담 못 듀무뎠어여? 두 눈이 띠꺼매여."
"악몽, 꿈?"
"아! 아유 괜찮슴다! 이거느은… 그냥 꿀잠 자기 전에 좀 생각할 거리가 있어갖구. 헤헤."
다음 날 아침. 권민의 지적대로 곽춘식의 눈 밑은 눈에 띄게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괜찮다면서 어두운 표정이었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그 눈 밑만 아니면 정말로 평상시의 곽춘식처럼 보였을 뿐이다.
보란듯이 베이컨을 몇 장은 먹는 식욕을 보여줬기에, 그래서 두 친구들은 그의 말을 믿는 한편으로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제까지는 세상 떠나갈 듯 우울한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고작 몇 시간만에 이토록 밝아질 수 있단 말인가? 설마 호그와트 내에서 이상한 약을 먹은 것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그래서 권민과 단답벌레는 춘식이 계속 괜찮다고 하는 말을 믿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너무 자신감있게 행동했다가 오히려 실수가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 끔찍한 도미노란. 그리고 늘 그의 옆에서 강의를 듣는 권민은 곽춘식이 어디 다치지 않았을까, 혹은 마음에 상처라도 입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가까이 다가갔지만 돌아온 것은 이래도 되는걸까 싶을 정도로 냉랭한 얼굴이라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이 곽춘식에게는 어떤, 어쩌면 더 큰 상처가 된 것 같아보였다.
"아, 그— 괜찮으신가여…?"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뒤로 이러한 주기는 더 잦고, 더 빠르게 반복되었다. 춘식의 얼굴은 갈수록 더 초췌해졌고, 그만큼 기분의 고양과 침잠은 극단적으로 주기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늘 쾌활하고 듬직해보였던 춘식은 어디가고 이제 신경질적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불같이 화를 내는 아이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 전 날 밤.
춘식이 그렇게 사라졌다. 요 며칠 전부터 크리스마스 휴가로 어떤 하루를 보낼 지 이야기조차도 못한 상황이라 안절부절해하던 권민이 그의 정돈되지 않은 침상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짐을 싸서 나간 것인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 그의 짐가방은 얌전히 침대 아래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어, 이거 뭐디?"
어수선한 그 안에는 최근에도 쓴 것 같아보이는 일기장이 있었고, 그 내용을 서둘러 읽기 시작한 권민의 안경 속 눈은 당황과 공포로 인해 점차 커졌다. 그는 본래 휴가를 위해 정성껏 싸둔 짐도 내팽겨친 채로, 그저 춘식의 일기장을 손에 쥔 채 대연회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당장 단답벌레에게 이 내용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밖에 하지 못했다.
"무슨?"
"이거, 이거 보딥디오. 튠식 님이… 디금 아듀 큰 일이 난거 같아여."
영문도 모른 채 단답벌레도 춘식의 일기장을 건네받아 읽었고, 그 내용은 별 것이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차라리 신경질적으로 북북 그어놓은 선의 집합과도 같은 모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학교를 밤에 탐험했다가 이상한 거울을 보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는 내용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거울 속 사람들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들이라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갈 때쯤에는 현실에 있는 두 친구들은 친구도 아니며 원망스럽다는 말이 섬뜩하게 북북 칼로 긋듯 적혀있는 것이다.
"교수님."
"아, 아! 그텨!! 겨두님들!!"
"서둘러."
그리하여 짬통스의 두 사람이 카르나르 융터르의 사무실에 다짜고짜 들이닥치게 되었다. 그 경위와 일기장을 읽는 세 교수의 표정도 점차,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본래 모험심이 뛰어나 학교 곳곳을 돌아다녀본 경험이 풍부한 캘리칼리 데이비슨 교수가 일기장에서 묘사한 장소를 보고 짐작가는 곳이 하나 있다며 말을 하였다.
"듣기론 예전 '그 사람'과 그 따까리들이 이 호그와트를 침공할 적에 필요의 방이라는 곳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했었네. 하지만 일기장의 설명대로라고 한다면 그 곳 말고는 짐작조차도 하지 못하겠는걸."
"어쩌면, 방이 다시 복구가 될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드 교수가 자신이 아는 변환마법의 이론을 떠올리며 말했다. 장소가 바로 특정지어지자 세 교수가 곧바로 몸을 일으켜 7층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덩치 차이로 열심히 쫓아와도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두 학생들과 발을 맞추기가 어려운 교수들이 결국 그들을 한 사람씩 등에 업었다.
7층의 아무것도 없이 그저 제법 굵직하고 거대한 기둥. 그 앞에서 데이비슨 교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인원들에게 몸을 돌려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기둥을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아야 하네. 다시 말하지만 그 뭣보다도 마음이 중요해."
"그렇다면 지금 두 분이 바로 가능하시겠군요."
융터르 교수의 말대로 몇 바퀴고 빙글빙글 돌 수 있는 각오가 충만하던 두 학생이 똑같은 염원을 마음에 품고 기둥을 세 바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안에 있는 곽춘식을 만나고 싶다. 나는 이 안에 있는 곽춘식을 만나고 싶다. 나는 이 안에 있는 곽춘식을 만나고 싶다. 나는—
호드 교수가 그 두툼한 팔로 두 사람의 진행을 막으며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나서야 권민과 단답벌레가 몸을 휘청거리고 나서야 겨우 몸을 제자리에 설 수 있었다. 눈마저 꽉 감은 채 빈 강렬한 소원은 필요의 방이 입구를 순순히 허락해주었고, 긴장한 두 소년이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 서로를 한 번 끄덕 마주하는 결의를 다지고서야 그 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 안은 춘식의 일기장에서 묘사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내부가 과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뭔가가 가득 했고, 차라리 거대한 미로였다.
"아니, 이거 대체 뭡니까?"
"사방이 거울이라니…. 이건 소망의 거울이군요. 그것도 아주 벽을 이룰 정도라."
"그건 또 뭔가?"
낯선 이름에 데이비슨 교수와 호드 교수가 긴장한 채로 뭄었다. 그리고 융터르 교수는 아주 짧게 이야기 해줬다. "헛된 것을 연거푸 보여주는 망상의 집합체입니다." 라고. 그 말이 과연 사실이었다. 단답벌레는 혓바닥에 끔찍한 '그 사람'의 상징 문신이 더는 없고 가족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자신이, 권민은 과도하게 긴 앞니가 정상적으로 돌아와 교내의 인기쟁이가 되는 그런 상상 속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마다 바라마지 않는 것이나 당장 손에 쥘 수 없는 그것.
거울 한 장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자 다른 사람들이 전부 그 쪽을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달큰한 환상을 맛본 데이비슨 교수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것을 본 것처럼 질색하면서 곧바로 그 유리를 발로 걷어 차 깨버린 것이다. 더는 어떤 환상도 보여주지 못하는 그 유리파편을 분풀이 삼아 발로 잘근잘근 짓이긴 그가 말했다.
"젠장, 이거 기분 더럽게 나쁘구만. 그러니까 춘식 군이 이 저주받은 거울에게 홀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저기 보십시오."
호드 교수가 굳어진 얼굴로 한 쪽을 가리켰다. 저멀리 방의 끝에는 고급스러운 의자 위에 축 늘어진 춘식이 앉아 있는데, 멀리서 봐도 그 늘어진 모양새가 결코 긍정적으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복잡한 거울 미로를 그대로 돌파해줄 생각이 없던 변환마법 교수는 자신의 몸을 곧바로 독수리로 바꿔 방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곧바로 방 끝으로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억센 발톱이라면 몸이 바짝 마르기 시작한 학생 하나의 몸무게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어—이 호두야 조심해라!"
"이런, 곱게 보내주겠다는 건 아닌가봅니다!"
두 교수가 순식간에 지팡이를 휘둘러 독수리를 매섭게 내려치려는 거울을 가루로 만들어버렸기에, 그 무거운 거울에 얻어맞아 추락할 뻔한 호드교수가 아슬아슬하게 다시 사람으로 변해 착지를 하였다. 조명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알갱이마저도 몸에 떨어지는 그 기분이 나빴던 세 교수와 두 학생은 저마다 몸을 털고는 더욱 악화된 상황을 보았다. 거울미로가 더욱 커지고 길어졌다.
"좋든 싫든 미로를 돌파해라… 이건가?" 데이비드 교수는 짜증을 감추지도 않은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지팡이를 겨눴지만,
"그만 하심이 좋을 성 싶습니다. 이 미로는 저 거울… 그러니까 원본이 춘식 군을 이용해 계속 이 방 안에서 몸을 불리는 것 처럼 보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호드 교수가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멀리서 봐도 춘식의 몸은 지금 극심한 영양부족이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아는 다섯 사람은 별로 달갑지는 않지만, 직접 뛰어다니며 이 미로를 결국 깨부수는 방법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기에, 보란듯이 난 미로의 유일한 통로로 몸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몇 번째일지도 모르지만, 권민은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털었다. 지금도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 그것을 넋놓고 바라볼 뻔 했다. 그것은 단답벌레도 매한가지여서, 행복한 가정이라는 자신의 이루지 못할 환상을 충족하는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다가도 이내 곧 정신차리라는 듯 스스로 볼을 연거푸 찰싹 소리나도록 때리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성인들도 그 정도마다 차이는 있는 것이 분명했던지, 저마다 볼을 꼬집는다던가 등으로 정신을 차리며 미로를 돌파하려 하였다.
"뎌기여… 뎌희 근데 계독 가튼 다리 돌고 있는거 가타여…."
"뺑뺑이?"
일단 안 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 같기는 하지만, 도통 춘식과의 거리가 아슬아슬한 정도로 가까워지지 않음을 눈치챈 권민이 모두에게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제법 뛰었는데 방 한복판에서 좀처럼 진척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기분을 준 탓이었다. 데이비슨 교수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급히 자신의 흑단나무 지팡이를 휘둘렀다.
"야단 났구만."
"설마, 진짜로 뺑뺑이, 돌았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움직인 것을 지팡이에 기록을 시켜놨던 흔적일세."
점차 선명해지는 마력의 실이 어느 지점부터인가 권민의 발대로 빙글빙글 도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강제로 돌파하려고 해도 일단 두 학생은 거울이 부서질만큼 파괴력이 높은 마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세 교사는 끝없이 증식하는 거울들을 부숴도 그 티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마법을 쓴다는 이유로 지치는 것이 아니다. 거울에 까닥만 해도 눈이 마주치면 보이는 것은 저마다 바라마지않은 소망들이 연속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마치 이제 포기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때.
"튠식니이이임—!!! 됴와듀데여—!!!!"
권민이 돌연, 가까이서 보니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던 춘식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거울로 인해 설 곳도 거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단답벌레는 용케 확성기를 원했는지 매우 익숙한 빨간색의 물건을 입에 대고 아주 짧지만, 그만큼 굵게 몇 마디를 말했다.
"도움, 깨!!"
어른들은 다가오는 거울을 계속해서 깨부수고, 아이들은 구조를 요청했다. 권민이 그렇게 목놓아라 춘식이 있어서 학교 생활을 정말 잘 해낼 수 있었으며, 그런 춘식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외쳐댈 쯤이었다. 멍하니 있던 그가 일어나 몸을 돌렸을 때는 손에 미친듯이 날 뛸 준비를 하는 블러저와 그 클럽이 들려있었다. 분명 초췌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였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당당해보이는 그가 블러저를 냅다 휘둘렀다.
"프로테고!!"
데이비슨 교수가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방어주문을 펼치기 무섭게, 미친듯이 날뛰는 블러저에 의해 필요의 방에서 증식하고 있던 소망의 거울들이 귀가 찢어지도록 수없이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방의 넓이도 점차 좁아지며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는 이제 차라리 떨어지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까워 질 때 쯤, 호드 교수가 이제는 방해되는 블러저를 몸으로 던져 그 움직임을 억누르고 다시 춘식이 이 날뛰는 쇠공이 사라지는 것을 요구함으로써 진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좋아, 이 망할 공간을 이제는 좀 벗어나자고."
진저리를 치는 데이비슨 교수의 반쯤은 강압적인 손에 다른 다섯사람이 일제히 떠밀려 방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어느 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필요의 방 입구가 사그라들듯 없어지는 것을 묵묵히 보던 융터르 교수가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을 해보니 오후 다섯시를 조금 넘긴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우리가 곽춘식 군을 구하러 그 방으로 들어갔을 적이 오전 10시였으니 거의 8시간을 이 안에서 보낸 셈이군요."
"…죄송함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교수의 서늘한 말에 곽춘식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염려하듯 바라보는 두 친구와, 괜찮다는 듯 은은히 미소짓는 호드 교수, 장난스럽게 씩 웃는 데이비슨 교수의 얼굴을 저마다 바라보다가 융터르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제법 냉정히 말한 것 치곤 그 또한 걱정으로 가득찬 얼굴이었고, 곽춘식은 더듬거리다 그가 원래 원했던 답을 말했다.
"괘, 괜—찮슴다…?"
"저번에 깎은 후플푸프의 10점을 이제 돌려드리지요. 이건 그 멋진 블러저 타격 솜씨에 대한 답례라 생각하시길."
"감사함다…."
"우리, 여기서 이렇게 서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설마?"
어디선가 천둥이라도 울리는건가 싶더니, 반사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캘리칼리 데이비슨의 배를 보고야 말았다. 천하의 뻔뻔하기로 소문난 그도 이런 종류는 제법 부끄러웠던 것인지 괜히 더욱 과장된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잊으라고 윽박질렀지만, 어쩐지 반쯤은 장난스러운 말투다. 그리고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학생들은 이 지극히 삶과 가까운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진짜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대연회장의 넓은 테이블 위에서 즐기는 크리스마스 만찬은, 작년에는 집에 가있느라 몰랐던 권민과 곽춘식에게 있어 눈이 둥그렇게 떠질 정도였다. 단답벌레가 건네주는 온갖 신기한 장난감이 폭죽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에 신기해하고, 조촐한 규모를 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은 곽춘식에게 드디어 거울이 없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후플푸프 기숙사에 단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남지 않은 늦은 밤.
"으억 따거라!"
"얼마나 따갑길래 그렇슴— 악!!"
크리스마스 파티 직전, 융터르 교수가 황급히 사무실로 달려가더니 위겐필드 묘약이라는 회복제를 세 학생에게 넘겨주었다. 기껏해야 손가락 마디 정도 길이의 이 초록색 물약을 마셔도 좋지만 다친 곳에 뿌리라는 조언에 따라, 권민과 곽춘식이 그제서야 거울파편에 몸이 이곳저곳 얕게 찔린 그 쓰라림이 느껴져 약을 뿌리는데 제법 독했다. 그 따가움에 눈물마저 찔끔 나오던 곽춘식이 자신보다도 더 이곳저곳에 상처가 나있는 권민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그— 아까 마지막에, 고맙슴다."
"엑, 뭐가 말인가여?"
"제가 도움이 되어주었다는 그 말… 그게 듣고 싶었나봄다."
이제는 약 때문이 아닌 것이 분명한, 춘식의 얼굴은 조금이라도 건들면 오열을 할 것 같은 얼굴로 그가 절절하게 말했다. 자신의 실수에 괜찮다고들 말해줬는데 자신이 그러지 못하자, 그 순간부터 자기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권민과 단답벌레조차도 미워하게 되었다는 말. 그러다 우연히 소망의 거울을 발견해서 본 모습은 그야말로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그런 것이었기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는 것까지.
"근데… 거울 바깥, 그러니까 여기는 거울 속이랑 다르잖슴까…. 저는 여전히 실수를 계속 하고, 사람들이 한심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같고…."
"그래두 디금은 여기 게디단아여. 우띠 그 거울 독 나한테 디다니, 분하다!!"
곽춘식은 이상한 부분에서 길길이 날뛰는 권민의 장난스러운 고함에 킬킬 웃으면서도 피곤함이 과하게 몰려와 침대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권민은 그런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바로 따라가겠다고 말을 하며 그를 보내주었다. 난장판이 되어있던 이불은 집요정들이 곱게 개고 그 안이 따뜻하라고 물병까지 들어있어, 확실히 지친 몸은 그것을 너무 달게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꾸는 꿈 속에서 자신은 다시 그 방에 있었다.
지금와서 보면 참 빛도 들어오지 않아 먼지가 가득하고 퀴퀴한 그 방에 있는 낡고 고루한 디자인의 거울은 이미 눈에 질릴 정도로 눈에 익은 그것이다. 마치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그 거울을, 춘식은 발을 내딛어 다시 마주보았다.
거울에 맺힌 것은 오직 곽춘식 자신이 당당하게 씩 웃는 얼굴로 서있는 모습, 그저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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