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포 AU 리뉴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더범새 재밌자나 더범새.
*고작 1고놀로 끝난게 아쉬워서라도 쓰는 이유입니다.
호그와트에서 7학년이란, 발길에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해야 할 시기였다. 그 가혹한 O.W.L보다도 더 잔인한, N.E.W.T를 시험치르기 위해, 지난 6년 동안의 공부를 시험 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마법 정부의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탄탄대로를 밟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호그와트의 청소부나 되어도 다행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따라서 각 기숙사 휴게실부터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곳곳마다 신경이 곤두선 7학년들이 교과서 따위를 펴들고 양피지로 만든 노트에 난도질 하듯 메모하거나 웅얼거리면서 제 지팡이를 휘둘러댔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부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경쟁관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호그와트 7층 어딘가에 있는 네 사람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심지어 안락한 휴식마저 보장되는 공간이 있었다. 필요의 방에 있는, 기숙사를 초월해 서로 친구 사이인 네 사람이 책상 앞에 서로 마주보고 앉은 채 머지 않아 도래할 시험에 집중했다.
"—아, 정말 싫구만."
독수리 깃털로 만들어진 깃털펜이 나무 탁자 위를 나뒹구는 소리와 함께, 그리핀도르 소속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책 읽던 고개를 천장으로 쭉 피면서 중얼거렸다. 한동안 성미에 안 맞는 일을 하느라 움츠렸던 어깨를 덩달아 피니, 그의 어깻죽지에서 우두둑하고 마치 뼈가 부서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하지만 이건 그가 스스로의 장래를 퀴디치 팀이 아닌 그린고트에 입사하는 것으로 결정한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그의 성정을 떠올리면 얼핏 이해할 수 없는 진로였지만, 깐깐한 고블린들이 운영하는 그 은행이 까다로운 수준의 저주 차단 전문가를 모집하고 있다는 점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납득되었다.
"고대 룬문자? 그거 다 했습니까, 캘리칼리?"
교복을 대충 입고 말아서, 녹색바탕의 은색 뱀 심볼이 있음을 겨우 알 수 있는 소피아가 책상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춰올렸다. 늘상 하고 다니는 복면 덕분에 그의 코부분이 잉크 범벅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이나 공부에 열정을 쏟는다고 보일 법한 태도였지만 그가 공부하는 것은 영 엉뚱한 것이었다. 캘리칼리는 소피아가 쫙쫙 펼쳐놓은 책을 들어올렸다.
"아, 이게 뭐냐. 머글학 서적이잖아?"
"뭡니까!? 남 공부하는데 방해나 하고!"
진로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수님들의 말에 소피아가 택한 것은 '위즐리 형제의 위대하고 위험한 장난감 회사'였다. 그러나 제 공부를 방해받았다는 데에서 분통이 터진 것이 분명한 그는 캘리칼리의 손에서 제 교과서를 다시 빼앗듯 되찾았다. 그도 그럴것이, 머글사회의 유흥 관련 요소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서 이걸 마법사 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이 꽤 까다로웠던 탓이다—라고 소피아는 주장했다.
그렇게 한동안 내 공부가 더 어렵다, 네 공부는 그게 공부냐 서로 다투던 두 사람이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이 쌓아둔 책들도 많다지만, 맞은편의 두 사람만큼은 아니었던 탓이다. 책으로 탑을 쌓는 것으로 내기를 했다면, 둘 중 누가 우위에 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저기요 두 분~ 좀 시끄럽거든요오?"
평소였으면 단정함을 한껏 살려 가꾸었을 외모를, 머리는 깡똥하게 바짝 묶고 안경마저 쓴 채로 집중하고 있던 후플푸프의 비밀소녀가 그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들어올리며 눈 밑이 거뭇하게 변한 상태로 은근슬쩍 힐난했다. 그녀의 목표는 무려 성 멍고 병원의 치유사였기 때문에, 캘리칼리 못지 않게 어렵고 까다로운 과목들이 한 두가지도 아니건만 적어도 그것들 모두를 최소한은 E 이상은 통과해야 했다. 심지어 그것이 필기 확정 컷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었으니, O를 목표로 하는 그녀로써는 소피아와 캘리칼리 간의 말다툼이 사뭇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책으로 이루어진 거탑에서 고개가 모로 살짝 빠져나온 융터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퀭한 두 눈의 래번클로 학생은 목을 한동안 안 써서 그런지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가 심해를 넘어서 아예 내핵까지 닿을 것 같았다. 목표하는 전공은 비밀소녀와 다를지언정 그 또한 성 멍고 병원의 치유사가 목표인 터라 마찬가지로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두 분 싸우실 거면 나가서 싸우십시오."
둘 중 누군가가 쩝 하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싸운 것도 아니고 시끄럽게 떠든 것도 아니지만, 발 밑에 떨어지는 낙엽과 부엉이 깃털에 조심해야 하는 때다. 캘리칼리나 소피아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다.
호그와트의 네 기숙사. 전통있는 학교인만큼 각 기숙사는 저마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의식이 있었고, 그만큼 다른 기숙사에서 친구를 사귀기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기껏해야 동아리 활동이 그 가두교의 역할을 할 따름이지만, 기숙사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격은 물론 취향도 확연히 네 사람이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는가는 호그와트 내에서의 수수께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기에 대한 답은 있었다. 교수들은 적어도 그랬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제임스 포터와 시리우스 블랙, 위즐리 쌍둥이에 이어 말썽쟁이의 계보가 이어졌다고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은 각 기숙사에서 내노라하는 희대의 말썽쟁이라는 이유로 서로 의기투합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수업마저 빼먹으며 호그와트 곳곳을 탐험하는 캘리칼리 데이비슨.
제 소속인 슬리데린도 모자라 다른 기숙사들마저 자유롭게 드나들며 소소한 것을 훔치곤 하는 소피아.
선의로 타인을 괴롭히는 것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비밀소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탐구심 때문에 '그 사람'의 재림 아니냐고 의심까지 받았던 카르나르 융터르.
말썽꾼은 말썽꾼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걸까? 각 기숙사마다 내노라하는 이 악동들은 그것 외에는 어떠한 접점이 없었는데도 금방 친해졌고, 곧 그 말썽은 기존보다 스케일이 확 커지고 말았다. N.E.W.T. 수준을 야무지게 담았다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참고서를 다시 손에 쥔 캘리칼리는 정작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영 엉뚱한 상상을 담았다. 그리고 깊게 고민할 시간에 움직이기를 원하는 그 답게 툭 내뱉었다.
"금지된 숲 가고 싶구만."
"거기 다시 갔다가는 이덕수 교수님한테 잡힐텐데요. 최근에 아주 벼르시더군요. 호그와트 사상 가장 많은 벌점을 받은 학생이 그리핀도르에서 나올 것 같으니 그 전에 조지겠다면서."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냐, 융터르. 너도 그 동안 까먹은 기숙사 점수가 상당할텐데? 난 도파민 교수가 자기네 기숙사 우등생 때문에 한숨 픽픽 쉬는거 봤거든?"
한쪽 눈썹만 치켜뜬 캘리칼리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고, 그 말에 제대로 긁힌 융터르는 무력적인 면에서 전혀 상대가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두 눈을 홉떴다. 그런 것과 별개로 이 둘의 대화는 한치의 거짓을 품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상당히 포지티브한 비난이었다.
교수의 권위를 빌려, 가장 중요한 시험을 목전에 두고 딴 생각하는 캘리칼리를 질타했던 융터르도 캘리칼리의 반박에 대꾸할 말이 없던지 잘도 나불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캘리칼리의 헛된 소망에 힘을 보태준 건 다름 아닌 비밀소녀였다. 손때가 가득한, 불과 구매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뿐인 약초학 참고서가 그녀의 손에 의해 바닥으로 나뒹구는 동안, 뭉친 어깨 근육을 스트레칭하는 그녀가 말했다.
"그치마—안 여기서 지금 수십시간을 공부하다보면 집중력이 흐려질 수 밖에 없다구요오—. 강의 시간 빼면 여기서 나가지도 않고 있잖아요?"
비밀소녀의 그 말에 나머지 세 남학생이 고개를 스트레칭 할 겸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네 기숙사 학생은 본래라면 자기 기숙사에 돌아가서 잠을 자곤 해야 했지만, 이들의 시선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주식 침대보다 더 편한 해먹과 각 기숙사의 상징 깃발이 벽에 걸려있고, 호그스미드에 갈 사복과 교복은 작은 옷장 안에 전부 들어있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곳은 아무리 마법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호그와트 내에서도 극소수였다. 필요의 방. 창문이 없다는 것과, 음식 문제는 나가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있을 것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곳이지만, 노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제 아무리 좋은 곳이여도 몸서리쳐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캘리칼리가 불쑥 말한 금지된 숲은 그들의 주요 피크닉 장소였던 것도 한 몫했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켄타우로스 무리들과 달리기 시합하던 캘리칼리는 그 쾌감과 스릴을 잊지 못해 했고, 소피아는 애크로맨툴라의 거미줄을 남김없이 수거해 호주머니를 갈레온으로 넉넉하게 채운 그 황홀함을 잊지 못했다. 융터르는 비밀의 숲을 종종 돌아다니는 유니콘들의 피를 받아서 마법약 연구를 했다. 하나같이 교수들이 저마다 뒷목잡고 쓰러지기에 충분한 짓거리였다.
유흥에 사용되는 머글과학에 대해, 마법 상식과 괴리되어 오는 혼잡함을 못 이기고 머리를 쥐어짜내느라 복면 사이에 금발이 삐죽 새어나온 상태의 소피아가 가장 먼저 그 제안에 반색을 표했다.
"나갑시다! 바깥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예?! 아주 공부를 손에 놓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 근데 지금은 시간이—"
이제 반대 의견은 오직 융터르 혼자였고 공교롭게도 나머지 셋은 융터르의 말은 말썽을 부리기 위한 계획을 짤 때 빼고는 없었다. 길 잃은 고양이 목덜미를 잡아 올리듯, 그렇게 래번클로의 말썽꾼은 그리핀도르의 거한에 의해 몸이 들어올려진 채 거의 3개월만에 의미없는 외출을 하게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카르나르 융터르가 낮은 목소리로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아니 사람 말은 안 듣고, 지금 통금시간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머 그런 중요한 정보를 빠딱빠딱 말해줘야지~ 안 그럼 사람 성질 답답해서 죽어요~"
평소부터 (유령같은 부분만 제외하자면)대담한 면이 있던 비밀소녀는 태연하게 말했고, 그건 다른 두 남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반대 의견을 표하던 융터르는 도로 필요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의 교복 외투 목덜미가 보기 좋게 늘어졌다. 나머지 세 사람의 손에 붙들려 질질 늘어진 탓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공부로 혹사당한 탓에 굶주린 그의 배가 시끄럽게 7층 복도에서 울었다.
"결정났구만! 첫 행선지는 주방이다."
호그와트의 모든 교직원들이 밤에 기숙사에서 나와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잡아들이지는 않는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다름 아닌 주방의 집요정들이었다. 학교의 온갖 잡일과 식탁을 책임지는 그들은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마음씨가 강했고, 종종 외부에서 사온 간식거리가 떨어진 학생들이 그래서 찾곤 하는 장소가 주방이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면, 주방의 위치는 지하 감옥과도 같은 위치의 슬리데린 기숙사만큼은 아니지만 지상층에 위치해있어 7층부터 내려가기에는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그 누구도 투명망토를 꺼내오지도 않았다. 시계를 보지 않고 대뜸 나선 탓이었다.
"잘 됐군요, 특히 캘리칼리 당신 덩치로는 아무리 잘 숨는다 해도 폭탄꼬리 스크루트를 숨기는 것과 다름 없으니—"
잘도 떠들어대던 융터르의 입이 그 순간 얼어붙다시피 했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던 소피아가 제 마법지팡이를 휘둘렀고, 곧 끈끈하고 차가운 불쾌감이 정수리부터 얼굴과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흔적처럼 남은 부분은 제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숙달된 소피아의 투영마법이 빛을 발했다.
심지어 응당 말해야 할 주문조차 생략한 채로 그 자신은 물론, 캘리칼리와 비밀소녀에게까지 전부 건 소피아는 보이진 않지만 어쩐지 우쭐거리는 낌새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제 됐으니까 얼른 갑시다! 생각해보니 저도 야식이 땡긴단 말입니다!"
"그렇다는데요오~ 소피아 님이 투영마법도 풀지 못하고 이러다가 복도 바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면—"
비밀소녀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헙'하고 막혔다. 눈에 보이지 않을 터인데도 캘리칼리는 정확히 그녀의 입에 제 두껍고 솥뚜껑만한 손을 얹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곧 답이 나왔다.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반장들 때문이었다.
"야, 뭔 소리 들리지 않았어?"
"에—이 기껏해야 유령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던 모양이지. 듣기로는 오늘 목 없는 유령들 모임이라고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그랬는걸."
지팡이 끝이 창백한 빛을 내면서 반장들의 반장배지를 도드라지게 했다. 물론 갓 성인이 된 자신들과 비교하자면 고작 5학년에 불과한 미성년자들이지만, 그들의 권위는 다름 아닌 각 기숙사 사감들에게서 빌려오기 때문에 마주쳐봐야 그닥 좋을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영 마법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지만 캘리칼리의 장난기가 도지는 것을 나머지 말썽꾼 셋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캘칼 님, 안 됩니다?'
'아으으! 지금 장난치면 우리 꼼짝 없이 전부 걸린다구요오—!'
'캘리칼리 당신 미치셨습니까?!'
그러나 항간에서는 먼 조상 중에 거인이 있던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이다. 그의 완력은 일반적인 학생들을 충분히 뛰어넘은 상태였고, 그의 장난기를 말리기 위해 각자 몸으로 막고 있던 세 사람은 그의 품에서 마법지팡이가 빠져나오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쨍—!!
그들이 있는 복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그 자리에서 설렁설렁한 태도로 순찰을 돌던 반장들 중 한 사람이 돌연 머리를 부여잡은 채 허리를 숙였다. 그 근처에는 정확히 사람 머리만한 크기로 움푹 파인 흔적이 있는 놋쇠대야가 시끄럽게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야! 야! 괜찮아?!"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오 아파…."
반장 한 사람이 놀라서 홉뜬 눈으로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이 복도에 누군가가 있음을 짐작했는지 제 지팡이를 위협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들 주위에 필시 범인이 있다고 짐작한 듯 지금 나오면 벌점만 매기겠다고 으르렁거릴 때였다. 아주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말썽꾼들의 맨 뒤에서 나오더니 곧 호그와트 학생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피—브—스—!!"
"야, 됐어. 됐다고. 양호실이나 가는거 도와줘. 나 머리 아직도 울리는거 같아."
호그와트의 변치 않을 불변의 악동이 이번만큼은 무고한 죄를 덤터기 씌우게 된 것을 모른 채, 반장들은 황급히 7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아대기 시작했고 투명한 상태인데도 나머지 셋은 캘리칼리가 어쩐지 송곳니까지 드러낸 채 씩 웃고 있는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거봐. 이렇게 커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좋냐, 응?"
"어휴 내가 진짜…."
그의 뻔뻔하기까지 한 발언에 제 지팡이를 도로 품속에 찔러넣은 융터르가 평소와 달리 타박의 말을 하는 대신 깊이 한숨을 쉬었다. 호그와트에 내려오는 불변의 진리 중 하나에는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늘 예측불명의 타이밍에 사고를 친다가 있었으므로, 이걸 이유로 말꼬리잡고 늘어지는 것은 그닥 온당한 판단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함께 하는 두 사람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융터르가 저렇게 커버 쳐주니까 캘리칼리가 더 신이 나서 사고치는거 아니야?
그저 아래로 한없이 내려갈 뿐이지만 미묘하게 쫄깃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반장들은 물론, 당직이거나 밤까지 할 일이 남아 있어 돌아다니는 교수들의 눈을 피하는 것 뿐인데도 그랬다. 캘리칼리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여름방학 때 헝가리로 놀러갔다가 마주친, 흉포하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는다는 혼테일 종 드래곤과 맞상대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적잖이 과장된 뻥이라고 치부했겠지만, 하필 발언자가 캘리칼리라서 나머지 세 말썽꾼들은 무어라고 딴죽걸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이러한 스릴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더 난이도를 올려버린 사람이 있었다. 4층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응?"
"왜?"
"내 지갑 못 봤어?"
교복 망토에 파란 배경과 독수리 그림이 그려진 상징이 눈에 띄는 반장이 옆 사람에게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제 몸에서 먼지가 일어날 기세로 맹렬하게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지갑을 찾았다. 그 안에 들어있는 갈레온이 몇 닢인데, 라는 소리는 덤이었다.
"소피아 님~?"
잇매를 악다문 채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투영마법 때문에 소리를 함부로 낼 수 없던 소피아의 것이었고, 분명 그 전에 아주 잠깐 구둣발이 딱딱한 것을 걷어차는 소리도 들렸다. 퍽 아팠는지, 곧 가볍게 외발뛰기 하는 소리도 들렸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거의 빈정거리듯 중얼거렸다.
"알만하구만."
"뭡니까?"
"저 반장에게 소피아가 물건을 압수 당했어. 페루산 즉석 암흑 가루라고 들어봤나?"
"…그거 금지물품이잖습니까. 압수 당할만 하네요."
소피아는 그것을 구하는데 무려 10갈레온이라는 막대한 거금을 들였다고 했다. 그 돈이면 책이 몇 권이던가, 융터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뻔한 것을 억눌렀다. 아직까지도 그 시꺼먼 가루에서 풍겨져 나오는 연막을 뚫을 만한 주문과 물건(하물며 머글의 것도)이 나오지 않아 발매 금지 당한 그 위험천만한 물건이 왜 소피아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캘리칼리나 융터르도 알지 못했지만 목적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 편이 더 노골적이기도 했다.
"이번에야 말로 교장실에 들어갈 수 있—아 또 때렸어!"
"말이나! 못하면!"
같은 말썽꾼이더라도 소피아의 방식을 비밀소녀가 받아들이는 경우는 그닥 없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도 좋았다. 결국 몇 번 더 투닥거린 끝에, 소피아는 덩치에 맞지 않게 주먹이 상당히 매운 비밀소녀에게서 해방되기 위해 지갑을 잘 보이는 복도 위로 던졌다. 투영마법으로 인해 일렁거리는 그의 모습이 마치 눈가를 더듬는 모양새였는데, 그 원인이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아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순간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드러났다가 도로 사라지는 것을 캘리칼리는 똑똑히 보았다.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면 정확히 11갈레온이었다. 그 이유야 묻지 않아도 알만했기에 그는 아무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입가 근육을 씰룩거리며 빙글 웃었다. 굳이 여기서 목소리까지 낸다면, 알 만 하구만 정도로 말했을지 모른다.
"여러분, 그나저나 빨리 안 가십니까? 그냥 아예 여기서 시간 떼우다가 날 밝으면 그때 주방 가시게요?"
융터르가 못 참고 빈정거리고서야 소피아와 비밀소녀 간의 투닥거림이 그쳤다. 둘은 여전히 서로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기할 정도로 서로가 옳다 그르다 따지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그 둘 만의 말다툼도 뭣도 아닌 것은 다소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소피아와는 전혀 다르게, 슬리데린의 상징이 안 보고 싶어도 보일 정도로 보이도록 으스대던 반장이 돌연 입던 옷이 허물이라도 된 것처럼 스르륵 벗겨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고통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소피아가 빈정거렸다.
"와, 비밀소녀 님. 누가 누구더러 지금 뭐라고 할 때입니까?"
"어머, 그치만 이건 정당방위라구요오."
사려심과 인내심이 깊기로 소문난 후플푸프에서 어떻게 저런 말썽꾼이 나왔느냐고 한다면, 오히려 그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증명이 다름 아닌 비밀소녀였다. 입학 할 때부터 책임감이 남달랐던 성격과 맞물리니 다소 괴상한 방향으로 틀어진 것은 그 헬가 후플푸프도 차마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졸지에 주위 사람들에게 슬리데린의 5학년 후배가 어떤 취향의 속옷을 입게 되었는지 그 꼬락서니를 보이게 한 비밀소녀는 당당했고, 그것과 관련해서 소문을 들은 바 있던 융터르가 끼어들었다.
"해루석 님 때문입니까?"
"으음—" 비밀소녀는 묵비권을 행사하듯 어물쩡 넘어가려했다.
"해루석? 그 친구가 반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했나?"
이번에는 캘리칼리가 역으로 융터르에게 질문했고, 숨길 것도 없었기에 순순히 그가 답했다. 불과 며칠 전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후플푸프 7학년인 그는 진로를 무려 오러로 정한 만큼 열심히 공부 중이었고, 그런 그가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한 끝차이로 늦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보다 2학년이나 어린 후배에게 늦었다는 이유로 벌점을 10점이나 감점 당한 사실은 사실 후플푸프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호그와트의 전 기숙사가 들끓었던 일이 있있었다.
요컨대, 선배에 대한 예의는 밥 말아먹은 싸가지 없는 새끼—라는 평이 절대적으로 다수였고, 그 때문에 저 슬리데린 소속 반장은 가문의 위신을 깎아먹었다는 중죄로 아침 식사중인 대연회장에서 하울러마저 받지 않았던가. 다만 이 모든 것을 캘리칼리가 모르는 이유는, 그저 제 주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성격인 탓이 컸다.
"가볍게 이해하려고 해도 일단 해루석이 그 보다 선배인데다, 벌점을 매긴 장소도 후플푸프 기숙사 문 바로 앞이었지요. 무엇보다도 N.E.W.T. 대비를 하던 상황에서 미루어 놓고 보자면 사실 가볍게 경고 수준으로만 해결해도 되었을 문제였을텐데 말입니다.."
"허, 그런데도 10점이나 깎였단 말이지. 그건 해루석이 머글 출신이라서 그런건가?"
"예, 아마도 그럴겁니다."
카르나르 융터르보다 머리 두개는 높은 곳에서 쳇하고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살이 죄다 뻗쳤을 이 불쌍하기까지 한 슬리데린 소속 반장은, 이제 아주 입이 저렴한 누군가에 의해 자기 속옷 취향마저 전교생들에게 까발려질 미래만이 남아버렸다.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는 않고 이죽거린 캘리칼리의 말은 마치 지옥의 재판관이 내리는 선고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누가 비밀소녀의 심기를 거스를 짓을 하나 그래."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호그와트의 주방은 항상 그랬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들도 언제든 대연회장의 그 거대한 식탁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이제는 1학년들도 다 아는 비밀입구, 과일액자의 과일을 소피아의 손이 간지럽히자 문이 스르륵하고 열렸고 그와 동시에 네 말썽꾼들의 몸에 걸려있던 투영마법도 해제되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에 전념하던 집요정들이 일제히 그들을 맞이했다.
"아, 이거지. 일단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것부터 주겠나? 기왕이면 고기가 좋겠어."
고기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한 캘리칼리가 코를 실룩거리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야식으로 고기라니, 다소 과한 감이 없잖아 많았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오는데 꽤 고생한 대신이라고 서로 생각했다. 곧 익숙한 위치에 자리 잡은 나머지 셋도 저마다 주문을 했다. 소피아는 동양식 면요리, 융터르는 반대로 서양식 면요리. 비밀소녀만이 간단한 과자류를 요구했다.
결국 주방까지 먼 거리를 걸어서 오간데다, 뱃 속이 갑작스레 꽉 채워지는데서 오는 졸음 등으로 네 말썽꾼들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침을 먹기엔 완전히 글러먹었고, 곧바로 각자의 강의실로 향해도 시간이 아슬아슬한 마당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융터르만이 태연자약했을 뿐이었다.
N.E.W.T. 강의는 더 이상 기숙사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 덕분에 전부 같은 수업을 듣는지라, 나머지 세 사람은 부스스한 머리도 정돈하지 못 할 정도인 자신들과 완전 딴판인 그를 흘겨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평소처럼 머리를 바싹 뒤로 넘겨 깔끔함을 유지한 그를 보면 누가 늦잠을 잔 사람이겠거니 싶을 정도였다.
"아 좀 빨리 오십쇼! 이러다 우리 다 늦겠습니다!"
가장 먼저 앞서가던 소피아가 복면 너머로도 상당히 격앙된 얼굴을 한 채 외쳤고, 그건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지만 시선을 독점당하는 당사자는 오히려 빙글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학생들로 복잡해야 할 복도가 조용한 것이 틀림없는 지각 확정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래번클로의 말썽꾼이 제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달칵 열어 확인했다.
"음, 어디보자— 이제 약효가 풀리겠군요. 천천히 강의실로 들어가시죠."
"약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융터르 님.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비밀소녀가 답을 요구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슬쩍 고개를 까딱이며 복도 반대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대연회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와 동시에 땅이 울리는 것이 마치 켄타우로스 수백이 일제히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발 밑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아수라장 같은 시끄러운 고함소리는 덤이었다.
그제서야 하품을 느긋하게 하던 융터르가 말했다.
"혹시나 지각으로 벌점 받을까봐 미리 오늘 아침 식사에 수면제를 타뒀는데 과연 효과가 좋군요. 자, 진짜로 지각하기 전에 어서들 들어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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