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슬 이제 해포 쿨타임이 될 때가 되었읍니다.
2. 마지막 아저씨인 호드님으로 이야기 알잘딱 마무리 두개재―!!
3. 언젠간 다시 또 해포로 망상가리하는 날이 오겠죠? 아마도?
아침이 되자 권민과 곽춘식은 매끄러운 주황빛 머리가 인상적인 반장에게 걱정이 섞인 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일어나자마자 사감선생님께 불려가서 들은 말을 가볍게 전달하며 한밤중에 학교를 돌아다니고 교수님들에게 혼나기까지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면서도 말을 덧붙였다.
"한창 배가 고프더라도 주방에 몰래 들어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
"죄송함다…."
"뎨동합미다."
고개를 숙인 두 2학년에게 반장은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앞으로 배가 고프면 여기서 배 좀 채울 수 있게 주방에 부탁을 해 볼게." 라고 두 사람에게 어딘가 엇나간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대연회장으로 떠났다. 아마도 비슷한 이야기가 탑 꼭대기에 있다는 래번클로 기숙사에서도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에, 두 친구는 조금 머쓱해진 얼굴로 단답벌레를 만나기 위해 기숙사를 나왔다.
단답벌레도 이미 잔소리를 한 차례 들었는지 제법 헬쓱한 얼굴이 된 상태로 대연회장에 얼굴을 보였다. 래번클로의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자면, 그 단답벌레가 새벽에 배고파서 주방까지 내려왔다는게 믿겨지냐며 악의는 없는 놀림감처럼 취급당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그의 접시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 단답이 배고프면 큰일 난다며 음식들을 가져다주는데 그 양이 어지간한 성인들도 감당 못 할만큼 쌓일 뻔했다.
"그만, 그만."
음식으로 이루어진 탑이 이루어 질 것 같아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단발머리 소년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것이 다른 기숙사 사람들에게는 꽤나 보기 드문 일인 것인지, 래번클로 테이블은 간만에 왁자지껄했다. 자기 몫을 얌전히 먹은 권민과 춘식이 대연회장 근처 정원에서 단답벌레를 기다리고 있자니, 과연 과식을 한 것인지 어딘가 불편해하는 표정의 친구가 뒤이어 나왔다. 셋은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호드 교수님께서 무슨 말을 해주실 거라고 했지 않았슴까?"
"마팀 뎌희 텃 강의가 호두 겨두님 차녜네여."
권민이 망토 주머니에서 시간표를 꺼내 살펴보았다. 확실히 변환 마법 시간이 아침 식사가 끝난 이후 있을 예정이었다. 속이 더부룩한지, 단답벌레는 입가를 가리고는 품에서 자기 시간표도 살펴보았다. 래번클로는 후플푸프와 그리핀도르의 합동 수업이 있은 후 시간이 좀 지나야 슬리데린과 합동수업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 점이 맘에 들지 않았던 그가 수업 준비를 하러 가야하는 두 친구에게 넌지시 말했다.
"말하면, 전달 좀."
"아유, 두 말하면 서운함다!"
"무든 말이든 꼭 이야기 해드리게뜹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교수와는 다른 느낌으로, 위 보다는 좌우로 거대한 덩치의 교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게 책상 사이를 가로질러 교탁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아침을 막 먹고 나와 졸려하던 한 후플푸프 학생이 결국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그가 도착해도 일어나지 않자, 교수는 지팡이를 순식간에 휘둘러 깃펜을 자그마한 새로 바꿔버렸다. 그 새가 짹짹거리며 학생을 요란하게 깨우는 사이에, 변환 마법을 담당한 교수는 칠판에 웅장한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다른 학생들은 조그마한 새에 정신을 못차리는 그 학생이 우스워서 깔깔거렸지만, 권민과 곽춘식은 교수가 적은 그 필체가 낯익어서 자기도 모르게 "어?" 소리를 냈다. 어딘가 기억에 익다며 갸웃거리는 권민과 달리, 춘식은 아예 품에서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있는 한 양피지를 꺼내 재빠르게 펼쳤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칠판과 완전히 똑같은 필체로 이름이 적혀있었다. 노스페라투 호드. 카르나르 융터르 교수의 저음과 비견되는 낮은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반갑습니다, 저는 노스페라투 호드. 변환 마법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저… 저기!"
자기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후플푸프의 자리에서 손이 바싹 하늘을 찌를 듯 올라왔다. 춘식의 손이었다. 그를 간밤에 친구 둘과 같이 교실에서 빠져나온 학생 정도로 알고 있던 교수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말을 꺼낼 분위기가 된 그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 퀴디치… 파수꾼 하지 않으셨슴까?"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교실은 순식간에 들뜬 분위기가 되었다. 비단 춘식이 아니더라도 그가 퀴디치 선수였다는 것을 눈치 챈 학생들이 제법 되었던 모양이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기에 참을성이 조금은 부족해서, 열렬한 퀴디치 팬을 자처하는 학생들은 그에게서 사인을 받고 싶어했는지 의자에 앉은 엉덩이가 달싹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본의 아니게 소란을 만들어 낸 춘식은 수업을 방해한 것 같아 머쓱해진 표정이 되었지만, 호드 교수는 교실에 굴러다니는 종이 뭉치에 지팡이를 유연하게 휘둘러 자그마한 황금빛 공으로 바꿔 여전히 손은 들고 있던 학생의 손으로 정확히 던졌다. 전설적인 파수꾼이라는 왕년의 폼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반증인지, 그 모습마저도 학생들은 우와 소리를 내며 감탄을 했고 덥수룩한 수염자국이 인상 깊은 호드 교수는 이참에 바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오늘, 우리가, 해볼 것은, 이처럼, 종이를, 금속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팔락거리고 잘 찢어지는 폐양피지가 한 장씩 학생들 앞으로 전달되고, 교수가 알려준 방법대로 저마다 지팡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따금 이걸 마법을 쓰기 위해 휘두른다 봐야할지, 아니면 물리적인 방향으로 공격하려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매섭게 휙휙거리고는 하는 학생들은 얼른 교수가 내준 과제를 마무리 짓고 선수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던가 사인을 받는다던가를 열망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성급하면 늘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팡이학의 권위자들도 종종 경고하고는 했던 예상 할 수 없는 마법이 학생들의 지팡이에서 튀어나와 불똥이 여기저기 튀기 시작했다.
"오 이런."
학생들이 실수로 만들어낸 불똥을 교수가 급하게 지팡이를 휘둘러 겨우 가라앉히고 살펴보니 크게 다친 사람들은 없었지만 손등에 화상을 입는다던가 하는 경우가 생겨, 그는 상태의 경중에 따라 물집까지도 생긴 일부 학생들을 의무실로 가게끔 조치를 취한 뒤에야 소란이 잠잠해졌다.
노스페라투 호드 교수는 이 상황이 그리 탐탁치가 않아 떨떠름한 얼굴로 모두 하던 것을 중단시킨 뒤의 결과물들을 보았다. 권민과 춘식은 양피지의 대략 4분의 1 정도가 완전히 금속으로 바뀌는데 성공했고, 그리핀도르에서는 평소 목청이 크기로 유명한 분홍색 머리의 학생이 양피지의 절반을 금속으로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봤지! 내가 이렇다니까!"
"그리핀도르에, 상점, 10점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과제는, 오늘의 실패를 주제로, 양피지 세 페이지, 리포트 써오기, 입니다."
과제를 주겠다는 말에 왕년의 슈퍼스타에게 학생들이 불만스러워하며 입술을 내밀고는 하였지만 호드 교수가 5페이지로 늘려도 좋겠냐고 하자, 학생들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우르르 강의실 바깥으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권민과 춘식도 그 대열에 합류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무렵, 다른 학생들이 출구 쪽에 정신이 팔린 것을 본 호드 교수가 넌지시 그들에게 말했다.
"그, 스니치를, 열어보십시오."
누가 가져갈세라 그 황금빛 호두알크기의 공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쑤셔넣었었던 춘식이 이번에는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급하게 도로 끄집어 냈다. 실제 경기용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인지 절반을 잡고 비틀자 공이 열렸고, 그 안에서는 쪽지가 한 장 접힌 채 들어있었다. 오늘 밤 8시, 금지된 숲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예정인지 아무것도 모르기에 쪽지 내용을 함부로 추측하지도 말자고 두 사람이 결론을 내린 채 강의실 바깥으로 나왔다. 오늘 저녁 8시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야밤에 무단으로 주방에 출입하려 했다가 걸린 것으로 처벌을 받기 위해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 적당했지만 하필 장소는 교내도 아니고 금지된 숲이라는 점이 권민에게는 어쩐지 마음에 많이 걸렸다.
춘식이 퀴디치 연습이 있어 운동장으로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은 권민은 과제를 하기 위해 열심히 깃털펜을 놀려댔지만 어쩐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그만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자기 침대 위로 누웠다. 하필 금지된 숲 앞인 이유가 무엇일까? 불량학생들을 잡아들인 것으로 끝나지 않은 걸까? 악명높은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 설마 학교 바깥에서도 암약하고 있는 걸까? 괜한 걱정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그는 피곤했던 탓인지 누운 침대 위로 깜빡 졸기 시작했다.
"아니, 튠식 님? 단답 님? 어디 게딥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울창한 숲 한가운데였고, 이미 하늘에는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권민은 자기 혼자서 왜 이 숲에 낙오가 된 것인지 영문을 모른 상태로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돌아다니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놓아버릴 수 없었는데, 아무리 방향을 달리해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어느 순간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길 하나로만 가야 한다는 듯.
섬뜩한 기분이 내키지 않아 일부러 외면했던, 사람들이 제법 드나들어 길이 생긴 그 자리를 결국 그 마저 따라 걷자 길 끝에는 새하얀 해골가면을 쓰고 검은색 망토로 온 몸을 가린 사람들이 떼지어 모인 널따란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으어―!! 안대!!!"
"아니, 뭔 꿈을 그렇게 꾸심까?"
"엑, 튠식 님?"
권민은 숲이 아닌, 후플푸프 기숙사의 자기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퀴디치 연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춘식은 권민이 침대 위에서 계속 '안돼' 라고 잠꼬대를 연거푸 했다며 무슨 꿈을 꾸었냐고 재차 물었다. 아직은 얼떨떨한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털며 자신을 걱정해준 친구에게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했지만, 그 내용을 궁금해하는 그에게는 말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며 얼버무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침대 쪽으로 향하던 춘식을 살짝 본 권민은 차마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새하얀 해골가면을 쓴 무리가 그와 단답벌레의 가슴에 칼을 찌른 꿈을 꿨다는 내용을 어떻게 말해주겠는가. 그래서 권민은 마른세수를 하면서 그저 기분 나쁜 악몽일 뿐이라고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인지, 권민은 계속 자신을 걱정해주는 곽춘식에게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아서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기분 나쁜 악몽이었던 것 같고, 정신을 차리니까 전부 잊어버렸다며 웅얼거렸다. 문득 시계를 보니 아침에 단답벌레가 보여준, 래번클로와 슬리데린의 합동 수업이 끝날 시각이기에 권민이 춘식에게 단답벌레를 보러 가자며 말을 돌렸고 그 의도대로 친구는 그에게 악몽에 관해서 더는 묻지 않았다.
"아."
"어땠슴까? 수업?"
"들리데딘에더 또 디비 덜디 아낟나여?"
"안 검. 괜찮."
단답벌레는 자신이 수업 중에 겪었던 이야기라고 해봐야, 그 노스페라투 호드가 한때 유명한 퀴디치 선수여서 그 슬리데린의 순혈주의자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정도만 빼면 특별한 점이 없었다며 그림을 동반한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마법약 수업 시간 때 그 난리를 피웠던 반항아가 이번에는 슬리데린 쪽 학생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 이유에서인지 그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출석은 했다는 것으로 말을 끝마쳤다.
춘식과 권민도 호드 교수를 통해 오늘 밤 8시에 금지된 숲 입구로 모이라는 말을 받았다며 이때 기숙사에서 나오는건 이미 사감선생님께 이야기가 된 일이니 딱히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그에게 전달했다. 누가보더라도 극단적인 실내파인 단답벌레는 그 말에 안도했는데, 지난 밤에 몸을 숨겨가면서 이동하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꽤나 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래번클로 기숙사와 후플푸프 기숙사 간의 거리가 상당해도 같이 움직이자고 약속을 한 탓에, 둘은 1층의 현관에서 7시에 나와 거의 30분을 기다렸는데도 단답벌레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1층부터 금지된 숲까지도 거리가 제법 되는 탓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두 사람이 초조해하는데 잔뜩 구겨진 종이가 허우적거리면서 두 사람 앞에 톡 떨어졌다.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힌 권민과 춘식이 부리나케 그 종이를 활짝 펴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단답벌레의 글씨로 적힌 것은 매우 단순했다.
[납치됨. 금지된 숲 안쪽. 도와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금지된 숲 입구로 달려갔다.
"어이, 왜들 그렇게 얼굴들이 시허옇게 된건가? 뭐 잘 못 먹기라도 했나? 근데 래번클로의 단답벌레 군은 어딜가고?"
"그, 단답, 단답벌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 교수들이 노란색 넥타이를 한 두 사람만 약속장소에 나타나자 의아해했다. 그래도 체력이 조금은 더 되는 춘식이 넘어가는 숨을 겨우 참아내며 단답벌레가 쓴 쪽지를 내밀고 저 안으로 납치된 것 같다고 말을 하자 그들도 표정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데이비슨 교수가 단호하고도 싸늘하게 말했다.
"이거 시간이 없군. 서둘러야겠어."
"저, 저 빗자루, 있는데…." 춘식이 갑자기 자신의 빗자루가 생각나서 말했지만 교수는 대번에 기각했다.
"빗자루 가지고 올 시간은 있나? 어쩔 수 없구만. 내 등 위로 올라타게."
어둠의 마법 방어법 교수가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순식간에 거대한 갈색빛이 도는 늑대가 되었고, 등 위로 올라타라는 것이 늑대가 된 자기 등 위로 올라가라는 것임을 알아차린 두 학생이 주저하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호드 교수도 곧바로 독수리로 변했지만 유독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카르나르 융터르 교수였다. 두 학생이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끔뻑거리면서 그를 바라보자, 교수가 떨떠름해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동물로 변했다. 물총새다.
춘식과 권민은 그 의외의 모습에 웃을 상황이 아님을 알지만서도 결국 풉하고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동안, 갈색의 거대한 늑대는 코가 예민해진 것인지 숲에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기라도 하는 듯 신중하게 탐지하기 시작했다. 물총새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저 멀리 숲 안쪽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아 어디로 가야 할지 확인하였다.
"동물들끼리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나봄다?"
"그르게여. 뎌희는 그냥 으르렁거리고 땍땍더리는 거로만 들리는데."
그리고 그 수색은 순식간에 끝났다. 늑대에서 다시 교수의 모습으로 돌아온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아직은 늑대의 버릇이 남았는지 코를 움찔거리면서 조용히하라고 손짓을 했다. 뒤이어 두 교수도 사람으로 돌아와서 각자 몸을 나무나 풀숲에 숨기고는 한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권민은 이 상황이 어쩐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 낮에 꿨던 악몽의 그 장소랑 거의 닮은 것이다. 어쩌면 예지몽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긴장한 그의 뒷목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춘식은 교수님들의 시선을 따라 널따란 공터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망토로 온 몸을 감추고, 얼굴 부분은 그에 대비되게 하얀색 해골 가면으로 가린 사람들이 작달막한 체구의 교복을 입은 한 소년의 주위로 둥글게 감싸듯 서있는 모습. 그리고 그 앞에는 돌로 만든 조잡한 제단이 있었고, 제단 위에는 유니콘이 목에 피를 질질 흘리는 상태로 힘없이 누워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저 유니콘이 제물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늦었습니까?" 긴장한 호드 교수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아직은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니콘 하나가 동원될 정도면 규모는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
세 마법사가 동시에 숨어있던 몸을 드러내자 해골가면들이 당황해하는 티를 숨기지 못했다. 덕분에 그들로 인해 가려졌던, 소년의 모습이 정확히 드러났다. 단답벌레다. 서둘러 친구를 구하러 가고 싶었지만, 당장 어른들처럼 모습을 드러내면 또 다른 인질들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두 사람은 그저 입술을 깨물며 틈이 보이기만을 바라야했다.
이미 역겨워하는 얼굴의 데이비슨 교수가 해골가면들에게 으르렁거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애는 내버려두는게 좀 어떻겠나?! 비겁하기 짝이 없구만!"
"유니콘과, 학생이라니, 무얼 할, 생각, 입니까?"
"모르긴 몰라도 금기의 주술을 범하려던 것 같군요. 이를테면…, 그 사람의 영혼을 덧씌운다던가."
마지막에 찔러봤다는 투로 카르나르 융터르 교수가 말하자, 정곡을 찔렸는지 해골가면들이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곧바로 공격하려 들기 시작했다.
세 어른 마법사들은 수적으로 불리한 것을 불리'했던'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심지어 저 셋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마법약 교수도 이런 저런 마법으로 그 사람의 추종자들인 해골가면들이 날리는 주문을 피하거나, 능숙하게 역으로 받아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점차 해골가면들이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데이비슨 교수는 지난 밤의 불량학생들을 제압할 때보다는 그의 정체성과 같은 능글거림이 줄어들고, 대신 그만큼 더 격렬하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두 학생은 처음 보는 붉은빛의 광선이 해골가면들에게 닿자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억 하고 바람빠지는 비명만 내지르며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교단에서 가르칠 적보다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호드 교수의 경우에는 숲에 즐비한 낙엽을 바람으로 추종자들에게 날림과 동시에 그 낙엽들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게끔 대량으로 바꿨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칼날들은 매섭게 추종자들의 팔이나 다리를 꿰뚫었고, 힘줄이라도 끊어졌는지 지팡이를 들고 더 저항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리는 제법 잔혹한 면도 선보였다.
권민과 춘식은 이제 더는 문제가 없겠다고 안심을 했었지만, 미처 제압되지 못한 가면이 죽은듯 누워있던 단답벌레에게 다가가 예리한 단도로 그 심장을 찌르려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풀숲에서 뛰쳐나와 지팡이를 휘둘렀다.
"늦었어!"
가면을 쓴 추종자는 그렇게 비웃었다. 그의 말대로 애송이들이 지팡이를 휘두른 타이밍은 너무 늦었다. 이미 내려친 단도가 학생의 심장에 닿았으니까. 그러나.
"어이, 뭐가 늦었다는겐가?"
"오늘, 배운 걸, 이렇게, 활용하십니까?"
"이게 강의시간만 되었어도 점수를 20점은 줬어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추종자는 단도가 튕겨져 바닥에 나뒹구는 상황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두 학생이 쓴 주문은 그를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도 들었던 생각인, 단답벌레의 가슴 쪽 주머니에 보관중인 시간표를 강철로 바꾸는 것이었다. 칼날이 철에 닿아 쨍강하는 맑은 소리를 내버리자, 괴성을 내며 저항하려던 마지막 추종자는 곧 세 어른이 차례로 날린 주문을 여러 번 맞고 게거품을 문 채 다른 이들과 똑같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필이면 단답벌레가 저 숲으로 끌려들어가, 그 사람의 그릇 노릇이 될 뻔한 그 근본적인 이유는 너무나 싱겁지만 충격적인 이유로 다가왔다. 그가 그저 단답으로만 말하는 것은 다소 특이한 버릇이겠거니 믿어왔던 두 후플푸프 친구들도 단답벌레가 입 안을 보여주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제 입을 가린 것처럼, 이쪽 방면으로 경험이 많아 보이는 세 교수들도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혓바닥에 그 사람의 상징이 새겨져있다. 해골의 벌린 입 사이로 뱀이 혓바닥처럼 빠져나온 그 섬뜩한 문신은 나름대로 지우려고 했는지 흐려져있지만 여전히 마법의 기운이 묻어나오는 모습에 데이비슨 교수가 한숨을 푹 쉬면서 다른 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강제로 뱀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본 저주일세."
"그런 저주가 실존한다는 말입니까? 그저 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 말도 맞긴 하지. 저주의 매개체부터가 터무니 없으니.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혈통이 이어진 피로 무턱대고 그려대는 이 문신이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이건 열의 아홉은 반드시 죽네.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가면서 해낸 짓거리지."
단답벌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부모님이 그 사람의 추종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계속 아무리 생각해도 몸에 맞지 않은 괴상한 사상을 쭉 주입시켰으니. 심지어 혓바닥에 새긴 문신은 자기가 봐도 너무 무섭고 섬뜩해서 칼로 도려내려 시도해도 지워지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말을 오래 하게 되면 쉿쉿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모든 말을 단답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갑작스럽게 납치가 된 것도, 교수들의 추측처럼 자신의 영혼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그 사람의 것을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문신에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가 자신밖에 없었기에. 또 다시 쉿쉿거리는 소리가 들릴까봐 단답으로 말을 하고, 주문은 아예 무언으로 해버리는 것도 어린 마음이 불러일으킨 불안함.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준 데이비슨 교수가 그 크고 두터운 손으로 단답벌레의 머리를 따뜻하게 토닥여줬다. 거의 14년만에 모든 일을 결착지었고 그 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권민과 춘식이 와다다 달려와서 단답벌레를 껴안아줬다. 발음은 몰라도 목청하나는 정말 좋은 두 친구들이 그 동안 맘고생 한 것을 몰라줘 미안하다고 거의 오열하다시피 하자, 단답벌레도 눈물은 찔끔 나왔지만 그 이상으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귀 아픔."
그러면서도 살짝 웃는 그 얼굴은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기에 안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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