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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린 직후에는 우스꽝스럽게도 무슨 외계인 따위가 운전하는 우주선이 제 머리 위로 착륙을 시도하는 줄 알았다. 유감스럽게도 조금 더 눈에 초점이 돌아오자 그것이 수술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조명이었다는 점을 다소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왜 제 팔다리를 비롯한 몸통에 단단한 결박이 되어있는 것일까? 정신 차린 소피아는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 몸 아래로 시선을 흘끗 돌리면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봄직한 수술용 침대가 있고, 그 주위로는 우주선 같은 조명에 섬뜩할 정도로 날이 잘 세워진 온갖 수술기구들이 어떤 또렷한 목적 의식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욱신거리는 머리로도 그 정도의 답안은 쉽게 제출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 귓가에는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가 규칙적인 신호음을 토해내는 사이.
자신이 수술 동의서를 분명 쓰지 않았음을 깨달은 소피아는 제 팔뚝을 걷어 올리는 손길과, 그 손길의 주인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뭐야, 이거… 깼잖아?"
"아, 들켰군요?"
그리 말하면서도 소피아는 너무나 태연하게 제 의체를 뜯을 기색이 역력했던 놈을 집어 던졌고, 그는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몸은 이미 전력 따위가 끊어진지 너무나 오래된 이 건물의 대체 전력에 정확히 날아가버렸다. 과연 시체털이범들이 사용하는 것 답게 안정성은 고려도 하지 않았는지 그 작은 충격에 곧바로 에너지탱크가 달린 발전기는 벼락같은 비명을 토해내버렸다.
삽시간에 벌어진 난장판, 그 탈출하는 사이에도 소피아는 제 소중한 물건을 잊지 않았다. 금발 머리카락마저도 완전히 뒤덮어버리는 복면과, 너무나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빨간색 하트 모양 파티용 선글라스. 드디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생각의 소피아가 중얼거렸다.
"오케이! 그럼 이제… 어떻게 나가지?"
오랫동안 철거 예정으로 방치되어버린 메가빌딩의 숨겨진 층. 그곳에서 도망치다보니 엉겁결에 구석에 몰리게 된 그는 뇌 한쪽에 자리한 인공두뇌가 마찬가지로 연결된 안구센서에 지상까지의 높이를 계산하고 알려주었다. 9m. 돌아갈 길은 아득히 멀고, 자신을 향해 죽일 듯 달려오는 스캐빈저들은 가깝기에 소피아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몸을 아래로 던졌다.
저 위에서 쫓아 내려가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지만, 소피아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급한 마음에 몸이 먼저 뛰어버렸고 한없이 추락하는 자신의 몸은 이제 의지할 것이라곤 낡아빠진 콘크리트 벽 안에 밀어넣은 제 손 밖에 없었으니까. 그저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 반탄력으로 인해 중간에 몸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갈퀴처럼 벽을 긁어대는 통에 튼튼한 가죽장갑은 물론, 그것이 품고 있던 인조 피부마저 전부 벗겨지고 남은 자리는 기어 따위가 움직이는 것이 작게나마 들리는, 그런 정교한 손이다.
"음, 박사님께 부탁드려야겠군요! 새우튀김 님이 이번에는 제발 쇠파이프를 안 던졌음 좋겠습니다!"
저 위에서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퀭하고 피곤한 얼굴의 조수를 떠올리자 소피아는 저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결코 과학자답지 않은 성정의 그는 자신이 몰래 물건들을 빌리는 것을 보면 늘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화를 내는데 그것이 소피아에게는 다소 웃겼던 탓이다.
그러나 당장 그에게 문제는 다시금 닥쳐온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는데는 성공했지만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던 탓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여기서 어벙하게 있으면 무리해서 번 시간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게다가 자신은 단순히 여기서 탈출만한다고 전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폐건물 곳곳에 늘어진 혼잡한 폐기물 덩어리 사이로 몸을 숨긴 소피아는 어째서 자신이 이 사단이 되었는가를 다시 곰곰히 생각했고 곧 만악의 근원을 입에 올렸다.
"부정형인간, 이 나쁜 인간아! 돌아가면 두고보자!"
소피아의 이러한 대탈출이 어떤 내막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조금 시간을 돌리자면, XX서 형사 1과의 형사 둘과 안드로이드 하나는 팀장에게 다소 당혹스러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악명 높은 스캐빈저 집단. 죽은 사람의 의체는 당연하고 때때로 산 사람도 거리낌없이 납치해 간다는, 그런 미친 자들에게 같은 팀원인 경찰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라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납치되었다는 당사자의 이름을 들은 순간 그들은 모두 이해보다도 납득을 해버리고 말았다.
경위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경사 노스페라투 호드는 자신들이 겪어온 그를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부정형인간 그 친구도 액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캘리칼리가 여전히 피자를 사랑하는 한 안드로이드를 떠올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부정형인간, 이번에 엎어졌다고, 병원 갔습니다. 골절, 이랬습니다."
"…다만, 납치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프로파일러 타입의 안드로이드, 카르나르 융터르가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말하자 팀장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엎어져도 골절인 수준의 그가 들린 병원이 알고보니 스캐빈저가 만만한 피해자를 노리고 만든 곳인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평소 이런 일이 있을 것 같다며 부정형인간은 납치된 직후 자신의 위치를 GPS 신호로 전달했고 아직은 살아있다는 점이 그나마 몇 안되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다만 그가 납치를 왜 당해야 했는지 의문이었던 융터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의문점이 있습니다. 부정형인간 님은 신체개조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됩니다. 스캐빈저들이 왜 그의 몸을 노리는 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글쎄다… 요새 트렌드가 또 오가닉이시란다." 팀장이 검지를 치켜들어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부정형인간은 졸지에 타의적으로 장기기증을 하게 생긴 마당이지만, 그 악명 높은 집단은 자신들의 근거지가 경찰들에 의해 발각되는 경우에는 그 규모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거리낌없이 버리고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쉽사리 덮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거에 쓸어버릴 목적으로 증원을 해오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을 모으는 사이에 부정형인간이 부정형인간이었던 것으로 바뀐다면?
답은 간단했다. 민첩하게 잠입해서 놈들에게서 부정형인간을 빼오는 수 밖에.
"게다가 우리 셋은 잠입 임무는 영 꽝인데 말이지."
캘리칼리가 제 수염을 슬슬 긁으며 말했다. 탈인간적인 덩치인 두 사람은 그 덩치로 몰래 숨어다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안드로이드의 경우에는 본래 목적부터가 프로파일링인 만큼 잠입을 한 만큼의 섬세하게 움직이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차라리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모를까.
일단은 방법을 모색해보겠다며 팀장은 먼저 자리를 떴고, 그의 눈치를 살펴보는 기색의 융터르가 슬쩍 입을 열었다.
"실은, 현재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소피아 말인가?"
그가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캘리칼리가 한숨을 쉬었다. 기이할 정도로 유연한데다 소리없이 훔치는 그 잠입실력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 되는 점이 그들에게 공통으로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이런 것을 의미할 지 모른다.
그들은 약간의 시간도 허비할 수 없었기에, 문제의 브로커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도파민 박사 연구소로 향했고 곧 이유는 모르지만 연구소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하쿠와 놀아주고 있는 당사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늘 함께하는, 다금바리버거 세트가 다 먹고 난 흔적만이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저 이번엔 아무것도 안 훔쳤습니다! …아마도?"
"아마도가 도대체 뭔 소린가. 아무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믿기진 않지만, 자네 도움이 필요해."
캘리칼리의 한숨 섞인 말에 소피아는 선명한 파란 눈을 좌우로 굴리고는 말했다.
"맨 입으로요?"
"…저번에 훔쳐간 내 지갑 속의 돈."
악다문 이 사이로 피가 흐를 것 같은 목소리로 경위가 으르렁거리며 그와 있었던 옛 악연을 입에 올리자 소피아의 얼굴은 태연하지만 그 양 어깨는 움찔하는 것이 전부 드러나버렸고, 그것으로 그의 일감이 강제적으로 생겨버린 것이다. 사전에 위치 정보라던가 적들의 습성 이런 것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비록 복면때문에 실제로 혀를 내밀 수는 없어도-였지만.
복면 아래 그 얼굴이 심히 불만족스러움을 알아차린 경사가 툭 내뱉듯 말했다.
"최근에 저지른 당신 범죄, 전부 모른 척 해주겠습니다— 어?"
"음, 호드 님께서 말씀하시기 무섭게 바로 가버리셨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손가락질 하는 끝에는 이미 강화된 다리를 연거푸 움직여 저 멀리 뛰어가는 브로커의 뒷통수가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소피아는 자신이 어쩌면 큰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일단 무작정 뛰어내리는 것보다도 보다 위에 있으면 적어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지 않겠냐는. 그러나 굳이 청각이 강화되지 않았어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복면 새끼 잡아라 따위의 소리는 결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 어디보자. 그 양반이 지금—"
운이 좋다면, 과감한 점프(?)가 오히려 지름길을 뚫은 셈이었다. GPS 신호가 더욱 가까운 것을 HUD 상으로 확인 한 소피아는 최대한 직선거리로 거듭 달렸다…가 거듭 멈췄다.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혼재되어있는 메가빌딩 특성상 멀쩡하게 제 역할을 할 때도 미로 같건만, 거대한 폐허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전뇌의 보조적인 도움이 없으면 평생토록 그 안에서 영원히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무턱대고 신호만 쫓아 간다고 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확인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주객전도가 되는 행동일 수 밖에 없었다.
"아잇 이 거지같은 빌딩! 어디 제대로 터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스캐빈저들이 없으면 뛰고, 있으면 조용히 걷는 것을 반복하며 소피아는 부정형인간의 GPS 신호가 점차 강해지는 곳을 따라 몸을 숨기고 드러내기를 거듭하며 이동하는 동안, 그는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분명 자신이 정신을 차린 정황을 생각하면 수술실은 제법 높은 층에 있는데 사람은 지하에 보관(?)을 한다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터운 문을 열고 창문 하나 없는 문제의 감금장소에 도착하자 얼핏 생각하면 비합리적인 방식이 나름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얼굴에 서리가 낀 채로 냉동형 생명유지장치에 겨우 목숨만 유지한 채 누워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언제든지 적출해서 팔아치울 수 있는 의체와 달리, 장기는 보관이 극도로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굳이 보존액이나 별도의 케이스에 담아 보관하는 것보다도 통째로 보관하는 것이 가장 편한 법이다.
소피아는 스스로 그런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을 한 것에 잠시 소름끼쳐하며 유지장치의 전원을 종료하고는 그 속의 사람이 눈 뜨기만을 기다렸다. 창고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인지는 몰라도 다른 곳에 비해 천장이 제법 높게 설계되어있고, 그 위를 대들보마냥 빔이 몇 개 정도인가 설치된 것을 소피아가 세면서 기다릴 무렵.
그 기대는 곧 보상을 받았다. 피곤에 전 눈이 끔뻑거리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소피아의 부축으로 부정형인간의 몸이 캡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으아, 여긴…?"
"아, 깨셨습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 몸 다 뜯어서 팔려고 한 사람들에게 동태가 되었다가 겨우 정신 차린 겁니다. 아 그리고 저는 선량한 시민이자 브로커인, 소피아입니다."
"에? 아니 어떻게 브로커가 선량하고—"
영문을 몰라하는 부정형인간이지만 소피아에게는 상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운이 나쁠 뿐이지 눈치를 아주 날려버리지는 않은 경찰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조금씩 되짚다보니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대충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것보다도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구하러 오신 건 맞습니까?"
"아하! 그건… 저도 잡혀왔습니다! 물론 구하러요!"
명백히 어울리지 않지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린 모양새는 인질이 되어버린 경찰이 안간힘을 끌어올려 구축하려던 신뢰도를 와장창 무너트리게 되었다. 과연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미심쩍어하는 감정이 피해자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복면으로 제 얼굴을 뒤집어 쓴 브로커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제 굳은 몸을 연신 푸는 부정형인간을 바라보았다.
"음?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 잡혀오셨다는게…."
"아아! 다른 건 아닙니다. 전파방해장치 때문에 탐색이 어려웠는데 요 건물에 당신 GPS 신호가 잡히길래 어물정거리다가 잡혔던 것 뿐입니다. 자! 그럼 이제 출구를 찾아볼까요? 으랏차!"
상황과 맞지 않은 기합성이 소피아의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이미 소피아라는 남자에게 기대할 것이라고는 좁쌀만큼도 남지 않은 부정형인간은 대놓고 한숨을 쉬고 말았다. 과연 자신은 무사히 탈출 할 수 있을까, 이 남자를 믿을 수 있을까. 아직도 몸에서 냉동유지장치의 한기가 사라지지 않아 오들오들 떨리는 부정형인간은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자신이 기절한 채 갇혀있던 냉동유지장치 캡슐이 비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안 경찰은, 거의 본능적인 습관처럼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만약 무사히 탈출하기만 한다면, 분명 유용한 수사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전뇌에 별도로 마련된 메모리에 충실히 적어놓던 부정형인간은 제 입 사이로 얼빠진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뭐하십니까?"
"뭐긴요! 지금 문 따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들어왔던 곳은 이미 놈들이 쫓아오고 있을 테니까 이젠 뒷문으로 가야죠!"
"…그렇게요?"
부정형인간의 피곤한 눈이 갸름하게 좁혀졌다. 소피아가 제 인조피부가 완전히 벗겨진 금속성 의체를 아주 조심스럽게 열쇠구멍에 찌르는것이 문을 따고 있는 것이라니.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곧 구식 비전자화 자물쇠는 철컥 소리를 내며 소피아의 행동이 마냥 덧없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지적할 건덕지는 되지 않음을 알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싶었더니 곧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소피아의 이상할 정도로 길쭉했던 검지가 점차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능숙하게 하는 것이 하루이틀 한 것이 아니구나, 부정형인간이 그리 생각하고 있으려니 소피아가 그 생각을 곧장 읽은 듯 말했다.
"요새 이런 아날로그 타입의 자물쇠 쓰는 곳이 거의 드문데 말입니다. 역시 다 망해버린 건물답게 뭐든 다 구식이군요! 얼른 갑시다!"
그러나 소피아의 이런 자신만만한 말은 불과 십여분이 지나자 더는 나오지 않았다.
조금의 안정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체 곳곳이 개조되어, 결코 멀쩡한 인상이라고는 하나 남지 않은 자들이 바락바락 복면 새끼가 어디에 있느냐고 소리를 질러댈 때 부정형인간은 얼결에 소피아를 올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풍기는 탄내에 어울리게도 몸 곳곳이 그을린 시체털이범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그가 묻기도 전, 자칭 선량한 시민은 순순히 답해주었다.
"어, 제 몸을 뜯어가려고 해서 저는 정당방위로 아주 약간의 저항을 했는데 그게 발전기에 부딪치고는 터졌습니다."
"…."
"솔직히 말해서 저 놈들 물건을 털어도 볼까 했는데, 워낙 개털이라서 그런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나가는데 집중합시다."
만약 구미가 당겼다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계속 장도리나 빠루가 몸에서 튀어나오는 소피아가 몸을 숨긴 자리에 접근해오는 놈들의 뒤통수 따위를 하나하나 차근히 깨부수고는 답했다. 뼈 따위가 상상하기도 싫은 강도로 박살나는 소리는 섬뜩했다.
그런 와중이었기에 차마 구미가 당겼을 경우 어떤 행동까지 하는지는 차마 듣고 싶지는 않던 부정형인간은 여전히 통신방해장치 때문에 경찰에 연락할 수 없는 것이 사뭇 한탄스러웠다. 어쩌면 탈출하지도 못하고—
"지금 이름값 하십니까? 벌써부터 죽는 것 부터 생각하시는 티 다 납니다?"
그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 얼굴을 복면으로 꼼꼼하게 뒤집어 쓴 주제에 빨간색의 파티용 하트 선글라스로 이목을 끌어버리는 그 코디가 경찰의 면전에 갑작스럽게도 쑥 들이 밀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전에 곧바로 속마음을 읽어버린 소피아는 선명하게 파란 눈이 경찰을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형인간도 할 말은 있었다.
"아, 아니이… 주위 보면 금방이라도 죽게 생겼단 말입니다…. 저기 보십쇼. 당장에 저 갇혀있던 그 캡슐용 액체질소가 무분별하게 늘어져있잖습니까."
"액체질소요?"
"저거 아무런 조치 없이 건드리면 조금만 닿아도 금방 얼어버린다구요…."
심지어 기화되는 동안 질소 함량이 높아져 산소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결코 부정형인간이 부정적인 망상증에 시달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하였기에 끝으로 갈 수록 거의 추긍하듯 말했다. 요컨대 소피아의 잘못된 행동으로 얼어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그 질문. 그러나 소피아는 그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저희만 살아있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에?"
소피아의 황당무계한 말에 부정형인간이 눈을 처음으로 동그랗게 뜨고는 그 위험성을 아느냐며 오히려 반대를 하려 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며 놈들 성정상 곱게(?) 보내주지 않을 것임을 알지 않느냐는, 소피아의 놀라울 정도의 정론에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성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삼고 물고 뜯는 것이 일상적인 지금, 놈들은 하물며 범죄자였고 그 강도에 따라서는 즉결처분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새삼 놀라울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부정형인간이 차마 그런 정론에도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캘리칼리 데이비슨과 노스페라투 호드처럼 현장에서 뒹구는 스타일이 아닌, 내근직인 탓이 컸다.
"아으 진짜…."
경찰이 망설이는 얼굴을 하고 있자, 브로커는 자신만 믿으라며 예의 다시금 엄지를 추켜 올렸지만 금속성 의수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때문에 그는 여전히 우려를 표하는 부정형인간에게 다시금 말했다.
"뭐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절대 숨어있는 곳에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니 그럼 그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요?"
"그 땐 나가시면 됩니다."
폐허 곳곳의 짙은 그림자 속에 부정형인간의 모습이 거의 감추어진 것을 확인 한 소피아의 모습은 마치 어디 잠깐 외출이라도 갔다 오겠다는 듯 엄지까지 치켜들어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하였고, 그 모습이 반대로 부정형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스캐빈저들은 오늘 날 잡았다며 이를 득득 갈았다. 몸의 70%가 넘도록 의체로 강화한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자신들의 아지트 앞에서 어벙하게 굴던 남자. 어차피 벗겨서 팔아치울 예정이기에 이름도 딱히 관심없지만 낚아올렸을 적부터 인상적이었던 복면 때문에라도, 그들은 소피아를 복면새끼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복면새끼가 한 짓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동료를 개조된 발전기에 냅다 집어던져 폭발을 일으켜 수술실의 태반을 사용할 수 없게 망가트리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동료들을 그렇게 잃어버리게 만든 것이다. 다만 그렇게 일을 저질러놓고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탈출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색하는 인원들에게 신빙성 있는 목격담을 만들어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여 그들은 이제 지금까지 봐온 부분을 추리고 추려내 문제의 복면이 지하의 캡슐 저장 구역에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일부만 갔다가는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두가 그 문 앞에서 진을 치다시피 하였다.
"웃기는 새끼일세. 거긴 환기도 안 되는데."
"아예 거기다 집어 쳐넣죠?"
"확 얼려버리자고?"
"근데 거긴 어떻게 들어간거지?"
한 사람인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의견을 냈지만 이미 머리가 꼭지 째로 돌아버린 놈들의 귀에는 그런 지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들의 머릿속에서 그 복면 남자는 저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을 것이며, 그런 그를 어떻게든 사로잡아 캡슐에 집어넣으면 된다는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은 일명 캡슐방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매는 티가 역력한 복면을 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있는 캡슐을 낑낑거리며 옮기라도 했는지, 먼 거리에서도 복면 위로 땀이 얼룩덜룩하게 묻어 나오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런 복면이 정말 난처하다는 듯 비명같은 말을 내뱉었다.
"아! 준비 덜 되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엉?"
"에잇!"
이상할 정도로 유연하고 날랜 그 몸이 문으로 다가기에 스캐빈저들은 일제히 그가 문을 열고 도망치려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 손에 들려있던 장도리의 묵직한 해머부분이 잠금장치를 강하게 때렸고, 이 영문 모를 상황에 어벙해진 그들 중 한 놈의 품에서 복면은 능숙하게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오케이! 이걸로 준비 끝!"
얼이 빠져 멍청하게 서있는 스캐빈저들은 소피아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 것인지 몰랐다. 그저 나가지 못한 자의 발버둥 정도로 이해하던 그들은 창고 천장을 가로지른 빔에 뭔가 낚싯줄 같은 것이 툭 걸리는 것을 보았다. 그 끝을 따라가면, 소피아의 의수가 그것을 발사했는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작은 구멍에서 그 합금실이 튀어나온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무슨 준비인가, 그들이 채 되묻기도 전이다.
작게 휙 감기는 소리가 들리며 소피아의 몸이 쏜살같이 위로 향하고, 그 대신 남은 것은 그가 발사한 단 한 발의 총알이었다. 누군가가 비명지르듯 안돼!! 하고 외쳤지만 캡슐이 일제히 터지고 그 안에 보관 중이던 액화질소가 삽시간에 바깥공기를 만나는 것도 모두 한 순간이다.
귓전을 울리는 굉음과 그에 못지 않은 진동. 낡아빠진 건물이 무너지는데에 충분할 정도였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서있는지도 모르고, 부정형인간은 냅다 빛이 보이는 바깥으로 달음박질을 해야 했으며 벌써 숨이 차 헥헥대는 그의 귀에는 어느 새 다시금 가까이 온 소피아가 같이 발을 맞춰 뛰고 있었다.
"이 인간아! 그러다 죽어요!"
그리고 유감스러웠지만 그것이 입원실 천장을 대신한 형사 1과 동료들에게 말해줄 수 있던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황상 소피아가 부정형인간의 탈출까지 도운 것은 확실하나, 그 당사자는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쩔쩔맬 무렵. 그 환자의 핸드폰이 갑자기 문자가 왔다며 알림을 보내왔다.
평소의 식습관을 생각하면 절대 관련없을 패스트푸드 전문점에서의 결제알림에, 부정형인간이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다금바리버거 세트? 이거 왜 제 카드로 결제 되었습니까?"
"그거 아무래도 자네 목숨값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보구만."
경위의 말마따나, 곧 그 핸드폰으로 다시금 빌린 카드는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발신인 불명의 문자메시지가 온 것을 확인하며 부정형인간은 차마 입으로 내뱉지도 못하고 속으로 제 생각을 질끈 삼켰다. 당신과 또 만나면 그 때는 지구가 멸망할 징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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