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터르님 가지고 싸우는 씬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이미 세뇌라는 기깔나게 오지는 걸 들고 있으면서 주먹질을 할 이유는 없겠다 싶더라구요.
*근데 세뇌원툴맨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는 그냥 고로시도 있으니까 그냥 당하기엔 매운 인질 역할도 한다 칩시다.
노스페라투 호드는 착지한 이후 한눈에 들어오는 주변 상황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는 둘째치고, 저기 누워있는 동일한 얼굴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기절시켜서 끌고 온 '두번째'의 분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굳은 피가 이마를 적신 채로 자신을 여유만만한 웃음과 함께 올려다보는 카르나르 융터르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등 뒤로 제껴진 손목에 케이블 타이같은 것이 손목에 꽉 조여진 채로 앉아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인질로서 납치되었다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호드는 머리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참 영웅다운 등장이라는 생각에 피식거렸다. 그야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바닥을 뚫고 들어오면서 비치는 역광이 그의 근육을 한껏 도드라지게 만들어주었고, 잘게 펄럭거리는 망토는 그를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화가 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아마 본인도 미처 깨닫고 있지는 못한 듯 손에 스파크가 파지직 하고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화났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호드가 융터르의 케이블 타이를 끊었다. 묶여있던 손목이 피가 통하지 않아 벌겋게 부풀어있는 모습이 이 꼴이 된지 몇 시간은 충분히 된 듯 했다. 자신이 안 오면 어떻게 하려고 이다지도 무모하게 행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캘리칼리와는 다른 과로 계획적인 사람이기에 아마도 호드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이랬으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발자국 먼저 앞서서, 이제야 감각이 돌아왔는지 양 손을 연거푸 쥐었다 폈다 하는 융터르를 노려보는 또 다른 괴인을 노려보았다.
융터르의 손목이 겨우 자유로워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특유의 저릿저릿한 느낌과 함께 손가락 끝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호드의 널찍한 등이 자신의 앞을 가로 막아주는 것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납치 당했던 것은 반쯤은 의도했던 것이긴 하지만, 아마도 자신을 대책없이 무모한 사람으로 이미 확정지은 것이 아닐까 하며.
"괜찮으십니까?" 호드가 어깨 너머로 물어봤다.
"네, 납치범 치고는 참 젠틀하더군요." 융터르는 아직도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십니까?"
"같이 대화 나눠보니까... 음, 뭐. 참 웃긴 사람이라. 하하."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낀 것인지 지면 파괴의 여파로 한참은 뒤로 물러나있던 세번째가 책상 위에 붙어있던 크고 빨간색이 인상적인 버튼을 눌렀다. 무슨 버튼인지 의아해 하는 두 사람은 곧 이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두 분신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실험, 안 끝났지만.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발악이라고 해드리면 됩니까?"
초인이고 자시고 간에 이제와서 일반적인 사람인 척 하는 세번째가 너무 우스워, 융터르는 아직도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웃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탐구욕이고 뭐고 알게 뭔가. 그걸 핑계로 사람을 죽이고는 초인이 되겠다고 하는데, 애당초 그런 사람들을 초인이라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회적인 규칙을 떠올린 것이다. 실제로 초인은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주는, 지금 자신 옆에 있는 바보같이 우직한 친구를 말하는 것인데. 그는 은근슬쩍 귀를 가리키며 호드를 지나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긴장한 호드가 귀를 막기 위해 손을 천천히 올렸다.
한껏 불순한 의도로 유쾌해진 융터르의 목소리가 하수도에 메아리 쳤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을 보니, 참으로 죽이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참... 징그럽게도 보이는군요."
"그, 런..."
세번째의 눈이 당황으로 한껏 젖어있다가 이내 곧 흐리멍텅하게 바뀌었다. 다른 두 분신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듯이 바라보는가 싶더니 호드마저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지독한 삼파전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동일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탓인지 누가 공격하고 누가 방어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갑갑한 지하공간에 먼지가 자욱하게 끼는 것을 보고 호드는 인질을 옆구리에 낀 채 공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며 도로 지상 위로 올라왔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던 융터르가 휘청거리며 땅을 밟고는 지하와 비교도 안되는 공기를 여러 번 찬찬히 마셨다. 호드는 그런 그가 마뜩찮아, 아직도 들려오는 지하의 소리를 한껏 무시하려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까?" 어눌한 말투도 사라진 것이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음. 최선의 수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융터르의 얼굴에서도 순식간에 웃음기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서로를 죽고 죽이게 하는 것이?" 호드는 그를 폐허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 공허한 웃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이어서 말하는 심리상담가의 표정은 씁쓸하게 변해버린지 오래였다. 융터르는 자신의 계획을 이제서야 호드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동의도 없었던 그 계획을.
마지막 현장답사 현장이었던 분신 능력자의 사건 발생 장소까지 다녀왔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을 수도. 어쨌든 범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흔적을 뒤쫓아 오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특히 그러모은 정보를 히어로에게 전달한다고 떠벌리고 다닌 자인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곧 납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무력도 없는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초인적인 청각을 가진 호드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게끔 하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세뇌를 사용해서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저 괴인이 분신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건 처음에 가장 큰 효과를 보니까요."
"그래서 계속, 그렇게 떠들어댔었습니까? 날 유인하려고?"
"압니다. 매우 시끄러웠겠죠."
"그렇습니다." '두번째'라 자칭한 괴인에게서 정보를 얻기도 전에 유독 쾌활하다는 듯 떠들어대던 상담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이가 없었던 호드가 끄덕거리면서 답했다. 그게 다 자신을 끌어오기 위한 계획이었다니. 무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호드가 보는 앞에서 서로를 죽이라는 세뇌를 건 것도, 융터르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게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앗으려 덤빌 것이니까. 호드는 그의 입장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살짝 질렸다는 얼굴로 그 말에 툭 내뱉었다.
"자기 자신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건, 계획이 아닙니다."
"이런, 앞으로는 주의하죠." 씁쓸하게 웃는 상담사가 뒤통수를 생각없이 더듬었다가 혹이 크게 났는지 살짝 움찔거렸다.
"빨리 병원에, 가보십시오."
호드는 상담사의 과격하고도 무모한 행동에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아, 그리 툭 말하고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아마도 자신의 집이 아닐까.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쓰게 웃고는 천천히 다시 상담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하수도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 한 형사의 이름을 되뇌고 있음을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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