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 편은 더 멋지게 써보려고 했는데 막상 창작의 영역은 이를 어림도 없다며 철저한 블로킹을 멕여버리네요.
*그래도 세 아저씨들이 같이 싸우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같은 날 밤. 아직도 폭탄 테러의 영향이 짙게 남은 탓에,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폐허가 된 집에서 적당히 멀쩡한 것만 추려내고는 융터르의 상담실에서 당분간 살기로 주인의 동의 없이 결정했다. 당연히 카르나르 융터르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캘리칼리는 지난 번 방문 때 눈독들였던 카우치 소파에 벌렁 드러눕고는 가져왔던 이불까지 덮으며 만족한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역시 사람은 푹신푹신한데서 자야지. 그... 나이가 있으니 딱딱한데서 자는게 참 괴롭구만."
"이... 소파는 취침용이 아닙니다만. 캘리칼리 님." 머리맡에서 그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자네 집에서 같이 생활이란 걸 좀 해볼까?" 그가 고개만 슬쩍 들어 자신을 내려다 보는 집주인과 눈을 마주쳤다.
"... 아뇨, 차라리 여기서 당분간 계시는 것이 낫겠군요."
실없는 소리에 두 사람은 실실 웃었다. 긴장감을 억지로 지워내려고 하는 모습이 서로에게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감고 있던 캘리칼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상반신을 슬쩍 일으켰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창백하고도 푸른빛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아내고 있는 융터르의 얼굴이 정확하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어쩐지 음침해보인달까, 뭔가 꿍꿍이가 있어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당장 묻기에는 어쩐지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형사는 애써 뒤척이며 다시 잠을 청하려 하였다.
싱숭생숭한 상태로 잠에서 깬 그는, 7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서 알람을 끄고 도대체 잠은 잔건가 싶은 융터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사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대충 마른 세수를 하며 그가 결국 밤사이에 있었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제 밤 말인데, 뭘 한건가? 도대체."
"... 글쎄요. 일단 그 놈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덤벼오면 곤란하겠다 싶어서..."
"싶어서?" 말을 흐릿하게 마치는 것을 안 좋아하는 캘리칼리가 조급한 마음에 따라 말했다.
"뭐, 놈을 찾고 있었다. 이 정도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딱히 숨길 것도 아니었는지, 상담사는 형사에게 자신이 밤새도록 노려보았던 모니터를 형사가 보기 편하게 돌려주었다. 이 근방을 기준으로 하는 모든 각양각색의 지역 커뮤니티였다. 괴인 출현이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제법 관련 글들이 많았지만 정확히 어디서 봤다는 내용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는 모양새만 봐서는 CCTV를 해킹해서 볼 줄 알았더니, 라며 캘리칼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용케 들은 융터르는 쓰게 웃으면서 "제가 컴퓨터 기술이란 것을 잘 몰라서 이게 최선이군요." 라고 답했다.
가장 머리를 쓰는 사람이 컴퓨터를 자신보다도 잘 모르면 어떻게 하냐며 캘리칼리가 놀리고 난 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제법 진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노크 소리가 울려퍼졌다. 노스페라투 호드가 문 너머에서 캘리칼리가 문을 열어줬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부터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지난 번의 경험으로 아예 처음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자에게 건네준 뒤, 융터르가 입을 열었다.
"제가 만약 그 괴인이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고민을 좀 해보았습니다. 기반이 될 시설을 비롯해 완전히 파괴가 된 상황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무엇을 할까, 라고."
"우월한 사람... 이 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호드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융터르가 캘리칼리를 바라보았다. 형사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읊조리듯 말했다. "그래, 나를 노리려고 무슨 수든 쓸 지도 모른다, 이건가?"
착잡한 얼굴로 경찰서에 돌아온 캘리칼리는 지역 CCTV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홀린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놈이 이제 하수도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이상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어떤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자 습격하듯 들이닥친 그의 태도에 담당 경찰들은 당황하면서도 일단은 그에게 말대꾸하는 것이 무서워 순순히 경장의 말에 따랐다. 곧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지난 하루치의 영상을 살펴보는 그의 눈이 시뻘개질 정도였다.
뜬금없이 왠 CCTV냐고 동료들이 물어봤지만 그는 그에 대답할 신경도 없어서 그냥 감이 이상해서 보는거라며 에둘러 말하며 보내고는 하였다. 그렇게 눈을 비비고, 커피를 마셔가면서 모니터와 씨름한지 3시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그는 간만에 그 특유의 송곳니까지 다 드러나는 웃음을 지었다.
"잡았다 요놈."
대형 백화점 근처에 설치되어있는 카메라 속에서 전에 없이 추레한 차림의, 호드와 융터르가 설명한 그대로의 괴인이 작게 찍혀있었다.
살기 등등한 기세로 백화점 근처를 샅샅이 훑어본 경장은 상당히 외진 구석에서 오도카니 앉아있는 괴인을 볼 수 있었다. 멀찍이서 살펴본 그는 그저 무기력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당당하게 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이."
"너." 괴인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캘리칼리는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구면이지 않나? 이제서야 그 못생긴 얼굴을 보는구만. 뭐-어... 이번에는 내 쪽에서 찾아온거긴 한데 말이지."
능글맞게 웃음기를 띄웠다지만, 그 이면에는 괴인이 함부로 힘을 휘두르지 못하게 만들도록 하는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그의 그림자에 가려진 괴인을 내려다 본 캘리칼리는 상대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내 머리통을 따고 싶어라 한다는 것 쯤은 이미 잘 알고 있고, 또 내 친구가 날아다니는 것도 무척 부러워한다고 들었거든. 제안이나 하나 하지. 오늘 밤 9시에, 장소는 자네가 원하는 곳으로 잡아서 일생일대의 단판 승부를 벌여보자고."
"왜?"
"왜긴 왜겠나? 자네같은 맛이 간 놈이 또 사고치지 못하게, 여기서 땡. 이제 그만~ 이라는 소리지. 어떤가?"
"노스페라투 호드에게 전해. 그때 그 장소라고."
괴인은 그 말만 하고서는 인파 속으로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걸 저희 동의도 없이 저지르셨다고요?" 융터르의 미간이 크게 주름지고
"캘리칼리 님, 은근, 막 나가십니다." 호드는 한탄하는 어조로 한 마디 덧붙였다.
"뭐 별수 있나? 지난 행적들을 다 들어보니깐 말이야... 우연인지는 몰라도 한 번씩은 미끼 노릇을 자청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종목을 바꿔서 단체전으로 한 번 해보자고. 우리."
다시 융터르의 상담실에 모인 세 사람은 캘리칼리의 그 일방적인 결투신청에 당황해하면서도 추가적인 피해가 더는 생기지 않게끔 틀어막은 것에 내심 안도를 했다. 이제 자신들만 잘하면 되리라. 카우치 소파에 몸을 한껏 늘어져라 누워있던 캘리칼리가 문득 호드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이 호두, '그때 그 장소'라는게 대체 뭐냐?"
"오."
호드는 자신이 괴인과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의 일을 설명했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비포장도로가 있는 곳에서 습격당한 사람과 그 때의 일을. 침착하게 듣던 캘리칼리가 한 대목에서 당황한 마음에 말을 끊었다.
"뭐야. 그 놈이 원본이 아니었어?"
"그렇습니다. 캘리칼리 님과 저를 가장 먼저 습격한 것이, 원본 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널을 '두번째' 라는 놈이 죽였고... 이걸 개족보라고 불러야 하나?"
캘리칼리는 머리를 북북 긁고나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때까지 조용히 생각하던 융터르가 문득 시계를 바라보고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던 두 사람에게 시간이 되어가니 일어나자고 말하면서 덧붙였다.
"뭐, 별 수 있겠습니까? 두 분은 싸우는데 일가견이 있으니 잘 하시지 않겠습니까?"
"자네는 어쩌려고 그러나?"
"맞습니다. 융터르 님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흠....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지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는 그는 뭔가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먼저 앞서나가는 융터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두 사람은 우리 중에서 가장 막장인 놈이 저 놈아니냐며 잠시 속삭인 뒤 뒤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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