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9편에 걸쳤던 이른바 '사이비교단 편'이 끝났습니다.
*본래는 생각나는데로 옴니버스 식으로 연재를 하자! 라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어렵네요.
*한 편이 끝났으니 이제 다른 편을 시작해야 한다는 깨달음과 함께 아저씨 히어로즈들은 새로운 사건을 마주합니다.
*삼자대면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 에피소드가 종료되는 마무리, 라고 생각해주시믄 감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시작을 캘리칼리 데이비슨 님으로 한번 열어보도록 합지요.
세상 어떤 직장이 안 그렇겠냐만, 요새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좀처럼 쉴 틈이 없다는 사실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토요일 아침에 처음으로 방문(이라기보다는 들이닥친)해 본 그 상담실에서의 수다 이후로 남는 시간은 전부 잠에 쏟아 붓는다 한들 턱없이 모자를 지경이었다. 그의 들불처럼 번지는 졸음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이 이 지긋지긋한 서류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최근들어, 그 뿐만 아니라 경찰 단위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자칭 자경단이라는 놈들이 벌이는 문제의 뒷처리였다. 그 자경단 중 한 명인 카르나르 융터르야 본인이 정해놓은 규칙을 칼같이 지키기도 했고, 또 그 대상도 누가 보더라도 정말 나쁜 놈들만을 대상으로 했으니 수사대상까지 바로 올라가진 않을 것이다. 노스페라투 호드는 세간에서 히어로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경찰의 시점에서는 일개 자경단으로 취급받는 상황.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찰서 입구가 발칵 열리더니 또 한 놈이 동료 형사에게 귀를 잡힌 채 "아, 놔요 좀 놓으라고! 귀 찢어진단 말야!" 바락바락 대들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던 캘리칼리의 귓가로 범죄자를 인솔하는 형사와 다른 동료가 가볍게 나누는 대화가 스며들었다.
"또냐?"
"어, 또다. 자칭 '학교폭력 대책 테러단' 소속이랍신다."
"어? 옷 입은거 뭐냐? 교복?? 야 이거 싹수가 아주 노랗다. 응? 싯노오랗다. 아주 이거. 부모님 불러야겠네."
듣자니 어떤 능력을 본인이 깨우친 것은 아니고 깨우친 사람 밑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네이밍 센스는 저게 또 뭐야 대체. 거의 사나흘에 한 번꼴로 저런 놈들이 잡혀오는 것도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잡혀온 이들 중 9할 9푼이 넘는 비중으로 비능력자였고, 진짜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어설프게 다루다가 오히려 주위에 해를 끼치는 민폐덩어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아아... 현장에서 뛰고 싶다."
불쑥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 때 그 사이비교단의 잔당을 혼자서 토벌했다고 상부에서는 상(이라기보다는 벌)을 내렸는데, 그것이 첫째로 당분간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현장에 출동하는 것 금지였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정시퇴근. 주위에서는 부럽다며 난리였지만 그 반응을 그는 무시했다.
그렇게 쓸쓸하게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던 길, 겨울답게 6시 반이 되었는데도 해가 벌써 지는 바람에 주황빛 백열등이 박혀있는 가로등이 골목마다 온기 없는 빛을 비추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추위를 느끼던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평소 입던 무스탕에서 롱패딩을 장만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떤 불길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몸은 감추고 있어도 시선은 그렇지 않다는 듯, 형사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느낌을 받는 것이 영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을 가릴지 언정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서로 마주보기도 편하고 얼마나 좋은데! 이런 식으로 에워싼다 한들 자신을 잡을 생각인가?
"니들 뭔 레이드 하냐? 종목은... 어디보자-아... 눈빛으로 사람 태워죽이기?"
"캘리칼리 데이비슨. 형사. 본인 맞나?"
"어디서 싸가지없게 오프닝을 목소리 변조로 여시나. 아앙?"
캘리칼리의 눈썹 사이가 좁아지면서 그 눈썹 끝이 치켜올라, 그의 능글맞았던 인상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겠다. 하지만 영향력은 행사하겠다.' 그런 오만함이 가득한 태도에 천성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던 형사이기에. 심지어 추궁하는 어조이기까지 하니 자연스럽게 형사는 추위로 굳어있던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면서 슬슬 풀고 있었다. 이 모든 감정을 간단히 축약하자면, 그는 저 놈들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의 목소리 변조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자가 대표였는지 그에게 본인이 맞는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었다. 그 지독한 기계음 때문에 인간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인지 아닌지는 경찰서에 얼굴만 비춰줘도 친절하게 알려줄 텐데 말이야. 한번 보러 오시라고."
"잡아."
최근 들어 부쩍 예민해진 감각이 그에게 당장 피하라는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고 남은 자리에는 제법 단단한 보도블럭에 칼자국 비슷한 것이 남겨져있었다. 폭이 얇은 걸로 보아서는 진짜 칼이거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무기, 채찍 비슷한 것. 그러나 무기에 대한 추측을 마치기도 전에 곧바로 그를 사로잡으려는 공격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요새 스카웃 스타일이 야만적으로 하는게 트렌드?"
"쥐새끼처럼 피하기, 인가?"
"글쎄 기왕이면 카피바라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여러 명이서 동시에 공격을 하는 모양인지 처음과 비슷한 무기가 연신 그가 있던 자리를 내려치고 있었고, 그 때마다 캘리칼리는 요령좋게 피했다. 하지만 그는 정체도 목적도 전혀 알 수 없는 적이라는 존재를 상대해야 하는 것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이 허술한 공격들로 시간낭비하는 것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모습을 대놓고 공격이라도 하면 좀 좋으련만!
"글쎄, 이 아저씨는 좀 쉬고 싶거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 서!!"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근처에서 가루가 완전히 되어버린 보도블럭을 발견하고 발에 온 힘을 주어 굴렀다. 그러자 흙먼지가 바닥에서 공중으로 튀어오르며 미세먼지처럼 희뿌연한 안개가 일시적으로 만들어졌다. 백열등이 비추는 좁은 빛의 각도로는 시야를 확보하기에 충분치가 않았는지 적들이 공격을 멈추고 당황하는 기색이자, 캘리칼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큰 키를 한껏 웅크려 근처 빌라의 뒤로 나 있는, 상당한 높이의 담장의 어둑한 그림자로 조심스레 접근하고는 그대로 뛰어넘었다.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난생 처음으로 겪는 이 황당한 상황. 담장 너머에 몸을 기댄 그는 공연한 긴장감으로 날뛰는 심장소리가 귓전에서 울리는 사이에 그 놈의 음성 변조기로 "도망갔나?" 라며 중얼거리는 대장으로 추정되는 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누군가가 형사님을 노린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제일 접근하기 쉬운 위치가 나 인것 같아서 그런 모양이다. 자네도 조심하라고."
-...알겠습니다. 무사, 무탈하시기만 바라겠습니다.
"그래, 말이라도 고맙군."
다음 날, 캘리칼리는 혹시나 모를 추적자의 존재 때문에 몇 시간에 걸쳐 이리저리 헤메는 척을 하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호드야 날아다니면 된다지만, 자기들 중 가장 몸을 못 쓰는 친구가 갑자기 걱정된 형사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하다 날이 밝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드물게 긴장한 그의 목소리에 카르나르 융터르도 심각한 일임을 짐작한 것인지 뒤이어 노스페라투 호드와 함께 돕겠다고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 둘이 휘말릴 수 있다며 형사는 한사코 그 호의를 거절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뒤.
그의 빌라 창문 전부가 산산히 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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