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쉽 합방 보고난 뒤로 해보고 싶은건... 역시 캘칼님 버럭이려나요.
*이번 편은 지금까지 나왔던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해답편 정도로 생각해주십사 합니다. 네 말 무지 많을 예정입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살짝 건들며 앞으로 나선 카르나르 융터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생각보다 다양한 표정을 보여줬지만... 저렇게 화가 났다는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를 형사도 이해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연락을 받았다는 것은, 곧 노스페라투 호드를 엿먹이기 위한 세 번째 사건이 벌어진다는 의미가 아니인가? 그것과 별개로, 이미 첫 번째 사건은 사람이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고, 두 번째 사건은 아예 사람이 실제로 죽었다. 그럼 세 번째는? 사람 목숨을 그저 엉뚱한 사람 괴롭히기에 낭비한다고?
카르나르 융터르가 귀를 가리킨 채로 다시 입을 열기에, 캘리칼리는 잽싸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꼭 막았다.
"지금까지 놈과 이야기했던 것, 전부 다 말해."
하지만 심리상담사의 세뇌가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캘리칼리는 그나마 적응되었던 위압감 이상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받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저 놈한테 홀리는 피해자(?)들이 왜 하나같이 넋나간 얼굴이 되는가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구만. 거의 웅얼거리다시피한 수준으로 귀를 막은 자신이 이럴진데 사회부 부장의 표정은. 강력한 세뇌를 다시 받아야만 했던 부장은 이제 덜덜 떨면서 답하기 시작했다.
"처, 처음에는 이런 사건이 앞으로, 히어로라고 나대는 그...그 자가 저지를 것이라며 새,샘플, 샘플 사진이라고 보내왔,습니다. 예. 그 다음,엔... XX공원에서 사람을 습격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또.. 또.... XX아파트 단지에서 추락사가 있을 것이라고도... 미, 미리 안내,바,받았습니다. 다음엔, 그, 제, 제에-보자가, 말하,기를...."
부장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무,무능함을, 입증 시켜주,겠다면서... 내일, 저,녁에, 도시 외곽의 공단에, 호,화재를, 일으키겠다,고..."
이렇게까지 나온다고? 융터르는 그 어떤, 겪어왔던 모든 일을 통틀어 광신도 부부 이후로 이만큼 화가 치밀어오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더불어, 부장은 은연중 히어로 호드에 대해 나댄다는 표현을 쓴 것을 똑똑히 들었다. 범인이 어떻게 이 일련의 사건이 있기 전부터 히어로 호드를 탐탁치 않아하던 그의 심리를 기막히게 파고들고는 자신의 동조자로 삼은 것인가? 융터르는 한 사람을 향한 지독한 악의에 치를 떨었다.
곁에 선 캘리칼리 데이비슨도 그저 호드 하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 터무니 없는 짓을 벌일 예정이라는 답에 어이가 없었는지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 놈 목소리, 혹시 아는 사람인가?"
"아,아-- 아니오... 자, 잘 모르는, 목,소리였습니다."
"전화를 당신이 걸었다고 했지. 혹시 당신이 가진 다른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해보았나?" 융터르가 차갑게 물었다.
"하, 하지는 않았습,니다. 머... 먼저, 문자,로... 연락 가능하냐며...."
세뇌가 편한 능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처럼 몇 번이고 물어봐야 하는 질문도 있는 법이다. 결국 부장이 범인에게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줬다기 보다는 이 자도 범인에게 놀아나는 꼭두각시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말에 융터르는 물론, 캘리칼리도 허망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심리상담사가 자신들과 만나서 대화했다는 그 모든 것을 잊으라고 명령을 내린 뒤, 두 사람이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시간은 어느 덧 7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그만큼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야외에 오래 서 있을 생각이 없던 두 사람은 조용한 실내에 있기로 합의를 보았다.
융터르가 종종 들리는 단골식당. 추운데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온 두 사람은 동시에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주위를 곁눈질 하며 둘러보았다. 그들 외에는 종업원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먼저 캘리칼리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은 서로 많은 듯 하지만, 먼저 호두에게 전화를 좀 해야겠군."
"동의합니다. 하지만 도시 외곽의 공단은 한 두 곳이 아닌데요."
"하지만 그 친구라면 순식간에 날아다닐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지 않겠나? 온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보다야는..."
"그건 그렇군요.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캘리칼리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노스페라투 호드의 피곤한 목소리가 융터르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형사는 그의 상사에게서 얻어낸 것을 비밀로 한 채, '수사 과정 중에서 알아냈는데, 범인이 내일 저녁에 도시 외곽의 공단에 화재를 일으킬 예정'이라는 내용을 건조하게 전달했다. 호드는 그 충격적인 내용에 헛숨을 들이키는가 싶더니 곧 알겠다는 말과 함께 감사를 표시하며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고, 각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음에도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은 서로가 먼저 말하기를 원하는 눈치싸움을 벌였다. 결국 그 싸움에서 진 융터르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과격한 방식을 사용한 점 죄송합니다."
"알긴 아는군." 형사가 윤리의식을 가벼이 여기는 그 태도에 살짝 비아냥거렸다.
"그래도 저 덕분에 원하시는 정보는 제법 확보하신 듯 합니다만."
"그건 맞긴 하지. 젠장, 그래 그 부분은 고맙네." 캘리칼리는 씁쓸함을 느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마도 형사님은 먼저 잠시 언급하셨던 사진에서 출발하신 모양이지만, 저는 신문사의 댓글란을 보고 출발했습니다."
"댓글?"
융터르는 자신이 문제의 부장을 의심하게 된 계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유독 눈에 띄게 날뛰는 악플러 세 명과 그와 결이 비슷하게 흐르던 그 신문사의 호드 악명 만들기 특종과의 유사점, 그 뒤로 보이는 배후의 조종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까지.
형사는 "결국 모든 원인에는 그 배후가 있을 것이다?" 라고 지적했고, 상담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늦은 시간에 부담된다며 주문한 파스타를 이제서야 돌돌 말기 시작한 융터르가 권하는 손짓과 함께 "이제 형사님 차례입니다." 라며 말했다. 캘리칼리는 자신의 몫인 자허토르테를 큼지막하게 자르며 그 제안에 순순히 따랐다.
"아까 사진 이야기, 호두가 나한테 보여줬었네. 두 번째 사건 현장에서 만났었거든."
"듣자하니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닌 것 같았는데요."
"그랬지. 그만큼 끔찍하기 짝이없는데도 신고 하나 안 들어왔으니, 결국 가짜 사건이었어. 근데 난 호두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네."
"...왜 그랬는지 알 것 같군요. 호드님의 성격상 곧바로 파헤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아닙니까?"
"맞네."
진한 초콜릿의 맛을 건조하게 느낀 캘리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두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몫을 절반 조금 넘게 먹은 시점에서 형사가 오늘 하루 동안의 수사를 통해 느꼈던, 묘하게 거슬렸던 어떤 느낌을 끄집어냈다.
"이 사건, 범인이 최소한 둘 이상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동의합니다. 실행범과 배후의 조종자... 어쩌면 조종자가 실행범도 꾀어냈을 가능성도 있군요."
"내 생각도 그러하네. 사실 그게 더 앞뒤로도 말이 맞고." 캘리칼리는 가짜 호드 역할을 그럴싸하게 해낸 짝퉁을 생각하며 말했다.
파스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융터르는 그의 말을 듣다 눈가를 찌푸렸다. 형사는 그가 뭔가를 잘못 씹은 건가 생각했었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입가를 티슈로 닦고나서는 바로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호드의 상사, 그 부장은 왜 쉽사리 선동가의 역할을 맡았을까요?"
형사도 마침 케이크를 큼지막하게 입에 밀어넣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물거리다가 삼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 뒤에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글쎄, 본인 입으로 정의의 히어로 노릇 하는 것이 싫다고 했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단순히 싫다고 하기에는 그 사람이 쓴 기사들은 하나같이 악의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아니, 최근에 기자들에게 시달려서 그런가 영 꼴도 보기가 싫더군."
캘리칼리는 진저리를 치며 답했다. 아닌게 아니라 요새 사건 현장마다 전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한번씩은 형사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호드가 또 저질렀다는데 사실이 맞습니까?" 같은 괘씸한 소리나 일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종이랄 것도 없이 그저 자신들이 수사 중에 실수로 흘린 말을 잽싸게 주워 올리는, 공원 앞 비둘기 같은 놈들. 그 생각만 하면 그는 이를 득득 갈 수 밖에 없었다.
융터르도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지라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을 받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감입니다만, 그 자가 쓴 기사들을 보면 유독 반복되는 문구들이 많습니다. 뭐... 무능, 오만, 불신 이런 내용들의. 강조의 의미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았을 때는 이 문구들이 노골적이다 못해 어색하더군요. 과하게 사용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걸." 부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라갔다면 그런 허접한 기술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형사도 맞장구 쳤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부장이 그렇게 기사를 쓰게 만든 원인이 그 배후의 조종자라 가정했을 때 모종의 세뇌 비슷한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흠."
사이비 교단 때의 사건에서도 융터르는 한번 그 교주 놈이 광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었다. 사람의 정신에 작용하는 그러한 종류의 능력이라면 자신보다는 더 잘 알 것이라는 생각에 캘리칼리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은 했다.
"자네와는 결이 다른건가? 그러면?"
"지배력을 척도로 두자면 제가 가장 강하겠지요. 대신 그만큼 티가 노골적으로 납니다. 제 생각에는 암시, 라 생각되는군요."
"이거 갑자기 골치아파지는 이야기인걸." 아무것도 없는 포크를 물며 캘리칼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상담사는 꽤 유명한 이야기라며 예시를 하나 설명해주었다. 옛날 미국의 모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을 하는 사이사이에 초 간격으로 팝콘을 사라는 문구를 끼워넣었더니 매출이 상승했다더라, 하는 음모론을.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호드는 사악한 짓을 일삼는 놈이기에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심어놓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그 주장이었다.
그 말을 곰곰히 씹어삼키듯 반복하던 형사가 순간 오한을 느꼈다. 두 번째 사건 현장. 사람들은 왜 입을 모아 호드가 범인이라며 신고를 했지? 그 현장에서 호드가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공중에 둥둥 떠있는 근육질의 성인 남성의 실루엣을 하나같이 호드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사건 말인데, 신고자들이 하나같이 호드가 범인이다라고 했거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이상해. 어떻게 하나같이 확신에 차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거지?"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호드가 그랬다' 라며 외쳤다면...." 융터르도 똑같이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캘리칼리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손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작게 외쳤다.
"젠장!! 그 현장에 범인이 있었어!"
-38. 좋은 놈 이야기 - Man in the mirror(3)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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