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드님은 문제편을, 나머지 두 아저씨는 해답편을 맡으면 재밌겠다 싶어서 이 구도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넵 사실 이번에 급조한 것입니다. 진짜입니다.
*임기응변 댕같이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이걸...
늦은 저녁, 노스페라투 호드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도 그 보다는 못할 정도로 새파랗게 질린 채 감사 인사를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형사의 전화를 끊었다. 도시 외곽의 공단은 그가 알기로 북동쪽과 남서쪽에 각각 한 군데씩 위치해있다. 둘 중 한 곳이, 어쩌면 두 곳 전부에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소름끼치는 말에서 가짜가 자신에게 품는 악의가 진하게 묻어나왔다. 게다가 상사가 쓰는 기사, 자신이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존과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악담 투성이가 될 터였다.
무시하기에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노골적이기까지 한 적대감에 질린 그는 평소보다 일찍 침대 위로 누웠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분명 쉴 시간이 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럴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쉬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느껴진 탓이다. 그러면서도 머리 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만 목표라면 그저 그러려니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미 벌써 죽은 사람들이 생겼고 내일 저녁에는 그 목록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범인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모든 것을 내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않는다. 그는 전지전능한 초월자 같은 것이 아니니까. 그저 사건이 하나 발생하면 그것이 가장 최소한의 피해로 끝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할 뿐, 그 선택은 자신이 힘을 얻은 그 날부터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더라도 단 하나 그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무고한, 다른 사람들을, 당신의 악행에, 휘말리게 하다니."
그 크고 두툼한, 기자답지 못하게 거친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미지의 적에 대한 울분도, 혹여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아직은 닿지 않을 곳에 떨어져있다. 당장의 기분으로 예고된 재앙을 먼저 막을 수 있다면 그건 신이겠지. 심호흡을 천천히 반복하며 호드의 의식은 마치 내일처럼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라앉았다.
부디 신이 있다고 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일말의 도움을 베풀어주시길.
형사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기껏 물색한 사진의 진위여부 자체는 조작된 바가 없다는 결과를 받았으니까. 그 허탈한 오후, 부장에게 독감에 걸렸다며 거짓말을 하고 조퇴한 그는, 이미 문제의 두 공단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높이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다. 전에 없이 높은 고도는 숨쉬기가 답답했지만 호드는 이미 어떤 동상이 된 것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고개 뿐. 북동쪽과 남서쪽에 각각 위치한 공단 중 어느 곳에 화재가 일어날 것인가 긴장하던 그의 귀에 무언가가 닿았다. "사람 살려!!"
"이런, 젠장."
호드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빛살처럼 북동쪽 공단으로 향했다. 순간 방심했다. 그 몇 초사이에 저렇게 거대한 불길이 일어날 줄 생각도 못했다. 화학공장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연달아 들리는 사이로, 그의 귓가에는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생명을 구걸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만약 그가 노련한 소방관이었다면 분명 사람을 구하더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로 짤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더욱이 이 근방에서 가장 거대한 공장인 만큼 구해야 할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어떻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비명, 스스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판단은 호드에게 있어 가혹했다. 자신의 힘이 자신을 배신하는 기분. 히어로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래 처음으로, 그 규모 앞에서 호드는 철저하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를 구해야 하지?
자신이 이 폭발 사고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실패한다면, 아니 그것보다도 부상자라도 나온다면 세상은 얼마나 나를 짓누를까. 얼마나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자신이 쌓아온 명성이 목을 죄는 것 같은 기분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미리 정보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대처할 수 없는 것인가? 불길 사이로 자신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매도하고 질타하는 소리가 속삭여오는 듯 하였다. 그 사이에도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데. 하지만 얄궂게도, 호드의 눈빛이 그 속삭임에 저항하듯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맙다, 그림자여. 내가 할 일을 말해주었군.
"나는... 사람을 구합니다. 그게 내 역할이니까!!"
자신을 향한 것인지, 혹은 자신을 질타하던 세상에 향한 것인지 모르지만 호드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포효하며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벼락의 힘이 없어도 그는 사람을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강력한 무력이 없어도 그는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 일식이 있던 날, 지금처럼 세상을 불살라버리겠다는 듯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꽃 사이로 그는 연거푸 뛰어들고 사람을 들쳐메어 나왔다. 안전하게 기자라는 신분 뒤에서 방관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며 구원을 원하는 눈빛들에게 썩은 동앗줄이 될 수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늘 그렇듯이 항상.
맨손으로 닿는 순간 살이 익는 냄새가 기분 나쁘게 퍼지지만 상관 없다. 그 문을 열자 사람들이 소방관의 인도 아래에 뛰쳐나왔으니.
철제 구조물이 등허리에 가혹하게 내리떨어져도 상관 없다. 자신이 버팀으로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탈출 할 수 있으니.
시커멓기 짝이 없는 연기가 온 몸을 감싸도 상관 없다. 그 너머로 구해야 할 손이 있으니.
"진짜 호드 잖아?"
"사람들을 헤친다고 했는데..."
"말도 안돼... 기사 보면 사람 죽인다고 했었는데...."
뒤늦게 파견된 소방관들이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영웅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굳이 그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말해야만 했다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정도였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이유도, 보상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하고 싶고, 해야만 했으니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어떤 일련의 행동처럼. 그렇게 공단에서 일어난 사고는 거의 3시간에 걸쳐 잔불 하나 일어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끝났다. 그 규모에 비해 부상자 50명 정도에 사망자가 3명 정도로 나왔다는 것은 구조 작업의 측면으로 보았을 때,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그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충원되는 소방관들도 피해자 구출과 화재진압 작업에 한 손을 거들었다. 엠뷸런스들이 저마다 환자를 실어나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을음투성이가 되어버린 호드는 한숨과 함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노스페라투 호드는 완벽한 초인이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체력이 회복하는 속도가 제법 빠르지만 캘리칼리 데이비슨처럼 다치는 것과 동시에 아무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불길에 타고 익으며 터져버린 물집에 쓰라린 살갗이 주는 고통스러움을 애써 참으려 했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며 고통을 참느라 그는 주위에 누가 다가오는지 눈치채는데 시간이 조금 늦고 말았다. 한 구조대원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팔 이리 내보세요." 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전문가 특유의 묘한 기백이 느껴져 호드는 덩치가 자신보다 훨씬 작은 그에게 슈트가 여전히 복구되지 않아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팔뚝을 내밀었다. 구조대원이 바세린 따위의 연고를 조심스레 펴발라 준 다음 붕대를 단단히 감으며 말했다.
"아니, 당신 미쳤어요? 어떻게, 와... 씨. 진짜 몸 하나 부럽다. 그렇게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는데도 고작 이 정도로 그친 걸 다행으로 여기십쇼."
"오, 감사, 합니다."
"됐어요. 여론만 아니었으면 표창장도 받았을 거 같은데... 아, 아무튼 자기 일도 아닌데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여전히 목소리가 틱틱거리는 구조대원은 응급조치가 끝나자 "병원이나 가요, 좀."이라는 말과 함께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사이렌을 울리지 않은, 수많은 소방차들과 몇 안 남은 엠뷸런스들이 공단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호드도 자리를 뜨려 한 참이었다.
어쩐지 여유롭다 못해 늘어지는 목소리가, 이 참사의 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들려왔다.
"어-라아...? 이거 곤란한데...?"
"곤란?"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단어에 당황하며 호드가 반문을 하자, 새하얗고 밋밋한 플라스틱 마스크를 낀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한 팔을 크게 휘적거렸다. 그러니까 뭔가 정말로 반갑다는 듯이.
"아, 들으셨습니까아?"
"당신, 누굽니까?" 호드의 경계심 어린 질문에 상대방이 과장되게 기쁘다는 듯, 온 몸을 팔락거리며 답했다.
"전 당신의 팬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호드가 상대방을 향해 냉정하게 끊어 말했다.
그의 온 감각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위험하다. 상담사 특유의 정신공격에 한 번씩 휘말릴 적마다 받곤 하던 그런 느낌, 그 방향성은 다르더라도 그 익숙함이 저 사람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는 호드에게 가면을 쓴 상대는 짐짓 서운하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아이, 아닌데에... 그 팬 맞다니까요?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가 최고가 되길 바라는 팬 맞는데에..."
"전, 최고가 될 생각, 없습니다." 목덜미를 조여오는 기분 나쁜 달큰함에 기분이 나빠진 호드가 노려보며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화재를 일으킨 사람입니까?"
"어, 어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야... 이거 팬활동의 일환인데, 기쁘네요오!" 상대방이 몸을 과장되게 꼬았다.
"이유가 뭡니까." 점차 저 가식적인 행동에 질린 호드가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어... 그러니까아... 이야기에서 기승전결이라고 하지요? 주위의 핍박을 이겨낸 히어로 호드! 가 보고 싶었달까요?"
느물느물거리는 저 태도에 호드는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 가당찮은 이유로 자신과도 관계없는 무고한 사람이 이번엔 셋씩이나 죽었다. 지난 사건에서도 사람이 죽었는데 이번에도! 분노한 호드가 가까이 가려하자 상대방이 예의 그 가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도와줘요오!! 마이 히어로 호오드으으-!!!"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구의 덩치가 호드의 몸을 뒤에서 짓누르려 하였다. 그 완력만 보면 자신과 거의 비슷한 정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기에 그는 가뿐하게 자신의 뒤를 잡으려 덤볐던 상대를 제압하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부장이 건넸던 사진 속 덩치.
"내가 진짜"라며 연거푸 중얼거리는, 자신과 거의 똑같은 인물.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상대방에 당황하고 있을 때, 가면을 쓴 사람이 그의 무방비해진 귓가에 속삭였다.
"히어로 노스페라투 호드라면 자신을 사칭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텐데요오?"
호드의 눈이 흐려졌다.
그래, 너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고통을 받았다. 이 가짜 때문에...! 속삭이는 소리가 말해주지 않던가? 자신이 용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상처받고 괴로웠던 마음을 단번에 알아주었다. 그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을! 그렇게 생각한 호드의 오른 주먹에 전기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맺히기 시작했다. 왼주먹은 그대로 멱살을 잡고 있으니 이대로 내리 꽂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용서?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해선 안된다. 친구들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면서 동시에 호드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붕대로 감긴 팔뚝이 욱씬거리는 고통과 함께 달큰한 속삭임이 더는 들리지 않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 방금 그는 사람을 죽일 뻔 했다. 스스로의 행동에 놀라, 그가 머뭇거리자 밑에 깔려있던 괴력의 사내가 그를 세차게 발길질을 하며 흙을 눈에 뿌린 사이에 두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호드는 스스로 살인을 저지를 뻔 했다는 충격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당황과 충격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서 쉬던 그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심리상담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시지요.
"접니다. 절 도와주세요, 당장."
-39. The bad meets the good(2)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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