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짝퉁 호드의 정체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요, 짝퉁 호드는 그 지금 이전의 호드님 아바타였다고 합니다 두둥.
*아니 근데 왁굳님 설명이 참 리얼했단 말이에요. "내가 히어로다" 라고 외치는 정신나간 아저씨 같다고 한 그거.
*그래도 그 아바타는 너무 했으니까 조금 뇌이징을 거쳐 얼빠진 호드님 얼굴이다, 라고 생각해주심 감사합니다.
밤 10시가 될 무렵. 그 전에도 찾아왔던 노스페라투 호드건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당황과 분노로 점철된 얼굴로 자신의 상담실을 찾아온 적은 처음이니까. 카르나르 융터르는 종전의 통화를 떠올렸다. 도와달라니, 저 의지의 사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이 건넨 커피를 받아들고도 여전히 충격에 사로잡혀 숨을 바르르 떨며 쉬는 그는 처음이다.
옅은 주황빛 스탠드 불빛이 유일한 광원인 그 공간 속에서, 상담사는 냉철하게 내담자를 바라보았다. 정장 외투 아래로 보이는 붕대, 지난 괴인 사건 때 보았던 형사의 화상자국과 꼭 닮은 그것, 오늘 속보로 시끄럽게 떠들던 북동쪽 공단 내 화학공장의 화재사고. 영웅이 화재사고로 인해 PTSD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면, 분명 그 사고 이후에 감당키 어려운 일이 있었을 것이라 융터르는 짐작했다. 그 정도로 생각하던 상담사에게, 내담자가 아직 충격에 사로잡혀 공허한 얼굴로 말하기 전까지는 놀라지도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사람을 죽일 뻔, 했습니다."
"네?" 그 누구보다도 호드와 어울리지 않는 그 고백에, 메모를 하려고 쥐었던 만년필을 떨어트렸다.
질 나쁜 농담은 관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호드가 그런 것으로 농담을 할 리도 없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상담사는 계속 그가 말할 수 있도록 약간의 제스쳐만 취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호드도 자신의 기분 나쁜 일을 길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다. 화재현장에서 불현듯 나타난 사람이 자신을 충동질 시켰다고. 아직도 그 미묘한 달큰함이 떨어지지 않은 느낌에 진저리 친 그가 잘게 떠는 목소리로 말을 마치자 상담사는 양 손을 깍지 낀 채 눈가를 찌푸렸다가 곧 한숨을 쉬었다.
"말씀드리기도 전에 이미 만나셨군요."
"...?"
"실은, 형사님과 별도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호드님이 만났다는 그 자가 모든 일의 흑막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습니다."
"왜, 그 부분을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호드가 말에 원망스러움을 저도 모르게 가득 담아버렸다.
"섣부르게... 나설 수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융터르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피곤해보였다.
기자에게 더 이상 숨기는 것은 무의미하겠다는 마음에 상담사는 어제 저녁의 일을 천천히 설명했다. 형사와 만나 호드의 상사인 사회부 부장을 만나고, 사건의 정황을 확인한 것까지. 자신을 생각해준 그 악의없는 따돌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던 호드는 묵묵히 들었다.
호드는 다 식어빠진 커피 특유의 적응되지 않는 신맛에 진저리치면서도 단숨에 잔을 비웠다. 지금에 와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에. 사실 이쪽을 이야기 하러 이 늦은 밤에 그의 상담실로 향한 것이 아닌가. 그나마 고마운 점은, 이 가짜 상담사가 진짜로 상담사 역할을 나름대로 해주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그 흑막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이려 했다, 고 하셨지요. 혹시 그 자의 영향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묘하게, 마음을 이끄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가감없이 자신이 겪은 그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가짜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에 그 자가 다가와 귀에 소근거렸던 그 말. 내용을 생각하면 크게 마음이 따를 리 없는 말인데도 자신을 위로해주며 응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던 점을. 그 기묘한 부드러움을 다시 떠올려본 호드는 몸서리를 쳤다.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그 부드러움이라는 것이 숫제 거대한 뱀의 아가리나 위장 정도에 스스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면을 쓴 사람... 그 놈도 저와 비슷한 것 같군요."
"이미 한 번을 당했으니, 압니다. 두 번이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호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자신이 부정할 수 없는, 마음 속 상처를 이제 그 자가 더 집요하게 파헤칠 것이다. 가능하면 그러지 않기를 원한다만, 기자는 그 자가 혼자서만 돌아다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자신의 가짜를 보디가드 삼아서 조종했는데, 더 나아가 무고한 일반인들을 선동해서 자신을 상대하라고 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무엇보다도 최악의 상황이라면 놈이 자신을 조종해서 다른 두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였다.
그 우려에 깊이 공감한 융터르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대책을 강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안심이 되지 않는 호드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챈 상담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일로 신경을 계속 쓰시는 겁니까?"
"사람을, 죽일, 뻔했습니다." 호드는 다시금 그 말을 입에 올렸다. 마치 스스로를 칼로 찌르는 고통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요?"
그런 그의 고민을 듣고 난 상담사는 정작 무심한 태도였다.
내담자는 이 황당한 상담방식에 당황했고, 이러니까 사짜 상담사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무심결에 할 정도였다. 세상에 어느 상담사가 저렇게 정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말하는가 싶었다. 가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상처 받았을 적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선을 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야박한 태도는.
"서운하십니까?" 그의 생각을 잘라먹은 상담사가 툭 내뱉었다.
"...네, 서운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또, 뭐가, 이해 안 되십니까?" 호드는 그 야박함에 질려서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질문을 건넸다.
"결국 안 하셨잖습니까? 결국 본인 의지로 그 꼬드김을 무시하신건데."
상담사의 목소리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한심하다는 투였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통에 호드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고, 이 사짜가 계속 입을 털게 내버려두었다. 그도 그것을 바라던 것인지 곧바로 이어 말했다.
"호드 님은 이상은 한없이 높은데, 그걸 실현시키려는 본인 자신을 너무 약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거기다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는데, 일일이 대응을 못했다고 그렇게 기가 또 팍 죽을 일은 또 뭡니까? ...아니 그렇게 날아다니고, 힘이 세고, 전기를 쓸 줄 알기 때문에 무슨 신인 것처럼 행동하십니까?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입니까, 당신이?"
"말이, 좀, 독하십니다." 상상치도 못한 독설에 질린 표정이 작게 대꾸했지만, 융터르는 계속 입을 털었다.
"독할 수 밖에요. 범죄자들 안 죽이게 하겠다면서 처음 제 앞에서 그 잘난 망토 팔락거리면서 왔을 때도 그랬지만, 결국 안 죽였잖습니까. 본인 스스로가. 그 꼬드김을 듣고도 안 죽였다고요. 노스페라투 호드, 당신 의지로 말입니다. 근데도 무슨 가련한 비극의 여주인공 마냥, 어떻게 멘탈을 스스로가 가루로 만듭니까? 육체가 튼튼하니 정신은 허약한 걸로 밸런스 게임이라도 하십니까? 그 덩치가 아깝네요. 차라리 절 주시면 참 잘 써먹었을 텐데."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분명 위로인데 그걸 감싸는 포장지에 가시가 너무할 정도로 많았다. 더불어 그가 저렇게 말을 와다다 쏟아내는 것을 또 처음 들어본 호드는 낯선 상황에 오히려 웃음이 나와버렸다. 평소의 그라면 내지도 않았을 낄낄 소리까지 나오며 후련하게 웃은 영웅은 캘리칼리 데이비슨이 그렇기 극찬했던 카우치 소파에 몸을 뉘였다.
"그거 수면용 아니라니까요."
"이거, 무지, 편합니다."
"후... 이젠 저도 모르겠습니다. 네, 거기서 8시간은 푹 주무시죠."
상담사가 한숨을 푹 쉬면서 하는 그 마지막 말은, 어쩐지 부드럽고 따뜻한 차렵이불 속에 감싸여지는 느낌이었고 눈꺼풀이 그 어떤 것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던 내담자는 상담실의 주인이 잘 자라고 한 것 같은 인사도 듣지 못한 채 평온한 얼굴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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